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들이 있어서 고마웠어요!
2024년 12월 31일.
10여 년 만에 남편과 큰소리로 싸웠다. 세 식구가 오랜만에 앉아서 맛있게 먹는 저녁식사 자리였는데, 사소한 남편의 손짓에 나의 분노가 폭발되었다. 나는 이미 한계에 차 있었던 것이었다. 나의 불만을 남편은 그동안 제대로 느껴본 적도 없고, 나 역시 싸우지 않으려고 피하기만 했었다.
꾹꾹 눌러 담으며, 외면했던 나의 마음이 불쑥 튀어나와 날뛰었다. 그리고는 혼자 서럽게 실컷 울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눈두덩이가 나만 느낄 정도로 술떡 마냥 살포시 올라와 있었다.
오늘은 친구를 만나려고 했다가 친구의 딸이 A형 독감에 걸려서 약속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오전에는 산책을 나가는데, 오늘은 아침 산책도 귀찮아 멍하니 식탁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시간이 붕 떠버린 것 같은 아침이었다. 몇 초나 지났을까.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 카톡 문자 하나가 오늘이 2024년의 마지막 날인 것을 알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남편과 화해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짜증이 올라왔다. 전혀 화해하고 싶지 않은데, 이런 지저분한 감정을 새해까지 가지고 가서는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다시 남편에 대한 불만스러운 마음을 접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꼬깃꼬깃 접어서 찾아지지 않게 숨기려고 했다면, 오늘은 크게 보이도록 접어서 마음이 삐져나와 흘러가는 데로 두고 싶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이번 주에 해야 하는 일들을 오늘 정리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하루 이틀 뒤에 해도 될 일들까지 오전 내내 서둘러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숨 돌리고 나서 내가 2024년 1월 1일에 어떤 다짐을 했는지 내가 쓴 글을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일주일에 단편 한 편씩을 완성하는 것과 1년 동안 장편을 쓰고 싶다고 쓰여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나는 장편을 시작도 못했고, 일주일에 단편 한 편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다만, 한 달에 두세 편의 서평과 3-4개월 만에 한 편씩 쓰는 수필이 전부였다. 연초의 계획대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시도해 봤다면, 남들에게 보이기는 아쉽더라도 나만의 어떤 이야기라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글을 쓰려고 했던 뜨거운 마음은 금방 사라진 대신 나는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마음을 가꾸기 시작했다. 먼저, 1년 동안 꾸준히 우리의 옛이야기 그림책을 보고, 자료로 정리했다. 우리의 옛이야기가 이야기의 씨 간장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의 부족한 창작력에 자극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이야기가 뻔할 것이라고 생각한 면도 있었는데, 의외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툭툭 튀어나와 재미있게 들여다보았다.
또, 지난 8월부터는 유튜브를 준비해서 11월에 공개하였다. ‘책끌림 수다-OFFICIAL’이라는 채널명으로 지난 10년 동안 함께 그림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동지들과 함께 시작했다. 혼자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유튜브라는 곳이 나에게는 익숙한 공간이 아니지만, 배워가며 적응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 그동안 우리끼리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영상으로 기록하고, 남들과 소통해 보려고 한다는 점이 가장 긴장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림책 감정 코칭’에 관한 수업을 12회를 듣고, 지도자 실습을 하면서 자격증 시험도 보았다. 내가 배운 것을 평가받는다는 일이 생활에 좋은 긴장감을 주어 활력이 되었다. 아직 합격증은 받지 못한 상태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나를 많이 드러내야 하는 것 같아서 망설일 때도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위안이 될 때도 많았다.
올해는 지난 몇 년간 하던 일들도 꾸준히 하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뜻깊은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날짜 개념은 없어지고, 내가 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 찬 요일만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숨이 찼다.
그러나 숨 돌릴 틈 없는 일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올해는 감사하게도 여행을 통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여행을 많이 못 갔는데, 올해는 부모님 하고 다낭에도 다녀오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오사카와 교토도 다녀왔다. 친구들과는 부산을 다녀오기도 했고, 홍대 일대를 누비며 일상을 조금이나마 벗어나기도 했다.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셔서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것이 고마웠다. 아버지가 전쟁터로 파견되었던 곳에 가족들과 관광을 가게 되어 마음 한편이 뜨끈해졌다. 또, 아이가 더 크기 전에 낯선 곳에 함께 있다는 것이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이 자라게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8월의 땡볕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이는 여행으로 한 뼘이나 자라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나는 늙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있어서 그 속도가 조금이나마 늦춰지는 것 같다.
2024년 나는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기보다 재미있는 것들에 겁 없이 덤비면서 막연하게 무언가가 될 거라는 기대감만 키워갔다. 아직까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가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종착지도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그냥 달려볼 뿐이다. 재미있게 열심히 할 테니 제발 좋은 결과가 나오게 해 달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냈던 것 같다.
한편으로, 내가 있는 이 나라에서 계엄이 선포되고, 비행기 사고가 일어나는 등 엄청난 소식들을 접하면서 나는 혼자서 사는 개인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집단 속의 인간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모든 것이 남의 일이 아니었고,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도 안 되는 일들이 내 삶 속에서 일어났다. 그 속에는 나와 함께 지지고 볶은 가족들과 친구들, 동료들이 작년과 다르지 않게 그들이 내 곁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하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남편과 화해하지 않았는데, 이 글을 마치는 지금은 반 정도 화해가 이루어졌다. 하루라는 시간이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어른처럼 내게 물었다. “이제 좀 괜찮아? 2025년이 시작되기 전에 아빠랑 화해해. 내가 보기에 둘이 50 대 50이야.” 아이는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자 가방에서 학교에서 받아온 젤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반지 모양의 젤리가 있었는데, 나와 남편에게 하나씩 주면서 서로 교환하고 화해하라고 했다. 덕분에 어색하게 우리는 반지를 교환했다. 부모가 싸울 때 느낀 자식의 불안과 좌절을 아이는 서슴없이 토해냈다. 아이보기가 부끄럽고 미안해서 아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어느새 아이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자라 있었다.
어느 해보다 아이가 많이 성장한 2024년이었다.
어느 해보다 내가 나를 많이 다독이고, 내 곁에 그들이 여전히 모두 있다는 사실이 고마운 2024년이었다.
고맙다.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