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담장 위에 오른다는 것

: 깨진 뒤에 시작되는 이야기

by 박세미

댄 샌탯 글/그림, 김영선 역, 『떨어질까 봐 무서워』(위즈덤하우스, 2019)




영국에는 ‘험프티 덤프티가 담 위에 앉아 있었네’라는 오래된 구전 동요가 있다. 담벼락에 앉아 있던 험프티 덤프티가 떨어져 깨졌고, 결국 아무도 그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동요는 오래도록 ‘깨진 뒤에는 되돌릴 수 없다’는 상징처럼 전해져 왔다.



그렇다면 ‘그 이후 험프티 덤프티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그림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험프티 덤프티는 담장 위에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워했다. 그러나 사고로 한 번 떨어지고 난 뒤 상황은 달라졌다. 상처가 아무리 아물었다 해도 다시 담장 위에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려움이 그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장에 오르지 못한 험프티 덤프티는 다른 방식으로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땅 위에서 망원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새 모양의 비행기를 만들어 날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세상을 바라보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가 만든 비행기가 다시 담장 위에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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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프티 덤프티는 떨리는 몸으로 다시 담장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마 그 순간에는 무엇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용기의 끝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알이 깨지며 그 안에서 새로운 날개가 펼쳐진 것이다. 험프티 덤프티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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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깨짐’을 실패나 상처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 깨짐은 새로운 변화를 여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상처를 딛고 다시 용기를 낼 때, 그 깨짐은 도전과 성장의 계기가 된다.



깨진 조각만 바라보며 주저앉아 있기보다, 그 틈 사이로 나타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가 없는 삶이 아니라, 깨짐 이후에도 다시 올라설 수 있는 용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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