‘함경 소년’과 ‘제주 소녀’

by 박세미

교실 문이 열렸다. 담임 선생님과 새까맣고 왜소한 남자아이가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아이의 체격은 6학년 치고는 작았고, 얼굴은 중학생 같아서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할 것 같던 아이는 갑자기 스프링처럼 고개를 탁 쳐들더니 굵은 목소리로 반 아이들을 한 명씩 둘러보며 인사를 건넸다.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 아이의 말투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반 아이들이 오히려 순간 몸이 굳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주혁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말도 ‘김주혁이라고 합니다’라는 말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낯설었다.


“저는 새터민입니다. 하나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곳 생활을 잘 모릅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표준어도 아닌 사투리도 아닌 그 말들 틈으로, ‘새터민, 새터민, 새터민....’ 메아리처럼 그 말이 아이들 사이를 감싸고돌았다.




우리 반에서 짝이 없는 아이는 나 밖에 없다. 그래서 선생님은 저 아이를 내 옆에 앉게 할 것이다. 나는 속으로 평소 믿지도 않던 모든 신들을 불러내서 기도를 드렸다.


‘부처님, 하나님... 제발 저 아이가 제 짝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 쟤는 키도 작아서 여기 앉으면 앞이 안 보여요.’


기도가 끝나자 마음이 놓였다. 내가 저 아이랑 짝이 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저 아이도 내 옆에 앉으면 불편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순간 신들은 바로 내 미운 마음에 대한 대답을 해주셨다.


“김주혁, 저쪽 뒷자리로 가서 앉아.”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에게 점점 크게 들려왔다. 저쪽 뒷자리는 바로 내 옆 자리였다. 내 짝은 이제부터 북한에서 온 아이다.




그 남자아이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관심을 즐기는 것 같았다. 수업시간에도 손을 들고 틀린 답을 당당하게 말하기도 하고, 쉬는 시간이면 쓸데없는 것까지 시시콜콜 물어대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그 남자아이와 더불어 스타 아닌 스타가 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아이들이 나를 놀리려는 마음으로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북한에서 온 애 옆에 그 제주도에서 온 애’로 불리기도 했다. 나도 전학 온 지 딱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


아빠 회사일로 나는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왔다. 내가 살던 곳은 제주도 제주시였다. 제주도에서 아빠는 IT 회사를 다니셨고, 엄마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셨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야 했고, 학원이 모두 끝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해는 이미 떨어져 있다. 이곳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런데 내가 서울로 전학을 오자 아이들은 나를 외국인 보듯이 했다. ‘우와, 너 제주도에서 왔으면 너희 집에도 귤나무가 있겠네.’ ‘제주도에서 왔으면 말을 많이 타봤겠네.’ ‘나도 제주도 간 적 있는데, 해녀가 막 소라랑 전복이랑 따다 주더라. 너희 엄마도 해녀야?’ 등등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나에게 쏟아부었다. ‘나도 너희들처럼 아파트 살았고, 할머니 댁에나 가야지 말도 보고, 해녀도 볼 수 있어!’라고 되받아쳐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니’라는 작은 말만이 빈약한 내 목을 통해 나왔다. 제주도의 전통이 나에게도 일상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소심한 나에게 그런 질문들은 폭탄 같았다. 그런 질문들은 점점 나를 더 작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짝이 없이 혼자 앉아 있는 수업시간이 그나마 유일하게 내가 편안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관심은 며칠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다. 나는 제주에서처럼 조용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새로 전학 온 그 남자아이가 내 짝꿍이 되기 전까지 말이다.




아이들은 그 남자아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너 그럼 김정은도 봤어? 정말 뚱뚱해?’ ‘네가 지금 쓰는 말이 북한 말이야? 이건 북한 말로 뭐라고 해?’ ‘뉴스 보니까 북한에서 남한 오는 거 되게 위험하던데 너도 죽을 뻔했어?’ 아이들은 그 남자아이를 둘러설만한 자리가 부족하니까 내 책상까지 밀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 남자아이는 영웅의 전쟁 이야기하듯이 손발까지 움직여 가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해댔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조용히 일어서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지루하지 않았다. ‘하필, 하필, 내 짝이 저 애라니...’


수업시간 종이 쳤다. 나는 내 자리를 되찾았다. 선생님께서 잠깐 교무실에 다녀오신다며 나가셨다. 아이들이 웅성웅성 대며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이우석이 내 짝 옆으로 왔다. 그리고는 내 짝 머리 위에 대고는 ‘나대지 마라!’라는 말을 던지고는 지나갔다. 모두가 전학 온 이 남자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도 이우석은 내 짝 옆을 지나갈 때마다 ‘냄새가 난다,’ ‘이렇게 할 거면 왜 왔냐’는 등 못된 말을 꼭 한 마디씩 던지고 갔다. 그런데 그 말이 내 귀에만 들리는 것처럼 내 짝은 미간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시끄러운 학교생활이 며칠 계속되었지만, 다행히 북한에서 온 내 짝에 대한 관심도 내가 겪은 것처럼 며칠 가지는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짝도 바뀌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크게 내 이름을 불렀다. “고민정!” 너무 놀라서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고민정! 고민정!” 누군지 알 것 같아서 더 뒤를 돌아보기 싫었다. 내 짝이었던 김주혁이다. 김주혁은 내 가방을 툭 친다.


