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화를 낼 것 같았다. 그저 내가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분노, 서운함, 무시 등의 모든 나쁜 감정들이 폭발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의 화는 나와 아이에게 모두 의미 없는 것이다. 나의 마지막 이성을 붙잡고 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없는 방은 적막했지만, 액자 속 아기의 모습에 그 방에 들어서면 한 두 살 된 아이와 그 시절 젊은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도 나는 육아가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아이의 사진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이 사진에서 물고기가 살고 있는 어항으로 시선을 옮겼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 때문에 구피라는 물고기를 키우게 되었다. 아이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내가 반려동물들과 생활해 본 적이 없어서 그들을 키우는 것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반려동물은 물고기 구피였다. 구피는 예전에 아이의 친구가 몇 마리 줘서 키워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구피가 비교적 다른 물고기들보다 키우기 쉽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서 키우다가 정이 들었었다. 서너 마리의 구피가 수 십 마리의 구피 가족을 이루었다. 안타깝게도 이사 와서 잠깐 구피를 베란다에 내놓았는데, 추위에 모두 죽었다. 11월이었다. 그 정도 추위는 잠깐 동안 괜찮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무식한 내 생각으로 떠나보낸 구피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나는 다시는 구피를 키우지 않으려고 했다.
벌써 4년이 지났다. 우리는 다시 구피 5마리를 사 왔다. 그중 암컷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온 지 이틀 만에 새끼를 낳고 죽었다. 새끼는 모두 7마리가 살아남았다.
나는 구피들에게 먹이를 주고,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았다. 내가 뿌려 놓은 구피들의 먹이는 벽돌가루 마냥 물 위에 떠 있었다. 나는 ‘너무 많은 먹이를 주었나?’라고 걱정하면서 구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동안 인지 모르겠지만, 구피들의 먹이가 살포시 가라앉듯이 나의 분노, 서운함, 무시 등의 나쁜 감정들이 내 마음 또 다른 한 구석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어른 구피 3마리와 아기 구피 7마리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한참을 보다 보니, 이 좁은 물속에도 서열이 있는 것 같았다. 새끼 구피들과 어른 구피들은 먹는 위치가 달랐다. 대체적으로 새끼 구피들은 수면에 가깝게 떠올라서 커다란 움직임 없이 먹이를 먹는다. 반면, 어른 구피들은 가끔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하지만, 또 가끔은 낮게 헤엄치며 떨어지는 먹이를 먹는다. 마치 새끼 구피들은 먹이 주변만 서성일 수 있지만, 어른 구피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맞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먹이를 쫓아다니는 새끼 구피들에 비해, 어른 구피들은 먹이를 기다리는 것 같아 여유까지 있어 보였다.
세 마리의 어른 구피들은 꼬리에 꼬리를 따라다니면서 여기저기 함께 헤엄을 쳤다. 이 모습이 마치 내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구피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자신들의 화려한 수영 솜씨로 돌 사이를 누비면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구피들을 따라 돌 사이를 들어갔다 나왔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바라봤다.
어른 구피 세 마리가 하나의 팀을 이루어 정신없이 돌아다니더니 얼마 전 어른 구피 두 마리가 죽었던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나는 순간 놀랐고, 무서워졌다. 그 세 마리의 모습에서 힘없이 늘어져 누워 있던 죽은 두 마리의 모습과 4년 전 얼어서 죽어 둥둥 떠 있던 구피 떼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세 마리가 그곳을 나오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그 세 마리는 한참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어른 구피들이 있는 곳을 손으로 톡톡 쳤다. 세 마리의 구피들을 흩어지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피들은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구피들의 집을 흔들었다. 구피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경직된 그들의 몸짓에서 구피들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구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뭐지?’ ‘무슨 일이지?’ 나는 구피들의 모습에 더 당황했다. 이미 두 마리의 구피가 죽은 그 자리에서 또 다른 구피들이 잘못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으로 도와주려던 나의 행동들이 그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천재지변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내 기분만큼 무거운 시간이 잠깐 지났다. 어른 구피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려한 몸짓으로 돌들 사이를 가뿐하게 통과했다. 나는 혹시라도 돌 때문에 사고가 생기면 바로 돌을 빼주려고 계속 구피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구피들은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때 구피가 살고 있는 집이 보였다. 우리 집 구피들은 곤충 채집통에 산다. 유리로 만들어진 어항이나 수족관은 내 생각보다 비쌌다. 나는 구피들의 집으로 그만한 지출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저렴한 플라스틱으로 된 집을 찾다 보니 곤충 채집통이 눈에 띄었다. 투명한 플라스틱과 핑크색 뚜껑이 있는 곤충 채집통이다. 핑크색 뚜껑은 그물 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투명한 창이 있다. 그 창을 열고 물고기 밥을 줄 때는 마치 내가 물 위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곤충 채집통은 내가 선택한 적당한 구피의 집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곤충 채집통이 아니라 구피를 위한 어항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구피의 집이 어항이 아니라, 곤충 채집통으로 보였다. 물고기인 구피가 어항이 아닌 곤충 채집통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실용적이라기보다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구피들을 살리려고 흔들어 대던 그 순간 구피들이 움직이지 않고 굳어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어항이 어색해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굳어진 구피들의 모습에서 나의 분노에 얼어 있는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아이의 행동이 위험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잔소리를 한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잔소리와 장맛비처럼 내리 꽂히는 비난들을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퍼붓는다. 아이의 마음이나 생각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이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내 마음이 해소될 때까지 잔소리와 비난을 퍼붓는 것 같다. 나에게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의 전제는 내가 아이를 잘 알고 있다는 것과 나는 아이가 살아갈 시간을 이미 살아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겪을 위험이나 고통을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을 겪지 않게 도와주어야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어른 곤충이면 아이는 당연히 아이 곤충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만들어 놓은 곤충 채집통 안에서 살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내가 느끼는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아이는 나와 전혀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혹은 그것들을 스스로 겪어 내면서 성장할 수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 아이는 나와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나는 곤충이지만 아이는 곤충 채집통에 살고 있는 나와는 전혀 다른 생명체인 물고기일 수도 있다.
곤충이 물고기를 낳았다는 판타지(fantasy)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나는 그만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진 다른 모습의 사람일 뿐이다. 내가 아이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 경험으로만 아이를 판단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으로 아이를 작은 세상 속에 가두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턱 놓였다. 누가 짊어준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만들어 들었던 짐을 내려놔도 될 것 같았다. 내가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길을 갈 때 바라만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아니지만, 구피들을 보면서 확인받는 기분이 들었다. 곤충 채집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항으로 알고 잘 살아가는 구피들이 고마웠다. 이제 부족한 엄마지만 나에게 찾아와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내 욕심과 기대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 방에서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왔다. 이 마음이 며칠 가지 못할 것을 알지만, 끊임없는 작심삼일처럼 계속해서 노력하고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괜찮은 엄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나는 아이의 모습에 입은 다물고, 마음은 열기로 다짐했다. 제발 나의 이런 마음을 아이가 조금이라도 알아주길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