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COVID-19)의 메시지

:온라인 세계로의 전환과 자연의 경고

by 박세미

올해 5월에 미국 미네소타주 편의점에서 위조지폐를 사용한 것으로 의심을 받은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경찰에게 체포되는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경찰은 총기를 소지하지 않은 조지 플로이드를 바닥에 눕히고 목을 눌러서 제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쳤지만, 결국 그 외침은 공중에서 의미 없이 사라졌다.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뉴스는 미국 안에서 벌어지는 흑인 차별 문제의 하나로 남의 나라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863년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이후로 줄곧 발생하는 미국의 사회적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들의 역사 속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로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전 가나 출신 방송인이 장례 댄스팀을 패러디한 졸업사진에 대해 인종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 안에도 인종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는 한국인이 아프리카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얼굴을 검게 칠하고 장례문화를 패러디하는 실수를 했다면서, 교육을 통해서 이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을 읽어보면서 나는 ‘아차’ 싶으면서도 학생들의 패러디 모습을 너무 오버해서 해석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는 그 방송인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해서 한국과 한국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만 한 사람이 왜 그래?’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그 사람 뒤에 있는 ‘아프리카,’ ‘가나,’ ‘흑인’ 등의 배경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방송인의 배경을 통해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문화를 소통하려는 마음은 나에게 전혀 없었다. 한국에 와서 생활을 하는 외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온 그의 뿌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0여 년 전에 내가 캐나다에 갔을 때, 처음으로 우리에게만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느꼈다. 대한민국이 동쪽 어디에 있는 반 토막 난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곳에서 가끔 느꼈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중국과 일본과는 크게 다르지 않고, 무엇이 다른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그 기분을 가나에서 온 외국인도 한국에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들은 영어 수업 중에 자기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비빔밥, 불고기 등으로 대표되는 나라였다. 우리의 음식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기보다는 한국식당에 몇 번 가서 먹어본 음식의 맛만으로 우리를 아는 척하는 것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눈에 걸리는 것들로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화폐를 설명했다. 직접 화폐를 보여주고, 그 위에 그려진 위인들을 소개했다. 고맙게도 내 생각보다 외국인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들이 보여준 진지한 눈빛 덕에 나는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들에게 보여준 것 같아 뿌듯했다.


나는 우리를 ‘한민족,’ ‘백의민족’ 등의 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 안에서 인종의 문제가 화두가 된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학업, 직업, 결혼 등의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서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필리핀 출신의 귀화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등록된 외국인 수가 124만 6,626명(법무부, 체류 외국인 통계)이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전국적으로 17만 6,915명(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이라고 한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더 이상 ‘한민족,’ ‘백의민족’이라는 협소한 단어로 제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들 중에는 한국사람 못지않은 한국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소통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같은 나라에 살지만 다른 모습을 인정해야 하고, 다른 이 모습들이 지금의 지구를 살아가는 동지(同志)라는 것을 염두 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인류의 문제들이 점점 높은 난이도로 발생하고 있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발생한 ‘우한 폐렴’이라고 떠돌던 전염병이 2020년 8월 현재까지 ‘코로나(COVID-19)’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마비시키고 있다. 전염병의 이름에서부터 어느 특정 지역을 벗어났다.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 그동안 상상해 보지 않았던 일들이 코로나로 인해 영화처럼 펼쳐졌다.


먼저, 국가 간의 문이 닫혔다. 유럽은 각국의 국경을 봉쇄하였고, 전 세계가 서로의 왕래를 제한하였다. 우리도 코로나의 확산 속도가 심각했던 이탈리아와 중국 우한 등에서 고립된 교민들을 우리나라로 데리고 왔고, 공항을 통제하였다. 여행을 가려던 사람들, 출장을 가려던 사람들, 유학을 가려던 사람들이 모두 발이 묶였었다.


