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너무 어려운
며칠 전, 거실 한쪽에서 흘러나오는 아내와 아이의 대화가 문득 귀에 들어왔다. 아내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쏟아냈다. “옆 반 수영 선생님이 우리 반 선생님한테 농담을 했는데, 선생님이 그걸 못 받아쳤어. 센스가 좀 없는 것 같아.” 그 말에 아이는 맞장구를 쳤고, 대화는 금세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마음이 툭 하고 내려앉았다. 마치 내 안의 어떤 오래된 상처가 불쑥 건드려진 듯, 서운함이 은근히 밀려왔다.
사실 나는 스몰토크라는 것을 거의 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누군가 농담을 던지면 머릿속은 순식간에 하얘지고, 대답은 이미 늦어버린 뒤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어가는 그 한마디가, 나에겐 벼랑 끝에서 발을 떼는 일처럼 어렵다. 그래서 대화는 종종 어색한 공백으로 흘러가고, 그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이 더욱 작아진다.
이게 단순히 훈련 부족의 문제일까, 아니면 타고난 성향일까. 오래 생각해보지만 답은 알 수 없다. 다만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 근원에 유전적인 뿌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 역시 농담에 서툴고, 잡담을 즐기지 않는 분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내 안에서 오랫동안 길러져 온 어떤 기질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스몰토크를 못하는 이를 두고, 마음을 닫거나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라 오해한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은 단순히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못 하는 것’이다. 나의 부족함이 의도적인 무심함으로 비치고, 그로 인해 더 오해를 사게 될 때면 마음이 괜히 무겁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대화의 센스가 부족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란 것을. 말이 서툴러도 마음은 늘 누군가와 함께 웃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웃음을 만드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서툴러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말이 느려도, 농담을 받아치지 못해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가볍게 흘려보낼 대화 속에서도, 나는 내 나름의 진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멈추는 자리에서. 그러나 이제는 서툴러도 괜찮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재치 있는 한마디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 그 자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