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가서 먹어보고 네 입에 안 맞으면 사이다 부어라잉”
책보에 묵직한 김치통을 싸면서 시어머니가 혼잣말처럼 쏟아냈다.
“엄마, 그거 쏟아지면 안 돼, 잘 덮어서 묶었지? 차에 냄새 밴단 말이야!”
남편은 사이다보다 더 톡 쏘는 말을 쏟아냈다.
“누가 얼마나 먹는다구!”
결국 남편은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한 마디를 톡 쏘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어머니는 김치를 담으신다. 총각김치, 열무김치, 배추 겉절이, 갓김치, 파김치 등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따로 김장도 하신다. 나는 시어머니가 김치를 담으시는 것을 결혼한 지 12년 만에 보았다. 매번 새로운 김치를 밥상에서 처음 봤다. 나에게 시어머니의 그 김치가 항상 처치곤란 짐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김치가 바닥을 보이는 날이 왔다.
시아버지는 내가 결혼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간암판정을 받으셨다. 175센티 키에 70킬로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시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50킬로가 조금 넘었다. 시아버지 형제분들도 모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그랬는지 시아버지는 미리 그 병을 준비하고 계셨던 분처럼 차분하게 치료를 받으셨다. 그 때부터 나는 한 달에 적어도 두 번씩 시댁을 찾아가 시부모님을 뵈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1주일에 한 번씩 시댁을 찾았다. 친정에는 더욱더 가기 힘들어졌다. 그 괴로움의 위로가 된 것이 시어머니의 따뜻하고 맛있는 밥상이었다.
시어머니는 투박하고 따뜻한 밥상을 매번 차려주셨다. 밥상에는 항상 갖가지 김치와 장아찌, 생선튀김, 찌개가 기본 반찬으로 올라와 있었고, 불고기나 삼겹살이 돌아가면서 놓여졌다. 밥을 놓을 자리도 부족할 만큼 그 반찬 가지 수가 많았고 그 맛도 훌륭했다. 그 많은 반찬들 사이로 물김치가 항상 시아버지 가장 가까운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찰랑찰랑 넘칠 것 같은 그 물김치를 볼 때마다, 반찬도 많은데 식구들이 먹지도 않는 저것까지 굳이 내 놨을까 싶었다. 시아버지만이 그 물김치를 드셨다. 시아버지는 식사를 마칠 때가 되면 무슨 소화제라도 되는 것처럼 시원하게 쭉 들이키고서 ‘아이, 잘 먹었다’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전라도 분이시다. 시어머니의 김치는 모두 맛있다. 물김치 딱 하나만 빼고 말이다. 맑은 국물에 하얀 작은 무조각과 쪽파가 있었고 가끔 미나리가 보였다. 물김치는 먹을 때 보다 어디에든 쏟아져야 흥건한 짠 냄새를 풍기면서 비로소 ‘나도 김치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김치인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그 물김치가 제일 반갑지 천덕꾸러기였다. 물김치를 싸올 때부터 국물이 흐를까봐 남편은 전전긍긍했고, 우리 집에 와서도 물김치는 우선순위가 국이나 찌개에 밀리는 국물계의 2인자였다. 시원하지 않으면 별다른 맛이 없어 나는 매번 사이다를 부어 놓아야 했다. 매번 물김치는 번식을 하는 듯이 시댁에서 받아올 때보다 그 양이 몇 배가 많아졌다. 물김치는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줄지가 않는 마법의 김치였다.
우리 집에서 그 물김치의 모습을 못 본 지도 5년이 되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김치 담그시는 횟수나 김치의 종류와 그 양이 줄어들기 시작한 지도 5년이 되었다. “네 아버지 없으니께, 김치 안 담가서 좋네. 나도 그 물김치가 너무 싫었당께. 무심한 양반...” 얼마 전 시어머니와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무심코 뱉은 말이다. 그 때서야 알았다. 시어머니는 간암을 시작으로 위암까지 겪어내는 자신의 남편을 위해 솜씨 없게 그 물김치를 끊임없이 담갔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물김치를 보면 밥상의 한편에 웅크리고 앉아서 힘겹게 식사를 하시고 마지막에 시원하게 물김치를 들이키시던 시아버지가 떠오른다. 푹 익어서 시원한 맛이 저절로 우러나기도 전에 시아버지는 물김치를 소화제처럼 드셨던 것 같다. 항상 잘 먹었다면서 수저를 내려 놓는 시아버지의 밥그릇에는 밥이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시어머니는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짜지도 않고, 얼큰한 맛이 들어가지도 않은 밍밍한 물김치를 만들어 항상 상에 올리셨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그 물김치를 항상 시아버지 앞 밥상 모퉁이에 놓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