“너도 이쪽으로 가냐? 나도 이쪽으로 가”


김주혁은 우리 집 앞까지 따라오면서 내가 관심도 없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계속 떠들어댔다.


“너, 왜 자꾸 따라오니?”

“아닌데, 피아노 배우러 온 건데.”


김주혁이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다. 김주혁과 피아노라니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김주혁을 째려보자 나 보란 듯이 김주혁은 우리 집 벨을 눌렀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엄마가 나왔다.


“어, 네가 주혁이구나, 둘이 같이 왔네, 들어오렴.”


그날부터 김주혁은 일주일에 3번이나 우리 집에 와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리고 우리 집에 오는 날에는 학교가 끝나면 귀신같이 나를 찾아내서 같이 집에 왔다. 나는 김주혁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반갑지는 않았지만 싫어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서울로 이사 온 뒤, 엄마가 이곳에 빨리 적응하려면 제주에서 했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아빠한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주혁이 피아노 배우는 시간은 내가 수학 학원을 갈 시간이라서 어차피 나는 집에 없어서 괜찮았다.


김주혁은 우리 엄마에게 바이엘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는 김주혁이 성실하고 재미있는 친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엄마 말로는 김주혁이 자기 집에는 피아노가 없어서 우리 집에서 한 번이라도 더 치고 가려고 열심히 한다고 했다. 그 덕에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매번 들어야 했다. 나는 집에 피아노가 있어도 내가 스스로 피아노 뚜껑을 열어본 적이 없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엄마는 매일매일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가 싫었다. 그 피아노는 엄마와 다른 학생들의 공간이었고, 나에게는 엄마를 빼앗아가는 시끄러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피아노를 보면 심술도 나고,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나도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면서부터는 피아노는 또 다른 무서운 엄마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을 더 좋아한다.




김주혁이 바이엘을 끝내고 체르니를 들어갈 무렵, 학교에서 ‘꿈, 끼 발표회’가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혼자 해도 괜찮고, 서 너 명씩 짝을 지어도 괜찮으니, 자신이 잘하는 것을 친구들 앞에서 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내일까지 적어서 내라고도 하셨다. 나는 잘하는 것을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내가 친구들 앞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떨리고 두려운 일이다. 집에 가면서도 나는 내일 무엇을 적어내야 하는지 내내 고민이 됐다.


그때, ‘고민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주혁이다. 김주혁이 ‘다다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그 소리가 싫지는 않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김주혁이 오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민정, 넌 뭐 할 거니?”

“글쎄, 잘 모르겠어.”

“나는 랩 할 거야.”


김주혁은 물어보지도 않는 말에 알아서 대답도 잘한다.


“랩? 너 랩도 할 줄 아니?”

“응, 위에 있을 때도 몰래몰래 들은 적이 있다. 넌?”

“난 잘 모르겠어.”

“그래? 그럼, 너 나 랩 할 때 바이올린 좀 해주지비”


김주혁이 나한테 부탁하는 것이 어색하고 다급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사투리가 툭 튀어나왔다. 평상시 억양은 좀 어색해도 김주혁은 제법 서울말을 썼는데, 가끔 자기가 당황하면 고향 말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바이올린?”

“그래, 너 바이올린 하는 거 봤어. 신기하더라.”


김주혁이 언제 내가 바이올린을 켜는 것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서울로 온 뒤로는 특별히 레슨은 받지 않고 있지만,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루에 한 시간씩 꼬박꼬박 연습을 한다.


“생각해 볼게.”

“생각해 보기는. 같이 하자. 네가 바이올린 해 주면 내 랩이 더 근사할 것 같은데...”

“너 어떤 랩 할 건데?”


그 날부터 김주혁은 피아노 레슨이 끝나면 30분 정도 더 남아서 나와 랩 연습을 하고 갔다. 김주혁이 처음으로 랩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음이 났다. 눈은 튀어나올 것 같이 힘을 주고, 손가락은 비비 꼬고서는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팔을 크게 휘젓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게다가 유명 가수의 랩을 그대로 하는 줄 알았는데, 김주혁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바이올린을 내가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 이름은 김주혁! 북한에서 온 새터민. 탈북자! YO!

울 동네에서 가장 잘 생긴 김주혁! 태어나니 엄마, 아빠, 형과 누나, 할머니가 있었어. 형은 군대 간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고, 할머니는 누워만 계시다가 돌아가셨어. 어느 날 밤, 깜깜한 밤! 엄마, 아빠, 누나와 나는 고향을 떠나왔어.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어. 중국에서 아빠는 다시 북한으로 끌려갔고, 태국에서 누나는 먼 곳으로 떠나갔어. 돌고 돌아 엄마랑 나는 한국에 왔어. 돌고 돌아 한국에 왔어. A-YO!



