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으로
- ‘엄마’가 주는 무게 -
<1> 나는 엄마다.
엄마가 되기 전, ‘엄마’가 평생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스스로 알아서 모든 일을 할 줄 알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가면 그에 맞는 자기 일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할 줄 알았다. ‘양치질은 했냐?’ ‘편식하지 말아라!’ ‘글씨 제대로 써라!’ ‘띄어쓰기 제대로 해라!’ ‘학교생활은 어땠냐?’ ‘숙제는 다 했냐?’ 등등 하루에 내가 아이에게 해대는 수십 가지의 지적과 질문은 매일매일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나온다. 녹음기처럼 나오는 음성에 아이는 별다른 대꾸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있다. 내 말이 공기 중에 흩어지는 것이 보인다. 이제는 아이의 잘못 보다는 내 말을 듣지 않는 그 태도에 화가 나서 며칠 전 마음에 품었던 아이의 잘못까지 끌어와서 내 분노를 모으고 모아서 터트렸다. 아이는 내가 왜 화가 난 줄도 모른다. 우리 엄마도 나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났었겠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7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우리 엄마도 엄마 일을 못 놓고 있다. 우리 엄마는 1976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도 엄마다.
<2> 나는 엄마다.
내 아이가 다른 애들보다 모든 것을 더 잘하기를 바라는 엄마다. 다른 아이보다 우리 아이가 못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면 화가 났다. 아이의 노력이나 가지고 들어온 점수보다도 아이보다 더 잘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조급함을 드러냈다. ‘그 학원에 들인 돈이 얼마인 줄 아니?’ ‘내가 너에게 못해 준 게 뭐니?’ ‘이렇게 할 거면 학원 때려치워라!’ 그렇게 나의 불안감과 조급함을 한 바탕 화로 쏟아붓고 난 다음 그것도 모자라서 친구에게 신세한탄을 한참을 한다. 그러고 돌아서면서 TV를 틀고 맥주를 따는 순간 숙제하러 방에 들어가던 아이가 들어가면서 툭 한 마디 내뱉었다. ‘엄마는 좋겠다. 하고 싶은 데로 해서……’ 머리에 번개가 내리 꽂혔다. ‘나도 이렇게 내 마음대로 하고 살기 전까지 너처럼 학교에서 머리 터지게 공부하고 힘든 직장 생활 다 했어!’ 아이의 눈빛을 보니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한 호흡 쉬고 돌아서서 생각하니 이제는 아이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세상에서 어느 순간도 내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순간은 없구나.’
<3> 나는 엄마다.
주변에 있는 나의 친구들도 엄마다. 그 엄마들과 나누는 이야기에는 ‘나’가 없이 ‘우리’가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 끝에 내가 걸려있을 뿐이다. 내 속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 조심스럽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누구누구 엄마일 뿐이다. 그런 관계가 서로 나쁘지 않은 것은 내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갖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내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도 비치지 못하는 내 마음을 거리낌 없이 보일 수 있는 것도 그들의 일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이들 간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 상처를 받고 헤어지는 것도 돌아서는 것도 주저함이 없다. 내 친구는 아니다.
그들과의 관계는 ‘엄마’의 얼굴로 시작해서 ‘엄마’의 입장으로 정리된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굳이 노력해서 그 인연을 이을 명분을 찾지 않는다. ‘굳이’라는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4> 나는 엄마다.
나는 수십 번의 숨 고르기를 하고, 수십 번 상처를 가족들과 주고받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치우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몸이 아픈 날조차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고만 싶지만, 그 간단한 생각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당연하게 끼니때마다 엄마가 해 주던 밥을 먹었고, 정갈하게 내 옷들이 옷장에 걸려 있었고, 깨끗한 집안에서 내 방만 더러워도 불편함 없었던 시절은 나에게 더 이상 없다. 남편이 해 다 주는 밥상은 엄마가 해 주던 밥상이 주는 당연함이 없고, 세탁기가 해 주는 빨래도 그 세탁기를 돌리려면 설명이 필요하다. 청소기만 돌리면 먼지가 없어질 것 같아도 청소기를 돌리기 전에 해야 할 작업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 집에서는 나만 안다.
이 집안에 당연하게 제 자리에 있는 물건은 어느 하나 없다. 먼지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이 집안에서 나 혼자다.
<5> 나는 엄마다.
아이가 아프거나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뭘 잘못했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뭘 잘못해서 아이가 아프고 내가 뭘 잘못해서 아이 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만 같다. 다 내가 잘못한 것만 같다. 가족들의 문제가 나로 인해서 생긴 것만 같다.
반면, 아이가 주변에서 칭찬을 받고 남편이 인정을 받으면, 아이가 천재 같고, 남편이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이 고맙고, 고맙다. 그들의 성공이 그들의 노력인 것 같다. 질투도 시기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들로 인해 내가 느끼는 뿌듯함은 3일을 넘기지 못한다. 항상 내 자리에 있는 내가 가끔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들의 성공이 주는 행복감으로 버틸 수 있다.
문제는 나로부터 생겨나는 것 같고, 가족의 성공은 그들의 몫인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들과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찾는다.
<6> 나는 엄마다.
엄마가 자격증이 필요한 일이었다면 나는 이미 포기했을 것이다. 미련 없이 포기했을 것이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칭찬보다 책임만 있다. 일단 이 길에 들어서면 멈출 수가 없다. 순간, 순간의 기쁨이 고통과 슬픔을 가지고 올 때가 많다. 때로는 내가 엄마가 아니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내 젊은 시절에 나왔던 노래를 들으면서 그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니 내 젊은 시절의 내가 내 눈앞에 있다. ‘그때 참 좋았는데……’라는 말 사이로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 시절이 좋았지. 그런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왜냐면 그때는 네가 없잖아.’ 엄마로서 뻔한 대답이다. 때로는 정말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시절에도 나는 고민이 있었고 힘들었지만 정말 나는 편했다. 물론 그 시절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지금은 편하지 않다.
엄마가 주는 인생의 다양한 감정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 불확실성이 나를 속이면서 엄마로 살아가게 한다.
<7> 나는 엄마다.
하루에도 몇십 번, 몇 백 번 듣는 말이 엄마다. 낯설지 않다. 처음으로 ‘내가 네 엄마야.’라고 아이에게 말한 날의 낯섦을 기억한다. 배가 불러오면서도 엄마라는 말이 어색해서 뱃속의 아이에게 건네지 못했다. 내 팔의 절반 크기도 되지 않던 그 아이를 처음 마주 하고는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 ‘엄마’였다. 자연스럽게 나왔지만 그 낯섦을 나는 기억한다. 그때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로 살면 살수록 그 무게가 더 느껴진다. 그래서 두려움도 커진다. 나를 놓치지 않고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내 아이와 나란히 성장하고 싶다. 세련되고 중심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엄마라는 변명으로 내 삶을 옭아매기보다는 엄마라는 수식어로 내 삶을 더 풍성하게 키우고 싶다.
엄마의 위치에 대한 넋두리를 읊조리기보다 ‘엄마’를 인정하면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살아내는 인생이 아니라, 살아가는 인생에 ‘엄마’의 모습이 있을 뿐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