두 번째로 국가뿐 아니라, 그 국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결국 사람들도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닫힌 인간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밖으로 드러났다. 사람들은 마스크나 화장지 등을 사재기하기도 했고,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동양인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부자들은 자신만의 피난처를 찾아들어갔고,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비교적 낮은 사람들은 코로나에 좀 더 노출되기도 했다. 또, 가정폭력도 늘어났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약국에 와서 ‘마스크 19 주세요’라고 말하면, 약사가 가정폭력으로 대신 신고해준다고 한다. 일명 '코로나 블루'라는 마음의 병을 전 인류가 겪게 되었다.


세 번째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더 커졌다. 컴퓨터는 학생들에게는 학교가 되었고, 직장인들에게는 회사가 되었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동아리방이 되었고, 종교인들에게는 교회나 절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문화생활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갑자기 시작된 온라인 세상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사람들은 금방 적응해 나갔다. 모든 것이 차단된 듯한 세상에서 컴퓨터는 안전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었다.


네 번째로, 직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다. 사회의 모습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십 년 맛 집으로 명성을 유지하던 가게들조차 문을 닫기도 했고, 직장인들도 인원 감축 등으로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생계를 위협받는 일은 사라지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물리적인 공간이 있어야만 회사이고, 사람을 만나야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살아남을 직업과 사라질 직업이 정리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일어난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해결해야 될 과제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인이 국가의 통제 아래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지구는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나 보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힘들어할 때, 초미세먼지 농도는 낮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동이 적어지자 초미세먼지 발생도 적어지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멈추자 자연이 쉴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지구가 회복하는 시간을 갖고자 인간들에게 어려운 과제를 던져준 것처럼 말이다.


나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내가 멸종을 앞둔 공룡이 된 것 같다. 멸종이 오는 것도 모르면서 안전하지 못한 지구에서 이리저리 살 곳을 찾아다니는 공룡 말이다. 인류라는 이름으로 이 난제를 하루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이 지구에서 우리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인종, 종교 등으로 더 이상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지구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생활하듯이 하면 지구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말해 주듯이 말이다. 국가 간에 경쟁하고, 국가 안에서 또 다른 기준으로 서로를 차별하기보다도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할 시간이다.


1347년부터 1351년까지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은 유럽의 장원 제도를 무너뜨린 것처럼, 코로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형성된 것들부터 인간관계까지 모두 뒤틀어 놓고 있다. ‘코로나 종식’이 아니라 이제 ‘코로나 통제’의 시대 속에서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 변화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는 것이 우선이지만, 이것만으로 다시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 새로운 세계는 온라인 세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안전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미국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인종문제가 우리에게 있었고, 어느 지역 폐렴에 지나지 않았던 전염병이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이 지구 상에 누구만의 문제는 이제 없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책임을 묻을만한 여유가 없을 만큼 문제는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다. 흑사병이 창궐했던 그 시대의 모습이 역사가 된 것처럼 코로나가 유행하는 이 시대도 후세에는 역사가 될 것이다.


코로나는 역사의 방향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 어떤 때보다도 서로의 문화를 역사를 통해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면 인류가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고,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공룡처럼 멸종할 수도 있다. 비행기를 열 시간 넘게 타고 가야 아프리카를 알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얼마든지 아프리카를 집안에서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적은 노력으로도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 관계를 맺었다. 온라인 세계는 오프라인 세계를 보완해 주는 것으로 많은 정보를 얻는 공간이었다. 반면,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세계는 오프라인 세계를 보완하는 것에 그치기보다 주된 생활권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보를 얻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을 통해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알아보고, 사람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고 있다.


더불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구도 숨 쉴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결국은 지구 안에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내 집 앞에만 쓰레기가 없으면 괜찮고, 우리 동네에만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지 않으면 그뿐이라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지금까지 ‘발전’에 맞추어졌던 삶의 속도를 ‘보호’와 ‘보존’에 맞추어 조절해야 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하는 경고를 더 이상 무시하면 안 된다. 어떤 일에서든지 자연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구의 주인은 인류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온라인으로 이동시켰고,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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