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DNA
너는 나보다 잘 ‘뛸 수 있어!’
아이가 허겁지겁 집에 들어와서 줄넘기를 가지고 나갔다. 베란다로 내다보니 아파트 단지 안에서 혼자 줄넘기를 하고 있다. 학원 다녀오던 길에 줄넘기하고 있는 친구를 보고,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줄넘기를 가지고 나갔었다. 아마도 그 사이 친구는 집으로 들어갔나 보다. 아이가 열심히 혼자서 줄넘기를 뛰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는 아이의 친구가 집에 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줄넘기를 너무 못 뛰고 있었다. 남들이 한 박자에 뛰어넘는 것을 아이는 두 박자에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고 10개를 넘기지 못하고 정확하게 줄에 걸렸다. 나는 누가 볼까 봐 길게 목을 빼고 주변을 살폈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집으로 들어오라고 아이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10분 정도 꿋꿋하게 줄넘기를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어왔다. “날도 더운데 뭐 하러 그렇게 뛰어”라며 나는 안쓰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아이는 내 마음과 다르게 “100개 채웠어!”라며 신이 나는 목소리도 대답했다.
다른 아이들은 쌩쌩이, 2단 뛰기, 3단 뛰기, X자 뛰기를 하면서 줄넘기를 한다고 한다. 그런 재주까지 부리지 못하는 애들도 100개, 200개 정도는 쉽게 뛴다고 들었다. 우리 아이는 2학년 여름 방학 때 태권도장에서 줄넘기 특강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100개 정도는 거뜬히 한 번에 뛸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에게 현란한 줄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줄넘기를 입으로 가르쳤다. 줄넘기 못하는 아이에게서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줄넘기 연습을 하는데 줄에 턱턱 걸려서 속상해하고 있는 초등학교 1-2학년 된 내가 보였다. 내 줄넘기는 빨간색과 갈색 중간쯤 되어 보이는 어두운 빨간색이었다. 두 개도 제대로 넘지 못하고 줄이 발에 걸려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아무리 해도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줄을 넘지 못했다. 엄마는 나에게 조심하라는 말만 하셨다. ‘뭘 넘어야 조심하지, 조심할 것도 없는데 뭘 조심하라는 거야’ 내 온몸에 가시가 돋아서 엄마의 말 한마디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동생이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것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줄넘기를 못하는 것 같아 오히려 동생한테 짜증을 부렸다. 그렇게 한참을 뛰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씽씽’ 소리가 나면서 내 발에 줄넘기가 걸리지 않고 30개 이상을 뛰었다. 더 뛰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멈춰야 하는 건지를 고민하다가 일단 멈추었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 신이 나서 자랑을 하려고 보니, 내 줄넘기가 끊어져 있었다. ‘아...’ 탄식이 나왔다. 나는 줄넘기와 상관없이 혼자서 발만 뛰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허무했다. 허무하다고 줄넘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새 줄넘기로 뛰었다.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은 다 뛰는데 나만 줄에 턱턱 걸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다시 뛸 수밖에 없었다.
새 줄넘기는 어떤 색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집에 줄넘기가 몇 개 있었는데, 아무거나 들고 했던 것 같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줄을 뛰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줄을 ‘슝슝’ 넘고 있었다. 이 줄도 끊어졌나 싶어서 몇 개를 뛰고는 멈췄다. 다행히 줄은 끊어져 있지 않았다. 그 날부터 나는 줄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못했던 운동은 비단 줄넘기뿐이 아니다.
나의 100미터 달리기 최고 기록은 19초다. 고등학교 1학년 체육시간이었던 것 같다. 평상시 20초대로 뛰던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19초 뒤에 소수점이 붙기는 했지만 19초대로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물론 19초와 20초의 차이는 체육점수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남들의 기준에는 의미가 없는 기록이다.
