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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Dec 15. 2020

'Merry Christmas!' 없는 크리스마스 카드

: 손 글씨가 전해주는 마음과 온기

일로만 유지되는 사이가 있다. 그 사이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별다른 기대가 없고, 일적으로 폐만 끼치지 않으면 고맙다고 여겨질 관계일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그런 사이에 놓인 사람으로부터 카드 한 장을 받았다. 그 카드는 그가 나에게 보낸 일 더미 위에 사뿐히 올려져 있었다.


그 카드에 내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 카드의 내용은 누구에게나 알맞은 연말 인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내 사이 정도의 거리에서 느껴지는 호흡이 그 안에 배어 있었다.   


나는 그 호흡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가 건네는 적당한 연말 인사에서 그 사람의 조심스럽고 섬세한 마음이 느껴졌다. 검은색 모나미 볼펜으로 꾹꾹 눌러서 한 글자씩 썼을 것 같은 글씨들이 카드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나는 그 글씨들 너머로 그 카드를 쓰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과 사무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따뜻한 사무실 모퉁이에 놓인 낡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사무실의 조명은 은은하고, 가습기는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리고 물이 끓고 있는 커피 포트는 잔잔한 기침을 토해내고 있을 것 같다. 창문 밖에는 눈이 흩날리고 잔잔한 음악이 사무실 안을 가득 매우고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은 한 해 동안 함께 일한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앞으로도 우리 사이에 '아름다운 거리'가 유지되어 이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담히 한 글자씩 써 내려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다 쓴 카드를 일 더미 위에 놓고는 오늘 하루 자신의 일이 끝났다는 것에 후련한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다.


단지 카드 한 장을 손에 쥔 그 짧은 순간에 그 사람의 따뜻함이 글자들을 통해 나에게로 전해졌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으로 뭉클해졌다. 그와 나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런 사이에서 나를 생각하며 카드를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웠다. 그 사람이 자신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썼을지도 모르는 손으로 쓴 카드 한 장이 나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그동안 많이 외로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아끼는 사람들도 이런 감동을 느꼈으면 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받은 감동보다 더 큰 감동을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나는 내 친구들이 적어도 나와 같은 감동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카드를 샀다. 카드마다 그 친구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고, 그 친구와의 이야기와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카드를 받을 친구들을 생각하며 손 글씨로 한 장씩 카드를 써 내려갔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써야 감동을 줄 수 있을까?’라는 힘이 들어간 나의 마음 때문인지 막상 글은 잘 써지지 않았다. 담담하지 못한 내 마음이 카드에 글자를 욱여넣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 나에게 감동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이 친구들 덕에 내가 올 한 해 잘 버틸 수 있었다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올 한 해는 코로나로 인해 마음대로 누구를 만날 수도 없었고, 계획을 세우는 일 조차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에는 풀지 못한 숙제들만 가득했고,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들만을 가까스로 해치우면서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그 버거운 길에서 내가 나의 중심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덕분이었다. 함께 고민하고, 웃고, 울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항상 나에게 늦게 가 괜찮고, 그 길 가운데 서 있어도 괜찮고, 그 길을 벗어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응원해 주었다. 위로 아닌 격려와 격려 아닌 위로로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내 인생에 함께 있어 주었다.


우체국에 갔다. 카드 뭉치를 꺼내놓으면 나는 한 마디 툭 했다.

“앞의 것 하나만 미국이에요.”

젊은 여자 직원이 당황하듯이 일어나서 건너편에 있는 경력이 있어 보이는 직원에게 가서 뭐라고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는지 곱씹어 보았다. 그 젊은 직원은 뭔가를 확인하는 듯했다. 자기 자리로 돌아온 그 직원이 나를 위하는 말투로 말했다.

“어, 이거 하나 보내는데, 2-3만 원 들어요. 그래도 보내시겠어요?”

“네?”

그 순간 나는 망설였다. 2-3만 원 들이고 이 카드 하나를 보내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나 역시 천 원짜리 카드 한 장을 2-3만 원을 들여서 보내는 것도 아까웠다. 그리고 ‘내가 보내는 이 카드가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카드 하나가 뭐라고 돈을 그만큼 들이면서 보내나 싶었다.

“그럼, 됐어요. 그건 다시 돌려주세요.”

나는 내가 쓴 카드를 사진으로 찍어서 그 친구에게 이메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와 나는 연락이 소원한 관계도 아니다. 24시간 열어 둔 채팅방에서 실시간으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친구에게 내가 이 카드로 내 마음을 전하면 무엇을 얼마나 전하겠나 싶었다. 나의 행동들이 모두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카드의 내용뿐 아니라, 앞뒤까지 꼼꼼히 사진으로 찍었다. 그런데 내가 찍어 놓은 사진에는 나의 마음도 나의 온기도 없었다. 사진 속의 카드는 내가 쓰는 동안 내내 내 친구를 생각했던 그 마음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내 마음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낯선 사람으로부터 느꼈던 그 고마운 감동처럼 내가 전해주는 감동이 오늘의 삭막함을 이겨낼 힘을 만들어 줄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내가 찍은 사진 속 카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물었다.

“왜 그 카드는 안 보내고 사진을 찍어?”

“이것 보내는데 2-3만 원이나 달래지 뭐야!”

나는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내가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동의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의 그런 말투를 밀어내면서 당연하다는 듯한 말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보내면 되지!”

“어? 어? 그래……. 보내면 되지.”


그 단순한 말이 내 머리에 와 부딪혔다. 친구에게 카드를 썼으니 우체국에서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내가 찍은 사진을 바라봤다.

“그래, 보내면 되지……. 네 말이 맞다.”

나는 혼자서 아이가 한 말을 되뇌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우체국을 찾았다.


“어? 이거 보내실 거예요? 이거 2-3만 원 들어요.”

“괜찮아요. 보낼게요.”

“크리스마스 카드 하나예요?”

“네.”

“진짜 보내실 거예요?”

“네, 외롭잖아요.”

“코로나로 EMS로 밖에 안돼요. 2주에서 한 달 걸려요.”

“괜찮아요.”


나는 카드에 감동받은 나를 보면서 내가 외로웠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했었다. 내가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 카드가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그 부분을 건드려 준 것 같았다.


나는 그 친구도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친구도 내게 외롭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남편과 예쁜 아이들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내 입에서 우체국 직원에게 내가 카드를 비싼 값을 내고도 보내야 한다는 명분을 보여주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가족과 친구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난국이 버겁기만 한데, 내 친구는 일상을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견하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다. 외롭다는 것은 내가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 중에 하나였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이 ‘외롭다’는 말로 툭 튀어나온 것 같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로 미국에서 코로나 피해를 보는 것으로도 무섭고 힘들 것 같은데, 미국은 이제 누구라도 미국인이 될 수 있었던 나라에서 누군가는 미국인이 될 수 없는 나라라는 것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남의 나라에서 내 친구 혼자서 태극기를 꽂고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드 안에 크리스마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내가 쓴 크리스마스 카드가 크리스마스에 도착하기를 바라면서 친구에게 카드를 보냈다.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선물이 되기를 바랐다.


백신이 개발이 되고 이것으로 코로나가 사라지기를 모두 기대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면, 과학의 힘으로 우리는 다시 마스크 없는 일상, 사람과 사람이 함께 만나며 살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과학이 되돌려 준다면, 코로나로 망가져 버린 우리의 마음은 무엇이 고쳐줄 수 있을까. 가장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의 마음과 온기를 통해 상처를 드러내 놓고,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손글씨가 그 마음을 전하고 온기를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받은 손으로 쓴 카드가 나에게 위안과 감동이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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