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의 용기
낙관은 자해다.
낙관을 버리지 않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실망을 안 하려고 기대를 안 한다는 말이 공감을 살 정도로 사람들은 낙관에 배신당했다.
낙관, 희망, 기대 등 미래에 대한 빛나는 해석의 빛은 바랜지 오래다.
각자 각기 다른 낙관이었을지라도 바랜 빛이 만들어내는 좌절은 엇비슷하다.
그래서 낙관을 가진다는 건 실패할 용기를 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숱한 실망이 낙관을 더 닳게 만들었다. 그렇게 닳고 닳아서 낙관은 더 소중해졌다.
낙관은 비관의 끝에서 나온다는 말이 공감을 사서 더 퍼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낙관이 변화를 시도하다가 좌절을 선사한다면 비관은 변화의 가능성까지 묵살한다.
비관은 좌절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좌절에 무감각하게 만들어준다.
비관의 일상은 그 자체로 좌절이다.
비관은 모든 움직임을 통제한다. 뻗어나가지 못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외면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도 점점 굳어간다.
움직이려면, 보잘것없는 미동이라도 만들려면 낙관이 필요하다.
낙관은 자해다.
새살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그어대는 잔인한 희망이다.
그 낙관을 지닌 용감한 사람들 덕분에 사회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