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 (1)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극우 관련 보도 중심으로
“숲 속에서 큰 나무가 쓰러졌는데, 이 광경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면 나무는 과연 쓰러진 것인가?” 이 질문에 18세기 아일랜드 학자 조지 버클리는 쓰러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존재보다 지각이 앞선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듯하지만 '의식 속에'만 넣어보면 납득 가능하다. ‘어떤 사람의 의식 속에 존재하려면 그 대상이 지각돼야 한다.’ 이러면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가. 이처럼 지각을 통해서만 존재가 파악될 수 있다면 우리가 어떤 대상에 내린 판단은 생각보다 불완전할 수 있다. 인간의 지각 자체가 완전한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들에 의해 지각하게끔 만들어진 정보는 어떨까?
이는 언론의 ‘의제 설정(Agenda Setting)’기능 또한 불완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중요하거나 논쟁 가치가 있는 것만이 의제로 설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A라는 대상을 접할 때 A와 관련한 책, 논문 혹은 각종 경험을 바탕으로 A에 대해 파악한다. A에 그렇게 관심이 없을 땐 A에 관한 보도를 그대로 흡수할 때도 많다. 그리고 그 A에 관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다. 언론은 의제를 설정하는 과정이다.
설정된 의제가 처음부터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언론이 중요치 않던 주변부의 목소리를 보도함으로써 SNS와 같은 대중매체에서도 그 이야기가 퍼지게 만들고 다시 또 뉴스로 옮겨오는 순환이 작동한다. 언론은 이를 이용해 차별과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목소리를 수면 위로 올리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반면에 오히려 차별과 혐오 집단의 목소리를 주목하게끔 만들어 주류로 끌어오기도 한다. 의제 설정 능력에 위험이 수반되는 것이다. 언론은 의제 설정을 통해 해롭고 오염된 그리고 가짜 정보를 퍼뜨리는 데 (본의 아니게) 일조할 수 있다.
1. 2016년 미국,
“진보매체들은 극우세력을 공격하며 극우세력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2017년 미국에서 네오나치 웹사이트 데일리스토머의 스타일 가이드가 유출돼 공개됐다. “사건을 만들어내고, 미디어가 분노에 찬 반응을 보이면서 끊임없이 보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그들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각종 보도를 통해 공짜로 PR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가이드의 한 섹션 상단에는 “좋게든, 나쁘게든 널리 알려지는 게 중요하다.”(All publicity is good publicity)라고 적혀있다.
실제 어떤 저널리스트가 트롤링에 관한 기사를 쓸 때 그들의 인터뷰를 지나치게 신뢰했다. 취재원이 말하는 것들을 의심하기보다는 대표성을 띤 발언이라 신뢰한 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가 자신의 기사에서 증오를 부추기는 네오나치의 말을 “인용하기 좋은 말”이라고 대놓고 표현한 것이야 말로 실제 트롤들을 보도할 때의 위험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특정 기사가 취재원에 대해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할지라도 미디어를 조종하려는 사람의 메시지가 전국 수용자를 향해 증폭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트럼프와 페페' 밈을 언급해 증폭에 기여한 건 다름아닌 상대편인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과격주의자들은 자신이 원하던 바를 정확하게 얻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 추종자 획득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은 대중이 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안우파(미국에서 네오나치나 과격우파 등의 현재 극우 세력을 가리킬 때 쓰인다)의 공격을 쉬지 않고 보도하는 것이 이 문제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아무리 중요하게 프레임됐어도, 꼭 폭로를 해야 했어도, 이런 과격주의자와 조작자들에 대해 보도를 한 결과, 그들 스스로 믿지 못할 만큼의 대중적 관심과 정당성을 그들에게 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게 민족주의자와 우월주의자들로 대표되는 대안 우파의 이데올로기는 단 몇 달만에 문화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했다.
다음▶ 보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 (2) : 2020년 한국 현재 종교와 엮인 극우 관련 보도 중심으로
휘트니 필립스, 박상현 옮김,『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The Oxygen of Amplification_Better Practices for Reporting on Extremists, Antagonists, and Manipulators Online)
https://news.joins.com/article/215506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