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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Jan 19. 2021

버릴 수 없는 낡은 편지

내가 힘들 때 함께 눈물 흘리고, 내가 기쁠 때 누구보다 좋아해 주는 존재가 가족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히 서로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서로에게 상처가 될 때가 있다.


어려서 형제들과 수도 없이 싸웠고, 부모님께 수도 없이 혼나면서 그 서운함이 몇 시간 가지 않았다. 싸우는 것도 당연했고, 화해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는 각자의 생활에 치여 싸울 일도 피하게 되고, 서운한 일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 번 어떤 일로든 한 번 서로의 참았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드러나면 그것의 시작과 마무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게 되었다. 그저, '가족'이라는 근원적인 이유로 다시 그 상처를 덮을 뿐이다. 이것이 해결책으로 좋은 방법인지 나쁜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본능 같다. 가족이라는 말이 갖는 인간의 회기 본능을 자극하는 힘인 것 같다. 그래서 가족은 끊어내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끊어낼 수 없는 인연인 것 같다.



읽을 때마다

내 마음대로 읽어내는

낡은 편지


때로는 위안을 받고

때로는 상처를 받고


많은 이야기 속에

순수했던

우리가

함께

살아 있다.


내가 받은 것도

내가 쓴 것도

아닌


가족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

써 내려간

수많은  

낡은 편지


낡은 종이 위에 채워진

수많은 글자마다

가족...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혀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고마운 줄도 모르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있는 그대로의 발가벗은 모습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타인 아닌 타인


가족...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시작되는 인연이 아니라

같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시작되는 인연이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의 방패가

되어 줄 수 있다고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시가

어느 칼 못지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서로 달라지는 삶의 무게에

서운함이 베어 든다.


이 낡은 편지에 상처 받아

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내 상처로

또 다른 상처를 만든 것에

미안함이 스며들어


결국...


낡은 편지는

덩그러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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