그런 내가 달리기에서 1등을 한 적이 있다. 교회 체육대회였는데, 6-7명이 한 조로 뛰어가서 중간에 있는 쪽지의 미션을 수행하고, 결승점으로 들어오는 달리기 경기였다. 내가 잡은 종이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냥 달리시오.’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말 그냥 달려가도 되는 것인지를 믿을 수가 없어서 잠깐 서서 두리번거리다가 나는 달렸다. 다른 친구들은 누군가의 신발을 달라고 실랑이를 하고, 어떤 친구는 쪽지에 적힌 선생님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나는 그냥 앞만 보고 달렸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순간 머쓱해지기도 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달려서 1등으로 들어왔다. 내 앞에 아무도 달리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뒤로는 한 번도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는 체육시간에 국민 체조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잘 뛰지 못하는 아이였다.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운동을 못해?”
엄마는 나를 한 번에 이해시켜 주었다.
“응, 나도 못했어.”
그 말을 듣고는 내가 운동을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내 운명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우리 아빠가 수영을 잘하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세상에 내가 운동을 못한다고 해서 불편하거나 위축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못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면서 살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 틈에서 확연히 운동을 못하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자, 같은 반 엄마들끼리 축구단을 만들었다. 남자아이니까, 친구들과 운동하면서 놀면 좋을 것 같아서 우리 아이도 그 축구단에 들어갔다. 한 팀이 10명 정도였고, 시간도 서로 맞추어야 돼서 쉽게 들어갈 수 없는데 운이 좋게 들어갔다. 아이는 작은 체구지만 민첩해 보여서 그런지 유니폼을 입고 축구화를 신으니 제법 축구 선수 같아 보였다.
일주일에 한 번 셔틀버스를 타고 아이는 축구를 하러 갔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뛰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다녀와서 하는 말로 아이의 축구 실력을 가늠해 볼 뿐이었다.
“오늘은 어땠어?”
“오늘은 서 있기만 했어.”
“골키퍼야?”
“응, 근데 엄마, 내가 서 있으니까 애들이 막 골을 넣어.”
“골키퍼만 했어?”
“아니, 돌아가면서 하는데, 내가 제일 골을 많이 먹었어.”
“...... 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그럼, 됐어.”
속상해서 더 묻지 않았다. 프로 축구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어울렸으면 됐다고 내 마음을 다독였다. 아이는 나보다 괜찮아 보였다.
한 번은 아이가 축구를 하고 돌아와서 축구 경기를 다른 팀 하고 했는데, 자기 팀이 져서 친구들이 너무 실망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다음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사 올 테니 힘을 내자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부탁인데 딱 한 번만 자기 팀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했다.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됐다. ‘네가 뭐라고 아이스크림을 사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이미 친구들에게 말을 해 놓은 것이 있어서 나는 다음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축구를 보러 갔다.
그 날 처음 봤다. 다른 아이들이 뛰는 것도 내 아이가 뛰는 것도 처음 봤다. 내 눈에는 내 아이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그다음으로 잘 뛰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 생각인지는 몰라도,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한 것이 자기 팀에서 자신의 입지가 너무 없어서 그런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쓰렸다. 집에 돌아오면서 다시 물었다.
“재미있니?”
“응, 재미있어.”
“그럼, 됐어. 하기 싫으면 언제든 말해.”
나는 아이가 운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강요한 적이 없고, 잔소리를 한 적도 없다. 내가 누구보다도 잘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 아이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가 축구, 농구, 수영을 하고 싶다고 먼저 말을 했을 때, 나는 고마웠다. 내 아이는 나와 다르게, 내 아들이라서 운동을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운동을 못하니까, 어떤 운동도 하고 싶지 않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유전자도 많을 텐데, 꼭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내 아이가 닮은 것 같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은데 말이다.
내가 주려고 해서 준 것도 아니고, 아이가 받으려고 해서 받은 것도 아닌 그 ‘못난이’ 유전자를 아이가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 내가 준 ‘못난이’ 유전자를 탓하고 아이에게 미안해하기보다 그것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들을 말해 줄 것이다. 너무 많이 뛰어서 닳고 닳아 잘린 반 토막 난 줄넘기를 통해 느낀 그 성공의 희열과 남들보다 늦어도 결승점을 언제나 통과했던 그 뿌듯함을 내 아이도 스스로 느끼기 바란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그 속에 정해진 답은 없다. 나는 아이가 자신의 인생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못난이’ DNA에 멈춰있기보다 그것으로 인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극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못 뛰었지만, 내 아이는 나보다는 더 잘 ‘뛸 수 있다’는 것을 모든 면에서 아는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욕심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