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Feb 12. 2020

자아성찰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하면서, 오늘도 썼다가 지웠다. 10년이 넘게 이용했던 단골 미용실을 이용할 것인가, 최근 오픈한 친한 형이 하는 미용실을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요즘 아주 많이 힘들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 그 자체에 힘듦을 느낀 것이지, 실제로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야기.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너무 힘들어 밥 먹다가도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보고서 혼자 당황해 눈물의 의미를 한참이나 생각했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니, 우울증 초기라며 병원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 권유하길래 내가 그렇게 많이 아픈가 생각했던 이야기. 이런저런 쓸 거리들이 많다. 쓸 거리는 많지만, 지운 이유는 하나다. 내가 느낀 감정 그대로를 하얀 바탕의 백지에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여러 책을 읽으며 작가의 재능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반전이 엄청난 이야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책을 볼 때면 상상력이 재능인 것 같다. 또 서정적인 글. 인간의 내면묘사를 잘하고 있는. 너무 가감 없이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거나 오히려 감정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상황이나 행동을 통해 그 감정을 너무 잘 알 것 같은 글을 보면,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문장력이 재능인 것 같기도 하다. 쓸 거리가 많은 인생을 산 경험도 하나의 재능이다. 기막힌 반전이나 감정 묘사를 적지 않아도, 본인의 경험담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작가들이 있다.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끈덕지게 않아 있을 수 있는 무거운 엉덩이도 빠져서는 안 되는 재능이겠거니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재능을 발견해서 글쟁이의 세계로 뛰어들었을까?



나는 책을 읽는 것 자체를 힘들어한다. 내가 쓴 글을 읽는 것조차도 조금 귀찮다. 그다지 상상력이 뛰어나지도 않아서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그리 쓸 만한 소재가 있는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지도 않았다. 다만 그리 뛰어나진 않지만 생각을 남들보다 조금 더 잘 글로 표현할 수 있다. 최근에 단단했던 마음이 무너지면서 어쩌면 내가 바랐을 수도 있는. 어떤 우울함에 갇혀 나의 깊은 내면을 발견한 것이, 살기는 조금 힘들어졌지만 글을 쓰기에는 조금 더 명확한 내 생각과 문장이 생겨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내가 스스로 생각한 글쟁이로서의 재능은 내 감정을 잘 그려내는 문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 논리적인 것을 좋아해서 어떤 상황으로부터 감정이 생겨난 과정. 그 원인과 출처를 잘 밝혀내 상황과 감정의 인과관계를 풀어내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글 쓰는 것이 재밌는 순간이다. 글을 쓰는 것이 재밌고 누군가 그 글에 공감하며 재밌게 읽어주는 것이 좋다. 그래, 그래서. 그래서 상황을 통해 감정이 생겨난 과정을 명확하게 써내지 못할 때면 지워버리는 것일 수도.



그래서 지운 이유라도 써 보고자 몇 자 적었다. 그냥 그렇게 백지로 두기엔 너무 아쉬우니까.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일었고 그 상황이 이해됐지만 글로 그려내지 못한 상황이 못마땅하니까. 지웠던 이유라도 납득하고자. 그래서 몇 자 적었다.

작가의 이전글 처음부터 게으르진 않았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