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라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이민선,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월천상회, 2024)
남색 바탕의 위쪽과 아래쪽에 그려진 노란 줄, 위쪽이 아래쪽보다 조금 더 두꺼울 뿐 별다른 무늬도 그림도 없다. 그래서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라는 긴 제목에 눈길이 먼저 간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다 보고 나면, 이 그림책의 표지가 절대 단순하고, 간단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 단조로운 남색과 노란색의 표지는 평화로워 보인다는 농장에서 180일 동안 훌륭하게 키워지는 돼지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표지는 그렇게 자란 돼지의 마지막을 담아낸 것의 모습이다.
세상에 나온 아기 돼지는 엄마와 떨어져 수많은 다른 돼지 친구들과 인간의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항생제를 맞고, 좁은 공간에 몸이 서로 쓸리는 것에 대비해 꼬리를 미리 잘리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이름이 아니라 관리하기 편리한 숫자로 불렸다. 그래서 이름표가 아니라 인식표가 아기 돼지 귀에 꽂혔다. 꼬리가 잘릴 때도, 인식표가 귀에 꽂힐 때도 마취는 하지 않았다.
돼지들의 공격성을 줄이기 위해 햇빛을 차단한 어두운 공간 속에서 아기 돼지들은 최대한 살을 찌우고, 그 살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최소한으로 움직인다. 만약에 구제역이 생기면 선별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원금으로 모두가 함께 살처분된다. 이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아기 돼지들은 공장형 사육시설 속에서 안전하게 자란다. 그리고 아기 돼지들이 잘 자라서 그 시설을 벗어나는 데는 180일이 걸린다. 자연 속에서 살면 15년 정도를 살 수 있는 돼지가 180일 동안이면 적당한 지방을 가져 인간이 먹기 좋은 돼지가 되는 것이다.
돼지가 공장형 사육시설을 나오는 날, 그날 돼지는 처음으로 세상의 햇볕을 받고, 바람을 느낄 수 있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돼지는 목살, 등심, 뒷다릿살, 안심, 등갈비, 갈비, 앞다릿살, 삼겹살, 혹은 통돼지의 형태로 깔끔하게 포장이 된다. 그리고 남은 것은 햄이 되어 예쁜 깡통 속으로 들어간다. 이 그림책의 표지가 바로 이 햄을 담은 깡통이었다. 돼지의 털과 발톱을 빼고 돼지는 모두 식탁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인간이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에 하나가 식사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인간은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육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식욕을 행복하게 충족하기 위해 생명을 함부로 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생각을 외면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 동물 복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동물의 생명을 상품으로만 생각하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돼지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돼지를 인간의 음식으로만 만들어 내고 있다. 돼지를 먹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돼지의 생명도 존중해야 된다는 것이다. 생명에 대해서 그 가치를 평가하고, 함부로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그림책은 인간도 태어나서 모두가 휩쓸려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키워지는 인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방목하면서 자라기 바라는 돼지의 모습을 바라는 마음속에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자라는 인간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학습으로 채워진 삶이 아니라,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스스로 터득하면서 자라나는 삶이 바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쨌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해도 또 '어쨌든' 모두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알기에 휩쓸려 가면서 평가받고 재단되는 삶을 무시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안타깝다.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없는 돼지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도 남이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나는 것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다.
이 모든 것이 생명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삶의 근원이고, 인생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