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할머니가 보여준 사랑

: 삶을 버티고, 살게 하는 가족의 힘

by 박세미


안효림, 『자개장 할머니』(소원나무, 2024)



자개장이 그림책이 된 듯하다. 화려한 까만색 자개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느 집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에는 깨끗한 단색의 깔끔한 장이 놓였다. 자개장은 이제 과거 속에 흘러가 버린 물건이 되었다. 그래서 이 자개장은 어떤 이에게는 추억을 돋아나게 하는 물건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한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단지 역사 속 과거의 물건이 되기도 한다.



집안이 망해서 살림살이를 줄여서 이사 가는데, 냉장고보다 더 큰 자개장을 챙겨가는 것을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자개장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좁은 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장이었을 뿐이었다.



온종일 좁은 방 안에 아이는 자개장과 함께 있어야 했다. 아이가 자개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뿐이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개장이 아니라 어른이었다.



아이가 친구를 따라간 태권도장은 재미있는 곳이었다. 아이는 그 태권도장을 매일매일 다니고 싶어졌다. 아이에게 태권도장을 다니게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아이 옆에 그런 어른은 없다. 부모님은 생계로 바쁘실 뿐 아니라, 지금 아이의 가정 형편도 녹록지 않다.



태권도장을 다니고 싶은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라도 괜찮으니까, 지금 당장 나오란 말이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마법의 주문처럼, 화려한 자개장 패션을 한 할머니를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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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하고 등장한 할머니는 ‘사랑이 꽉 찬 곳에서 살다가 불타는 마음으로 부르면’ 나타난다고 했다. 엄마가 지켜온 자개장에 대한 사랑과 아이의 간절함이 힙한 207세의 할머니를 불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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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자개장 속 천상의 세계로 들어가 아이를 태권도장에 보내줄 복숭아씨를 구해 나온다. 그리고 이 복숭아씨 두 개를 손에 쥐고 태권도장에 등록을 하러 갔다.



생명이 없는 물건이라도 함께 지내면서 애정을 느끼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그 물건에 생명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가족에게 그 물건은 귀한 것이 된다.



대를 이어 내려오던 자개장은 단순한 장이 아니었다. 이 자개장은 엄마와 아빠에게 용기 내서 다시 살아 볼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마치 그 자개장은 아이의 부모님의 곁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절실하게 부모의 손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들이 해야 하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자개장 할머니가 대신해 주지 않았을까?



자개장 할머니가 사는 것은 힘들고, 오히려 힘들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힘들어야 씨가 있는 복숭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할머니의 툭 던지듯이 하는 말이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살면서 힘들 때, 그 곁에는 가족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토닥여주는 것 같다. 당당한 할머니의 모습처럼 어깨 활짝 펴고, 한 번 더 힘 있게 한 발 내밀어 보라고 격려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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