그 랩을 들으면서 김주혁이 엄마랑 둘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김주혁은 우리 동네에 사는데 나는 그 아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김주혁 엄마를 마트에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다. 김주혁이랑 많이 닮아서 나는 첫눈에 알아보고 어색하게 인사드렸던 기억이 있다. 김주혁은 간주 부분인지 랩을 멈추고는 큰 손짓을 하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다시 숨을 한 번 크게 쉬고는 랩을 시작했다.



한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 단. 해! 우리 동네 산보다 더 높은 건물, 건물. 개미떼 같은 사람들. 사람들. 먹을 것도 많아. 많아! 그런데! 여기서 난 김주혁이 아냐! 난 북한에서 온 애! 난 너희보다 나이도 많아! 근데 너희는 날 무시하고 우습게 봐! 봐봐! 난 김주혁이야! 북한에서 왔지만 너희가 무시할 만한 탈북자는 아냐! 봐봐! 나도 대한민국 사람이야! 너희 같은 대한민국 학생이야! 지금 웃는 내 웃음은 나에게 거는 주문이야! 너희에게 쫄리기 싫어! 정치? 통일? 나는 이런 거 몰라. 나는 그냥 행복해지려고 왔어! 나는 그냥 너희에게 나를 보여줄 거야! 그게 나야!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는 없어! 봐봐!



랩이 다 끝났을 때 나는 이 아이가 나보다 더 힘든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김주혁이 뻔뻔스러울 만큼 당당하고 바보스러울 만큼 웃고 다니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김주혁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김주혁, 그런데 너 북한 어디서 왔어?”

“함경북도.”

“함경북도? 어디?”

“그냥, 함경북도.”

“함경북도가 다 너희 집이냐!”

“그냥 그렇게만 알아!”


평소와 다르게 톡 쏘는 김주혁의 말투에 나는 당황했다. 함경북도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내가 물어보면 안 되는 말을 물어본 것 같은 분위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한 마디 더 했다.


“어디인지 알려주면 내가 쫓아가냐? 그게 뭐라고 말도 안 해주냐!”


김주혁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막 들었을 때, 김주혁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가 갈 수나 있나? 근데 또 우리 아바지는 어캐 될 수도 있지비...”


생각지도 못한 김주혁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 김주혁은 우리 집에 나랑 같이 있는데 각자 다른 곳에 있는 기분이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어색하게 우리는 김주혁의 랩에 어울릴만한 비트를 찾기 시작했다. 몇 개의 비트를 듣는 동안에 김주혁은 다시 내가 아는 김주혁으로 돌아왔다. 나는 유치한 김주혁의 랩을 내 바이올린 연주로 빛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김주혁의 진심이 친구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랐다. 나는 거기에 얹을 멜로디도 조금 만들어 보기도 했다. 김주혁과 나는 오디션을 준비하는 듯이 열심히 연습했다. 너무 달라서 옆에 있던 나까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만들어 버리는 그 아이가 싫었는데, 발표회 연습을 같이 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이나 나와 김주혁은 다를 것 하나 없는 아이였다.




‘꿈, 끼 발표’라는 커다란 글자가 칠판에 붙어 있다. 아이들이 한 명씩, 한 팀씩 나와서 노래도 하고, 마술도 하고, 춤도 추었다. 자신감 있게 하는 아이도 있었고, 쑥스러워하면서 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에 나는 더 긴장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나와 김주혁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김주혁과 나란히 교실 앞으로 나갔다. 김주혁은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를 ‘함경 소년과 제주 소녀’라고 소개했다.


팀 이름을 지을 때, 김주혁은 처음부터 ‘함경 소년과 제주 소녀’로 하자고 했다. 나는 ‘소년,’ ‘소녀’라는 말이 들어간 것도 너무 촌스러운 것 같았고, 굳이 함경도와 제주도에서 온 것을 밝힐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주혁은 팀명을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우기다시피 하면서 한참 동안 설명했다. 김주혁은 아직도 자신이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함경도에서 온 것도 잊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사실을 잊으면 영원히 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김주혁의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또한, 별다른 멋진 팀명도 나에게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리 팀 이름이 정해졌다. 그런데 막상 친구들 앞에 서 보니, 한반도 가장 북쪽 함경북도에서 온 소년과 가장 남쪽 제주도에서 온 소녀가 서울에서 만나서 함께 음악을 한다는 사실이 벅차게 느껴졌다.


김주혁과 나는 서로 눈짓을 했다. 나는 핸드폰을 켜고 우리의 비트를 열었다. 동시에 김주혁이 모자를 쓰면서 우리의 공연이 시작됐다. 우리는 그동안 연습한 것을 아낌없이 교실 안에서 펼쳐 보였다. 내가 무슨 정신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에 나는 다시 예전의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로 금세 돌아왔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민망하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갈 것 같은 두근거리는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두 다리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후들거렸고, 손끝이 찌릿찌릿 저린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는 김주혁을 흘낏 쳐다보니 김주혁은 모자를 벗어 흔들어 대고 있었다. 역시 김주혁이었다.


“고맙슴둥! 동무들!”이라는 장난 섞인 말소리에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나도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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