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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Feb 07. 2020

처음부터 게으르진 않았어

의지가 무뎌지는 순간이 있다. 사실 순간이라고 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긴 시간들이다. 하지만 굳게 마음을 먹고, 그 의지가 위협받기 시작하는 순간은 아주 짧은 유혹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순간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무엇을 하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그 의지를 위협하는 가장 큰 사건은 일상의 패턴이 바뀌는 것이다. 환경을 탓하기 좋아하는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할 시기와 그때의 의지를 예약해 놓는다. 그리고 그 시간에 다짐했던 행위를 방해받는다면 하지 않는다. 또 소심해서 쿨하게 ‘있다가 시간이 생기면 하지’라고 말하지 못하고, 못하게 된 그 시간 동안 초조해하고 불안해한다.


직업 특성상 알바가 자주 바뀌고 일하는 시간이 유동적이어서 대학교 졸업 이후로 무언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대학생 때는 바쁘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서 놀기도 잘 놀고 학점도 잘 받았다. 또 내가 속한 여러 집단에서 일을 잘한다고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울타리를 넘어선 순간 나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알바를 탓했다. 무단결근하는 사람, 꼼수를 써서 가게 물건을 훔치는 사람, 불성실한 사람, 불친절한 사람, 잠수 타는 사람. 이런저런 이유로 알바를 바꿔야 했다. 알바를 자르고, 다시 구하기까지 텀이 길 때는 3주가 넘었었다. 새로운 알바가 올 때마다 일을 알려주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일에 메여 산다는 것은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직장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것임을 처음 알았다. 알바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삶은 온도차가 심했다. 이런 변덕스러운 시간에 익숙해지면 글을 쓸 수 있을까? 다만 그 시간을 견뎌낼 뿐, 익숙해진 것은 알바가 가져간 근무시간에 잘 쉬는 것뿐이었다. 알바가 없을 때 가져갈 시간을 잘 버티기 위해서.


알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쯤 돼서는 가게를 탓하기 시작했다. 업종이 문제였다. 24시간 편의점. 꺼지지 않는 간판 불, 닫히지 않는 문. 사람을 쓸 수밖에 없는 이 일이 싫었다. 인건비도, 알바를 구하는 문제도 모두 편의점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남들처럼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하루 8~10시간. 남들 일 하는 만큼, 남들 쉬는 만큼. 그렇게 살고 싶었다. 월급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월급을 받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 목표는 사장님이 아니라 작가님이니까. 돈 잘 버는 사장님이 아니라, 유명한 작가님이니까. 그래서 오래된 이 건물을 헐고 새로 지어서, 한 칸은 내가 장사하고 나머지 공간으로 임대업이나 할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미 오랜 시간. 돈을 벌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거의 모든 시간과 돈을 빚을 청산하는 데에 할애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끝이 보이는데 다시 부채를 떠 안는 것엔 많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실은 끝도 정답도 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내 안에서 문제를 찾지 않았다. 그저 게으름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게으를 필요가 있었다고 변명했다. 일을 하는 절대적인 시간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은 내 인생을 버티게 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으른 나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늘 불편하다. 늘 상상 속의, 상황을 이기고 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내가 나를 나무란다. 분명 달라질 필요가 있는데… 정말 내 상황은 다른 나의 삶을 꿈꾸며 인생을 불태우기에 적절하지 않은 상황일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둘 다 하기는 힘든 일인가? 아니면 이대로 견디는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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