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좋은 방법이 있어. 내 등에 너의 등을 맞대고 걷는 거야."
무르르(지은이), 『너와 등을 맞대면 검색』(킨더랜드, 2025)
길에 핀 민들레 꽃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걸어간 한 사람의 파란 발자국을 따라가 보면, 열린 파란 문 사이로 들어가는 한 소년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발자국 위에 서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등을 벽에 기대게 된다.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늘 벽에 등을 붙인 채 한 발자국씩 움직이며 세상과 거리를 유지해 왔다. 그에게 벽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소년은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고 광장에 모임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쉽게 한 발짝을 내딛지 못했다. 등을 의지할 무언가 없이 서 있는 일은 그에게 너무도 큰 두려움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밤, 달의 모양이 바뀌듯 내일은 달라지기를 바랐지만, 아침이 오면 그 다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벽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 그는 결국 멈춰 섰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사실이 그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그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이 소년을 낚아챘다.
그렇게 영원히 벽을 떠나지 못할 것 같던 순간, 한 소녀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소녀는 말없이 자신의 등을 내어주었다. 소년은 이제 벽이 아닌, 소녀의 따뜻한 등에 기대어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거창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의 온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온기는 소년이 광장으로 나아가 사람들 속에 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년은 자신이 의지해 온 것은 벽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기다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소녀 앞에 서게 된다. 더 이상 등을 기댈 필요 없이도 설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차갑던 소년의 두려움이 소녀의 따뜻한 온기에 녹아내렸다.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벽이 필요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쉽게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억지로 등을 떼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잠시 기댈 수 있는 따뜻한 등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곁에서 조용히 기다려주는 일, 그리고 자신의 온기를 나누어주는 일.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깊은 용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