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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Jun 06. 2024

아. 버. 지.

: 나를 잡아 준 커다란 손

글/그림 최덕규, 『커다란 손』(윤에디션, 2020)




아기의 작은 손이 아버지의 가장 작은 손가락을 꼭 잡았다. 그 아기가 잡은 자그마한 손으로 아기의 따뜻한 힘이 아버지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전해진다. 



아버지는 아이의 변이 더러운 줄 모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를 씻겼고, 손톱도 잘라주었다. 또, 아버지는 아이의 밥을 챙겼고, 운동화 끈도 꼼꼼히 매어 주었고, 단추도 직접 잠가주었다. 아버지는 아이가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정성을 다했다. 



커다란 아버지 손을 잡고 세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작은 발을 내밀어 걸음을 시작하던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가 되어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의 큰 손을 내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자신의 아버지는 더 늙은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하얀 머리의 아버지는 스스로 눕고 일어나기도 힘들어지셨다. 뿐만 아니라, 혼자 자신의 몸을 씻는 것도, 자신의 손톱을 자르는 일도, 식사를 하는 것도, 신발을 신고, 옷을 입는 것도 쉽지 않아 졌다. 그래서 이제 아들은 아버지의 건강을 매일매일 확인해야 했다. 



아들의 어린 시절에 자신을 돌보던 젊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빛바랜 사진처럼 몽실몽실 떠올랐다.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면 돌볼수록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들이 작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아들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그리워진다는 것은 눈앞의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작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태산 같았던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자식은 나무처럼 성장했다. 굳건히 성장한 자식에게 이제 자신의 그늘을 아버지에게 내주어야 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공원 벤치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혼자 고개 숙이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이 아버지가 된 아들의 뒷모습 바라보고 있는 그 시선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내어준 그늘이 보이는 듯하다. 이들은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무엇이라 말하지 않지만, 서로의 그늘이 되어준 그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마음은 어머니와는 또 다른 다정함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고,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 같다. 



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잡은 아들의 손에서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나고, 주름져 버린 아버지의 손에서 아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세월이 묻어난다. 이제 아버지의 손을 잡고 폴짝이던 아이는 두터워진 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잡고, 아버지보다 큰 울타리가 되어 아버지에게 되어줄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넨 그 손은 아이를 돌보는 생명의 손이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의 손으로 성장한 아들은 삶의 끝자락에 선 아버지를 붙잡아줄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한 없이 감사한 마음이 아들의 큰 손에 얹어져 아버지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우리 아버지의 큰 손이 고맙다. 

그리고 나도 우리 아버지 같은 큰 손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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