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한테 맞은 이야기(1)
옛날엔, 그러니까 2000년대쯤? 그땐 우리 가게가 편의점이 아니었고 동네 슈퍼마켓이었어. 그 시절엔 가게 안에서 종종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그랬거든? 시골 조그마한 동네 슈퍼에 오는 손님이라고 해봐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근처에 경쟁업체도 있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지. 내가 불편하고 싫다고 해서 가난한 우리 집 희망을 망가뜨릴 순 없는 거니까. 뭐, 사실 그 시절의 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네들 옆을 지나가면서 코를 막거나 눈살을 찌푸리고 얼른 후다닥 지나가는 것 밖에 할 게 없긴 했지. 그 마저도 싸가지 없다며, 저것 좀 보라며 손가락질했던 게 기억이 나는구만.
시간이 흘러 슈퍼였던 우리 가게가 편의점으로 바뀌고, 대학을 졸업하며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어가고 있던 2017년의 어느 날. 그 사건이 일어났어.
밤늦은 시각 두 명의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둘 과, 그 둘 중 한 명의 아이로 보이는 중고생 하나가 자정이 다 되어 갈 무렵 가게에 들어왔어.
"어서 오세요."
"어, 그래 수고 많다."
아이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한 사람이 반말로 내 인사를 받았어. 사실 반말도 반말 나름이라 저렇게 유하게 반말을 하면 기분은 좀 나빠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 물론 지금은 반말을 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쓰지만, 그땐 모든 것이 예민할 때라 '바르지 않은 것' 하나하나가 다 불만이었긴 했지. 어쨌든
아이와 아버지는 가게 뒤쪽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고 나머지 한 명은 소주 두 병과 안줏거리를 가지고 카운터에 왔어. 나는 바코드를 찍고 얼마입니다~ 하고 계산을 했지.
잠깐 그때 당시 점포 내 알코올 취식에 대한 분위기를 말해보자면, 억지로 술을 안에서 먹겠다고 하면 걸려도 내 책임 아닙니다~ 하고 넘겼던 것 같아. 그리고 담배는 절대로 안됩니다~ 였어.
그래서 물어봤지.
"안에서 드실 거예요?"
"그래."
뭐랄까... 보통 '왜? 안에서 먹으면 안 돼?'라는 식으로 물어보기 마련인데 그냥 '그래'라고 하니까 조금 벙쪄있었어. 정신 차리니까 이미 뒤에 테이블로 가고 없더라고. 그래서 '나는 여기서 드시면 안 됩니다.'라는 관행적인 말을 하려고 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갔는데, 아 글쎄 계산한 것 외에 다른 술들이 테이블에 몇 개 더 있는 거야... 분명 그들은 들어올 때 빈손이었는데 말이지. 나는 술 먹으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저 술병에 대한 말을 꺼냈어.
"저 술 계산 안 하신 것 같은데요?"
"아까 내가 계산할 때 말 안 했나?"
"예."
"나중에 다 먹고 계산할게."
사실 저런 관습도 여전히 존재하던 시절이었어. 다 먹고 마지막에 쓰레기 가져와서 바코드 찍고 계산하는... 그런데 그렇게 자꾸 계산하다 보니 계산할 때 누락되는 물품도 생기더라고. 그렇다고 나중에 찾아왔을 때 저번에 먹을 때 이거 이거 누락돼서 계산해야 된다 그러면 이제 와서 그러냐고 싫은 소리나 들을 수밖에. 그나마 저렇게라도 주면 다행이지 술 먹어서 기억 안 난다고 하는 놈들이 태반이었기도 해.
그래서 그런 사정을 말하면서 먹기 전에 계산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 그러니까
"그럼 새로 더 하나 먹을 때마다 계속 가서 계산하고 먹으라고?"
참... 이게 당연히 맞는 건데도 그 당시 손님들은 편의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그런지 술을 좀 싸게 먹을 수 있는 식당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나 봐. 나는 앞서 왜 계산을 하고 먹어야 하는지 설명을 했기에 그냥 단답으로 예- 하고 대답했지.
"아 새끼 이거 싸가지 없는 것 보소."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 이미 취해서 온 데다가 꼰대 마인드가 뇌 속 깊이 장착돼 있는 이런 사람이랑 말을 더 섞어 봐야 무슨 말이 통하겠나 싶어서
"계산하고 드세요 손님."
하고 계산 안된 술병들을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가져갔지.
"하 저 새끼 저거 골 때리네."
뭐 저런 식으로 중얼중얼거리면서 계산하려고 따라오긴 하더라. 그렇게 계산하고 나서도 술을 몇 병 더 깨 내 먹었는데, 내가 한번 그렇게 그들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 물건을 직접 가져가서 계산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술을 꺼낼 때마다 나를 부르더라고
"야! 이거 가서 찍고 계산해 와."
라며 돈을 주더라. 참나.
그래도 뭐, 참았어. 어머니가 보여주셨던... 서비스 업은 자고로 손님이 왕이라는, 그렇게 해서라도 가족을 먹여 살리셔야 했던 어머니의 노고와 그 노고 위에 그간 쌓아 올린 것들을 내 순간적인 분노 때문에 망칠 수 없었거든. 어쨌든 이런 손님도 어머니는 소중하다며 한 명 한 명 다 받아주셨던 분이니까.
그런데, 그래도 담배는 못 참겠더라.
