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엄마

네가 사는 세상의 모습에 맞춰 네 꿈을 스스로 찾아가 봐!

by 박세미

아이가 꿈이 바뀌었다면서 자신의 장래희망을 콜라주로 표현한 그림을 내놓았다. 아이는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어 했었다. 나는 당연히 로봇공학자 모습의 그림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했다. 별로 궁금한 마음 없이 그림으로 눈을 돌렸다. 아이가 내놓은 그림을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아이의 새로운 꿈이 무엇인지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


“네 바뀐 꿈이 뭐야?”

“우주비행사!”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주비행사?’ 너무 뜬금없어서 놀랐고, 현실 가능성도 없고 막막한 미래 같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하얘졌다. 그러면서도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의 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우스웠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교 4학년이면 자신의 진로를 놓고 대학교를 결정할 만큼 본격적으로 학업을 시작한다고들 하는데, 우리 아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왜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거야?”

“응, 천문대에서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는 게 너무 좋아! 그 우주에 가보고 싶어.”


아이의 대답이 너무나 해맑아서 이것저것 더 물어볼 마음이 사라졌다. 물끄러미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세상이 어떤지 알 수가 없는데, 우주비행사가 비단 불가능한 꿈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소연이라는 우주비행사가 있지 않은가.


내가 본 세상의 크기에서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려니 아이의 생각이 허황된 이야기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세상과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다른 모습일 것이다.




내가 겪었던 초등학교 생활과 내 아이가 생활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한 반에 60-70명이 있었다. 교실에 사물함이 없어서 책가방에 시간표에 따라 책, 노트, 학용품을 모두 넣고 다녀야 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도시락도 가지고 다녔다. 이런 초등 학창 시절을 보낸 엄마다 보니 요즘 아이가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아이가 2학년 때, 그림책을 친구들에게 읽어줘야 된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그림책을 들고 글자를 읽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종이에 글자를 써서 책 뒤에 붙여 주었다. 그림책을 펼쳐서 친구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책 뒤에 쓰인 글자를 큰 소리에 맞춰서 읽으라고 했다. 아이가 헷갈려할까 봐 글자 앞에 숫자를 넣어서 그림과 글이 일치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다음날,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아이를 등교시켰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림책을 친구들에게 읽어주는 것에 대해 서둘러 물었다.


“아침에 친구들에게 책은 잘 읽어줬어?”

“잘 읽었어. 근데 엄마! 책 뒤에 종이를 붙일 필요가 없었어. 선생님이 책을 책상에 놓고 렌즈 같은 거로 비추니까 텔레비전에 그림책이 나오는 거야.”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나는 한참을 웃었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나는 그림책을 소개한다면 당연히 교탁 앞에 서서 그림을 보여주면서 읽어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이의 공개수업에 참석할 때마다 내가 지냈던 교실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교실을 보게 되었다. 공개수업은 엄마들이 아이들 수업에 참관하는 것인데, 수업의 대부분이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이용해서 이루어졌다. 내가 초등학교 때 장학사가 수업에 참관할 때면 담임 선생님은 칠판에 예쁘게 학습목표를 써 놓고, 커다란 하얀 종이를 긴 막대기로 넘기면서 수업을 하셨다.


내가 대학에 갔을 때, 삐삐와 시티폰이 등장했고, 이후 핸드폰이 나왔다. 반면,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핸드폰을 보았다.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적응하는 속도는 서로 다른 것 같다. 나는 핸드폰, 컴퓨터 등의 이름을 들어도 모르겠고, 그것들의 조작법은 내가 사용하는 것 이외에는 봐도 잘 모르겠다. 반면, 우리 아이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핸드폰의 이름들과 그 차이점들을 설명하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숙제를 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가지게 해 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아이가 로봇공학자라는 꿈을 가지고 있을 때는 내가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로봇을 공부해 본 적이 없어도 로봇이 지금 우리 생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로봇이 낯설지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접할 수 있는 로봇 관련 정보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분야도 아니고, 관심 있는 분야도 아니다 보니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몰라서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로봇 관련 책들을 아이에게 권하고, 기계공학이나 로봇 관련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수학과 과학을 잘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면서 사고력 수학 학원에 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로봇을 만들어 보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로봇공학자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아이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10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면, 나는 2-3단계까지가 기초단계라고 생각했다. 그 기초단계를 가장 단단한 틀로 잡아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로봇 공학자라는 아이의 꿈을 지지해 왔다.


