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모신 집, 마음을 모은 공간

: 위엄을 넘어 기원의 공간으로

by 박세미

윤여림(지은이), 김세현(그림), 『종묘: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웅진주니어, 2009)




종묘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국가 최고(最古)의 사당이다. 조선 태조가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궁궐보다 먼저 종묘를 세웠다는 사실은, 유교 국가 조선이 무엇을 가장 중하게 여겼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상에 대한 예(禮)는 곧 국가의 근본이었고, 종묘는 그 정신을 집약한 장소였다.



종묘의 중심 건물인 정전은 우리 건축사에서도 특별한 위상을 지닌다. 지붕 길이만 70미터, 동서 길이 101미터에 이르는 국내 최장(最長) 목조건축물이다. 처음에는 일곱 칸의 감실로 시작했으나, 왕과 왕비의 신주가 늘어나면서 오른쪽으로 증축되었다. 이는 단순한 건축 확장이 아니라, 역사와 시간이 켜켜이 쌓여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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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장엄한 먹선과 화면 구성으로 시각화한다. 한 장을 덧붙여 펼쳐지게 만든 장면은 정전의 증축 과정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건축물의 물리적 길이와 함께 시간의 깊이까지 체감하게 한다. 또한 종묘에 이르는 길, 제례를 준비하는 손길, 의식을 기다리는 엄숙한 분위기를 세밀하게 담아내어 종묘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를 요구하는 공간임을 일깨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현실과 영혼의 세계를 대비한 표현이다. 현실은 색으로, 사후의 세계는 먹으로 그려 두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분했다. 글씨 역시 현실의 이야기는 붉은색, 영혼의 이야기는 검은색으로 나누어 배치했다. 제례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던 두 세계가 의식을 통해 만나고, 음악과 춤 속에서 인간과 신이 어우러지는 장면은 종묘를 위엄과 침묵의 공간을 넘어 ‘만남과 기원의 장소’로 재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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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꽃잎 아래에서 조상과 자손이 함께하는 장면은 종묘가 과거를 기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미래를 향한 다짐을 새기는 축제의 장임을 보여준다.



오늘날 종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지만, 보존의 이유는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역사의식과 공동체적 기원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공간을 현재의 상상력으로 되살려낸 이 그림책은, 우리가 왜 종묘를 지켜야 하는지를 묻는다.



종묘는 돌과 나무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과 정신이 축적된 장소다.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던 그 마음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어질 때, 종묘는 비로소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보존은 과거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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