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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Aug 30. 2020

님아..그 말을 내보내지 '마오'

제작자의 책임 범위를 고민하며

 2009년 1월 KBS 게시판에 사과글이 올라왔다. 당시 방영 중이던 <상상플러스> 제작진의 공식 사과였다. 며칠 전 방영분에서 방송인 신정환의 욕설(개XX)을 그대로 내보낸 것이다. 당시 시청자들은 제작진보다 출연자인 신정환을 더 비판했었다. 신정환이 더 나서서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에 실망을 시켜드리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라며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라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방송에 대한 책임은 (생방송이 아닌 이상) 출연진보단 제작진에게 있다.


 요즘 <아는 형님>이나 <라디오스타>와 같은 프로그램엔 ‘삐-’와 같은 자체 효과음으로 출연자의 욕설 사실을 그대로 내보낸다. 과거보다 욕에 대한 허용 기준이 낮아진 것도 있겠지만 편집될 거라 믿고 욕을 하는 경우도 있다. 비속어뿐만이 아니다. 08년도 7월엔 KBS <1박 2일>에 MC 몽의 흡연 장면이 방영돼 문제가 된 적도 있다. 그때도 제작진과 더불어 MC몽도 함께 뭇매를 맞았다. MC몽은 “두번 다시 담배를 피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MC몽은 당연히 편집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2020년 3월 <라디오스타> 방송 화면

  논란이 일어나면 제작진은 곧바로 사과한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레퍼토리가 자주 등장한다. 지난 26일 TV조선 <아내의맛>에서는 정동원에게 2차 성징여부에 대해 묻는 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냈다. 심지어 이를 더 강조해서 희화화했다. 후에 사과하고 삭제조치 했지만 제작 과정에서 문제 소지를 느끼지 못한 건 실망스럽다. 뒤에서 말할 MBC <놀면 뭐하니>의 ‘마오’ 발언도 그렇다.

 

 일부러 문제 상황을 자초하기도 한다. 18년 5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영자 어묵 먹방에 쓰인 CG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게 된 점을 사과했다. 제작 과정 중 소홀했던 것인지 해당 밈(meme)이 어떤 맥락에서 사회에 통용되는지 알지 못했는지 알 수 없다. 사과문에 따르면 원인을 전자로 말했다. 전자면 제작자로서 실력 부족이고 후자면 제작자의 자질 결함이다.


 그리고 일주일 전 22일, MBC <놀면 뭐하니>에서 ‘마오’ 발언이 시청자를 만났다. 정확힌 중국 시청자를 만났다. ‘환불원정대’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프로그램 컨셉에 맞게 새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마오’를 언급한 것이다. 중국 이름 어떠냐는 맥락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마오’는 ‘마오쩌둥’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됐다. 그로 인한 여파로 현재까지 이효리의 인스타그램엔 중국과 한국 네티즌들 간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다.

2020년 8월 22일 MBC <놀면 뭐하니> 방송 화면

 중국은 과두 정치로 한국과 전혀 다른 정치 체제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를 공유하지만 그 또한 국가의 역할에서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중국인이 생각하는 ‘위인’은 한국과 다르다. 중국 네티즌은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들먹이면 한국 네티즌에게 굉장히 모욕적일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 위인들 중에 마오쩌둥은 더 특별하다. 그는 천안문 광장에 초상화가 걸릴 정도로 신격화된 건국 위인이다. 현 주석 시진핑이 제2의 마오쩌둥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마오쩌둥은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댓글 창 다툼에선 토론이나 논쟁보단 서로의 국가를 헐뜯는 데 혈안이 돼있다. 국가에 대한 모욕을 받아들이는 층위도 국가 간 다르다. 중국은 국가 모독을 부모를 비난한 정도로 여긴다.


 이효리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 측면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발언을 굳이 내보내야 했을까는 다른 문제다. 분명 마오쩌둥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할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웃음을 유발할 목적으로 언급된 것 맞다. 이에 중국 네티즌은 불쾌함을 표할 수 있다. 게다가 인터넷 상에서 그 발언은 조롱 섞인 과정을 거치며 재생산 됐다. 이 전체 과정이 중국 네티즌에게 전달됐고 재생산 된 내용은 충분히 모욕적일 수 있을 테다. 현재 이효리 인스타그램엔 이번 사안을 떠나 서로 모욕하는 댓글만이 가득하다. 코로나 책임 져라! 중국 진출 꿈도 꾸지 마라! 그런데 그 난투장에 MBC 제작진이 보이지 않는다. 


이효리 인스타그램 제일 최근 게시물엔 30일 13시 기준 약 53만 개의 댓글이 달렸다. 평소 게시물의 댓글은 평균 2천 개 내외다. (@hyoleehyolee)


 MBC 제작진은 사과문을 올리고 VOD에서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하지만 일차적 책임에서 끝나선 안 된다. 중국 네티즌들은 끊임없이 이효리의 사과를 요구한다. 이에 대한 책임까지 제작진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인터뷰>(2014)처럼 정권 신성화에 대한 비판 목적이 없었다면 ‘마오’ 발언은 편집 과정에서 뺐어야 한다. 어떤 의도든 이러한 분란을 일으켰을 거라 짐작했어야 한다. 그 발언을 한 이효리를 두고 구설수가 생길 것이란 걸 예상했어야 한다. 서로를 혐오하며 각국의 네티즌들이 똘똘 뭉치고 있다. 국가 간 자존심 싸움으로 흘러가버렸다. 이효리가 만약 조금이라도 사과하면 중국 눈치를 보다 굴복한 것처럼 또다시 입방아에 오를 판이다. <놀면 뭐하니>제작진의 책임이 사과에 그쳐선 안 된다. 

<놀면 뭐하나>측은 24일 공식 SNS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hangout_with_yoo)


 ‘환불원정대’를 기다려온 팬으로서 시작부터 논란이 휩싸였단 사실이 안타깝다. 제작진이 더 유의하며 ‘환불원정대’를 무사히 마칠 수 있길 응원한다. 제작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서 시대에 맞는 변화와 끊임없는 고민이 요구된다. ‘선한 영향력’을 위해 ‘영향력’엔 책임감을 가지고 ‘선함’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모든 방송사에서 더 성숙한 프로그램이 나오길 바란다. 그럴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놀면 뭐하니> 제작진이 이효리에게 사과했길. 이효리가 지금의 논란을 홀로 헤쳐나가지 않게 그 옆에 제작진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어련히 잘하고 있겠지만!




▼MC몽, ‘1박2일’ 흡연 장면에 시청자 맹비난..“상식 밖 행동에 실망”(2008.7)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184086586472224&mediaCodeNo=258

▼방송 중 "개XX" 욕설 신정환 공개 사과(2009.1)

https://news.joins.com/article/3467223

▼MBC <전참시> ‘어묵 먹방’에 세월호 참사 보도 화면 사용 논란...제작진 사과 (2018.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5090948001

▼[오병상의 코멘터리] 이효리는 살아있는 중국권력을 건드렸다. (2020.8.25)

https://mnews.joins.com/article/23856782?cloc=joongang-section-realtimerecommend

▼이효리 마오 사태...연예계 글로벌 문화 감수성 필수 시대(2020.08.28)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200827010004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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