기초를 다져주면 그 이후에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아이의 몫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 생각이 혼란을 겪은 것은 아이의 사고력 수학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학원이라는 곳이 아이들의 성적을 높이고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로봇 공학자 꿈에 맞춰 최종 진학 학교를 설정해 두고 학습 수준을 결정한 뒤에 학습 과정을 역산하여 선행 속도를 계산해 냈다.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나는 내가 준비가 안 된 학부형 같이 느껴졌다. 내가 던진 회심의 한 마디는 이런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제 열 살 좀 된 아이의 미래를 이렇게 단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저희 애가 고등학교 가서 문과를 갈지, 이과를 갈지도 모르잖아요.”

“어머니, 요즘은 문과, 이과가 나누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요즘의 교육정책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학부형이었다. 그 죄책감 비슷한 마음으로 아이를 영재반 테스트를 보게 했고, 수학 경시대회를 준비하게 했었다. 로봇을 하려면 대회도 참가해야 된다고 해서 로봇 관련 학원에 가서 상담도 받아 보았다. 이런 것들이 아이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과정 같이 말이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이것이 맞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이 있었다.


이런 나의 갈등은 어정쩡한 태도로 표현되었다. 아이에게 영재반이나 수학 경시대회에 대해 소개하고, 그것들에 대해 할지 말지의 선택은 아이가 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준비하는 것도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도록 했다. 그 과정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말로 나는 나와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려 했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학교 시험에 통과해서 교육청 영재교육원 시험을 볼 수 있었지만, 최종적인 교육청 영재교육원 시험에는 통과하지 못했다. 수학 경시대회 시험을 보러 가면서 아이는 많은 학생들이 시험을 본다는 것에 놀라워했고, 시험을 본다는 것 자체에 긴장도 했고, 어려운 문제들을 시간 안에 풀어야 한다는 새로운 경험만 했다. 수상은 하지 못했다. 나는 그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그 경험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안 한 것이나 다름없이 비쳤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혀서 아이와 내가 헤매는 듯한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이가 헤매면 엄마인 길을 보여 줘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이보다도 더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있었던 터널이 아니다.




나는 아이의 꿈을 지지하고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을 하게 놔두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엄마의 모습이 무능하게 비칠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천재도 아니어서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막연한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 학업에 능력을 보이는 다른 엄마들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다. 단지 모방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아이도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것 같았는데, 결과가 나온 순간 잔소리 폭탄이 떨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가 그 터널에서 빠져나와 또 새로운 터널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새로운 터널은 내가 그나마 아이의 미래를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던 것들을 다소 무력하게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주 비행사’라는 아이의 꿈을 내가 들었을 때, 그것이 허황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먼저 한 것 같다. ‘우주 비행사가 되려면 무엇을 하게 해야 하나?’라는 현실적인 고민을 먼저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앞으로 아이의 꿈은 몇 번이나 바뀔까 싶었다.


내가 지금 아이가 겪고 있는 학창 시절의 모습에 대해 느끼는 속도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수준이다. 정신없고, 주변을 둘러볼 틈이 없고, 빠르게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본 내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그리고 벅차다.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면서 수업의 진행과 방법을 나보다 빠르게 이해하는 아이를 보았다.




나는 아이의 미래를 내가 재단해서 이끌고 간다는 것에는 두려움이 있다. 아이는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매 순간마다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그 선택이 책임을 수반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는 내 뜻대로 그 선택에 대한 책임과 경험의 소중함을 느낄 겨를이 없어 보인다. 일단 결과가 나오면 아이는 주변의 판단과 평가를 먼저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저 믿어주고, 따뜻한 하루 세 끼 밥으로 나의 마음을 아이에게 표현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대한 충분한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늠도 할 수 없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아이가 그 세상의 모습에 맞춰 자신의 꿈을 찾고 스스로 이루어나갔으면 좋겠다. 아이가 제시하는 꿈의 한 마디에 내가 모든 과정을 준비하기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꿈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것을 나에게 요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날로그 엄마인 나는 아이가 스스로 결정한 것에 대해 필요한 것을 나에게 요구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로움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꿈을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면 좋겠다. 나의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아이를 품어주고, 아이가 스스로 날게 해 줬으면 좋겠다. 부모는 그저 아이 옆에만 있어도 충분한 존재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