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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Apr 16. 2021

사망자 제로, 끝?!

: 살아남은 것이 부당한 것도 감당해야 해?

지난주 토요일 오후, 피곤한 몸을 푹신한 소파에 힘들게 누이면서 목적 없이 핸드폰을 열어 이것저것 뉴스를 뒤졌다. 의미 없이 넘기던 내 손이 멈췄다.      


“남양주 다산동 주상복합건물 대형화재”     


‘설마’라는 생각으로 관련 기사를 넘겼다. 남양주 도농동 주상복합건물에 사는 내 친구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나에게 뉴스에 나올만한 큰일은 없었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코로나 확진자 수에도 내가 아는 사람은 현재까지 없다. 그래서 이 기사도 그저 뉴스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찝찝한 기분과 두려운 마음이 신기하게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고 그 기사를 열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나를 다독였다.     

‘그래, 다산동. 다산동이야. 다산 신도시 있는 곳인가 보네.’

‘그래, 주상복합건물. 요즘 신도시면 다 주상복합건물이 서지...’

‘그래, 대형마트. 주상복합건물이면 그 아래 대형마트 있을 수 있지......’     


기사를 따라 내려가던 내 시선이 검붉은 화마에 휩싸인 사진 한 장에 멈추었다.

내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래, 요즘 아파트 다 비슷하지.............’     


내 시선을 붙들어 놓은 그 사진은 내 친구가 살던 아파트의 지하에 있는 대형마트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불길이 그 통로를 다 집어삼켰는데도 그곳이 어딘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다른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요즘 아파트가 다 비슷하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냥 내 친구가 살고 있는 바로 그 아파트다. 내가 찾아본 몇 장의 사진에는 내 친구가 분리수거하는 곳, 대형마트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 그리고 지상 주차장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사진이다. 그저 사진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울릴 때마다, 내 심장은 더 세게 나댔다. 통화음이 사라지면서 친구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이제 알았어?’


‘다산동이라는데? 도농동 아니라.’


‘얼마 전에 동 이름이 바뀌었어.’    

 

심장이 턱 하고 앉으면서도 차분한 친구의 목소리에 안심이 되었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뉴스에 등장한 그곳이 친구가 사는 그곳이 맞았다. 친구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친구는 집에서 일을 하는 프리랜서이다. 그 날 오후에 일을 끝내고 쉬고 있는데, 아이의 친구 엄마가 놀란 목소리로 ‘괜찮냐’는 전화를 했다고 한다. 친구는 아파트에서 사이렌이 울리거나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고서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전화통화를 하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연기가 오르는 것이 보였다. 친구가 놀라서 창문을 모두 닫고 귀중품만 챙겨서 아이와 함께 계단으로 내려왔다. 남편이 잠시 나간 사이였다. 친구는 입고 있던 옷에 슬리퍼만 신고 나왔다.       

 

많은 사람들의 아우성과 시끄러운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뒤엉킨 그 혼란 속에 친구는 잠시 서 있다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그렇게 2-3 시간이 흐른 뒤에 나와 통화를 한 것이다. 그래서 내 친구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때만 해도 금방 불길이 잡혀서 화재가 진압되어 다음날이라도 집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뉴스에도 가스를 마신 사람들이 병원에 실려가기는 했지만 위중하지는 않고 사망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화재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더 이상 큰일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뉴스에는 ‘남양주 화재 사망자 0’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사람이 죽지 않은 화재이니 큰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이 난 지 10시간 만에 화재는 진압되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릴지 몰랐지만, 불은 예상대로 꺼졌다.


하지만 내 친구는 당장 돌아갈 곳이 없었다. 친구는 더 이상 침착하지 않았다.   

   

다음날 친구는 자기 집 현관문을 소방대원이 부셔 줘서 경찰 입회 하에 자기 집을 들어갔다. 부엌에서 가스누출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려댔고, 검은 먼지가 집안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옷장과 서랍장을 열었는데 그곳에도 검은 먼지가 들어와 있었다. 양말 한 켤레조차 멀쩡한 것이 없었다.      


먼지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집은 검붉은 화염의 냄새도 고스란히 들이마셨다. 물건마다 매캐하고 텁텁한 화염의 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그 냄새의 성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병이 걸릴 것 같은 기분 나쁜 냄새라고 했다. 상식적으로도 인화성 물질들이 많이 불에 탔을 것이고, 그것에 유해물질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친구는 여행 가방에 옷과 아이의 교과서 몇 권을 챙겨 일단 친정에 갖다 두었다. 그리고 친구네 가방의 화염 냄새가 친정집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매일매일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하신다고 한다. 그런데도 친구 집에서 온 물건들에 배인 화염 냄새는 사라질 줄을 몰랐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할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 친구 가족은 그동안 가족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잃었고,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하는 내 친구는 직장을 잃었다. 결혼 생활 15여 년 동안 장만하면서 살았던 모든 살림살이가 사라졌다. 당장 다음 주에 등교하는 아이가 가장 큰 문제였다. 아이가 펼쳐 놓고 나간 책, 노트, 연필 등도 온통 먼지투성이어서 만질 수도 없었다. 모든 학용품을 다시 사야 했고, 아이의 교복과 체육복을 세탁했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아서 다시 준비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3주마다 학교를 가서 등교날이 곧 수행평가 날이 된 현재, 아이는 자신의 수행평가 준비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친구 집에는 검은 먼지가 잔뜩 깔렸고, 매캐하고 불편한 냄새가 가득 차 있다. 혹시라도 모든 것이 불에 탄 것이 아니니까, 털어내고 닦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눈에 보이는 검은 먼지를 치워 줄 테니 들어가서 살라고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물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친구는 자기 집에 다녀와서는 머리가 아파서 고생했다. 청소를 하고 난 뒤에도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유해 냄새와 힘든 기억이 사라질지 알 수가 없다.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 상황에 대해 내가 살아남은 것만을 감사하라는 것은 억지다. 상가는 전소했는데, 그래도 4층이라서 집이 다 타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억지다. 당신의 피해가 누구의 피해보다 크다, 작다를 논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들에게 못할 짓이다. 피해자는 피해자다.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진 피해자들에게 다행이라는 말로만 위안을 삼으며, ‘어느 정도는 책임은 져줄게’라는 태도는 무책임한 것이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정당하게 보상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막막한 터널에 떠밀려 들어간 사람들이 그 터널에서 나오려면 내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들을 해결하고 그 기억이 희미해질 때까지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루하루 통화할 때마다 기운이 빠져나가는 내 친구의 목소리가 다시 힘찬 내 친구의 목소리로 돌아오려면 얼마나 걸려야 할까. 나는 친구에게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는 말이 ‘네가 지금 당하는 모든 부당한 것들을 받아들여도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큰 상처 없이 일이 빨리 그 어두운 터널에서 나오기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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