나는 유독 담배가 싫었어. 담배연기도, 꽁초도, 담배를 까면 나오는 쓰레기도, 그 쓰레기와 꽁초를 버리는 사람도.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좁아터진 집에서 간접흡연을 지독하게 해 왔으며 그 때문에 흡연을 하지 않았음에도 목이 많이 상했고, 지금까지도 가게 앞에 널려있는 담배꽁초와 그 부산물들을 쓸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담배냄새가 가게 안에서 나기 시작하자 뒤로 가서 저놈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확인하고는 당장에 가서 말했지.
"안에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됩니다."
"하~ 저 새끼가 또... 알았다 인마."
난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어. 왜냐면 저렇게 말하는 놈들 중 열에 아홉은 담배를 꺼트리지 않았거든. 그래서 담배를 그만 피울 때까지 계속 노려보고 있으니까.
"아 새끼 근데!"
물이 삼분의 일 즈음 남은 물병이 내게 날아오더라.
탁!
술에 취했으면서 던지기는 또 어찌나 잘 던지던지, 정확히 몸통에 맞았어. 뭐, 500ml 생수라 아픈 건 아니었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환인가 싶더라고. 잠깐 혼란스러웠다가 정신을 다시 차리고는 '아... 나 맞은 거구나.' 생각이 들었어.
참았어. 아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처가 난 것도 아니고. '엄마가 일궈 놓은 가게... 엄마가 일궈 놓은 가게...' 하면서 말이지. 그런데 '아니 그럼 씨발 이딴 짓을 엄마가 당해 왔다고?'
순간 열이 뻗쳤어.
'이건 바꿔야 한다.'
이런 문화, 아니 이딴 저급한 것에 문화라는 말을 할 순 없지. 이런 몹쓸 불법적인 관습들이 우리 가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엄마가 장사를 접는 그 순간까지 이런 고통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몸이 부르르 떨리더라.
그래도 난 취하지도 않았고, 나름 국가에서 제공하는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했으며, 맘에 들진 않지만 대학까지 졸업한 이 시대의 널린 지성인으로서 맞대응보다는 적당히 당하자는 쪽으로 머리가 굴러가더라고?
나는 먼저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어. 이런저런 말을 덧붙여서.
"안에서 술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마음대로 술 드셨죠? 담배도요? 또 물병으로 저 때리셨고요. 그리고 옆에 아저씨도. 아저씨 아들 물어보지도 않고 우리 가족이 사용하는 공간에 들어가셨죠? 그거 무단침입입니다. 이거 다 신고할 겁니다."
"아니, 그건 우리 아들이 화장실 간다고..."
"어쨌든 들어 가셨잖..."
.
.
.
의자가 날아오더라.
근데 물병도 그렇고 의자도 정확히 몸통으로 날아오더라. 이 아저씨 야구부 출신인가?
뭐 어쨌든.
날아오는 의자에 턱 아래 상체 부분을 맞고 휘청이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뺨도 때리더라. 안경이 날아가고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끝장을 보자는 심보에 온몸을 뒤로 힘껏 날려 있는 엄청 쌔게 넘어졌지. 뺨 한 대 맞았다고 넘어질 만큼은 아니었지만, 시시티브이에 그런 것까지 찍히진 않으니까.
나는 넘어지고 천천히 일어났어. 뭐랄까... 의외로 침착했거든. 오히려 너무 쌔게 넘어진 나를 보며 취객 놈이 당황한 것 같아 보였어. 나는 안경을 다시 주워 쓰고 의자를 원래 자리에 다시 가져다 놨으며 땅에 떨어진 물병 줍고는 취객에게 들어 보이며
"더 마실 거예요?"
"안 마셔!"
쓰레기통에 물병을 갖다 버린 후 아저씨 옆 자리에 앉아 경찰서에 신고했어. 다시 자기들끼리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다가
"신고 좀 하려고 하는데요."
라는 말에 발끈해 일어서서 다시 내게 손지검을 하려다가 욕만 한 바가지 퍼붓고는 자리에 앉더라. 나는 침착하게 있었던 일을 간추려 설명했지.
"실내에서 술을 드시면 안 된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마셨고,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자 물건들을 저한테 던지더니 다가와 뺨을 때렸습니다."
또박또박 말하는 나를 보자 다시 끊임없이 협박과 위협을 가하던 취객의 목소리가 나와 통화 중인 경찰에게 들렸는지 경찰은 다급히 내게 피신해 있으라 말하며 곧 가겠다고 했어.
10분 정도 지나고.
무슨 배짱인지, 경찰이 올 때까지 앉아서 술을 마시던 취객들은 경찰의 조사에 참 착실히 임했어. 때린 놈은 저 싸가지 없는 놈을 내가 때렸노라,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노라, 내일 아침이면 내가 저놈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겠노라 자랑을 했고 옆에 앉은 다른 놈은 내 아들이 화장실을 가려고 했던 것일 뿐 무단침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더라고. 무단침입건은 말하지 않았으면 나도 깜빡하고 경찰도 몰랐을 텐데 제발 저려 저렇게 말하니 경찰의 물음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경찰은 마지막으로 시시티브이를 보며 내 주장의 증거 자료로 담아가고, '편의점은 휴게음식점이니 가정용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또 하나의 내 주장의 진위여부를 찾아보고는 사실임이 판명되자 취객들을 돌려보냈어. 그렇게 취객들과 경찰들이 떠나고 사건은 일단락됐지.
약 열흘 후, 경찰서에서 진술서 작성을 위해 방문을 하라는 연락을 받은 날. 그날 나를 때린 취객 놈이 가게에 찾아오더라.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