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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꺼풀 오이씨 Nov 01. 2023

아버지와 나

닮음과 다름. 이젠 그 사람을 놓아주고 싶다.

내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싫은, 꺼려지는 그 사람.


형편없다고 평가된 그. 그럼에도 내 아버지. 그럼에도 꺼려지는 그 사람.

이하 A.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마음이 버거워서요.


20대 어느 날. A의 친구라는 처음 보는 사람이 밥을 먹자고 연락을 주셨다. 밥을 먹는 자리. 어색하게 나의 누이와 나는 쭈뼛쭈뼛 앉아 있었다. 그 무렵 A는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해 정신과 병동에 들어가 있었다.


A의 친구는 우리에게 A이 젊은 날을 이야기해 주었다.

' 그는 참으로 찬란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명석했고, 반짝였으며, 유머 있고, 마음이 따뜻했다. 그래서 그런지 십 수킬로 떨어져 있는 대학에서 그에게 인생삼담을 받으러 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나도 왜 그가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너희들이 좀 이해해 주렴. 너희의 아버지는 본디 아주 좋은 사람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식사 내내 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 A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알코올 중독이었다. 나에게 그는 술과 하나였다. 그를 떠 올리면 아찔한 술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구불구불, 욕설인 듯 아닌 듯 거친 말투. 그냥 다 싫었다. 지금도 싫다.


그런데 혈육이라 그런 건지 나는 그에게 치댔다. 그냥 나도 모르게.....


싫어하는 나와 사랑을 갈구하는 나. 어느 게 나인지. 둘 다 나이겠지만 A에 대한 감정의 영역에서는 버겁다.

그래서 그를 이젠 내 인생에서 떠나보내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이 글을 쓴다고 그가 내 인생에 떠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홀가분한 나로 살아가고 싶어서.


혈육은 닮는다고 했는데, 내가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른지 알고 싶다. 글을 쓰면 좀 알 수 있지 싶어 차근차근 생각나는 대로 써보기로 한다.


나 :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란 인물은 알코올중독이었다. 불행하게도 술에게 자기를 팔아 언제부터 사람으로 제대로 서있기를 거부했는지 모른다. 그냥 그 상태였을 뿐.

A :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불행하게도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끌려가셔 선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들었다고 했다.


나 : 초등학교 입학 전 행복한 기억은 별로 없다. 아니 그냥 없다. 늘 쓸쓸했다. 5살부터 다닌 유지원은 혼자 갔다가 혼자 걸어왔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면 놀래거나 믿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기억엔 어떤 어른도 내 옆에 없었다. 그냥 집을 나와 아는 길을 따라 유치원으로 갔고, 유치원은 아주 어두운 동굴로만 기억이 된다. 거기서도 누군가와 놀았다거나 즐거웠다거나보다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렸다.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연속적이진 않지만, 파편화된 기억은. 쓸쓸함이다.

A :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다만 친할머니로부터 그는 총명했고, 모두의 기대를 받았다는 말만 들었다. 그리고 그는 친척들이 죄다 모여사는 집성촌에 살았었어서 즐거웠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나 : 초등학교 때는 소아 우울증(성인이 되어서 정신과에서 의사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이다.)을 내내 앓았고, 사춘기가 오면서 친구들과 마냥 대책 없이 놀았다. 놀거나 자거나. 둘 중 하나. 집안의 누군가와 부딪히기 싫었다. 이 때는 간간히 좋은 기억도 있고, 많은 나쁜 기억도 있고. 누구나 그렇듯.

A : 공부를 잘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좋은 고등하고 좋은 대학을 갔다. 아마도 그의 황금기


나 : 대학 생활은 줄창 술. 그가 알코올중독자이어서 그랬나? 나도 알코올중독자처럼 술을 퍼먹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이유는 모른다. 인생을 제대로 낭비한 시기.

A : 그는 대학시절 많은 친구들로부터 찬사와 칭찬 존경까지도 받았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었단다.


나 : 대학 졸업 후 취업도 아닌 것이 취업이 돼버린. 꿈을 이루겠다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단세포적인 추정으로 꿈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무슨무슨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6개월짜리 워크샵을 받았다. 거기서 잘 나가는 사람의 눈에 들어 일을 하게 되었다. 막내부터 시작했으니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다했다.

A : 월남전을 다녀온 후 줄곧 백수. 그의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누명은 그의 호적에 빨간 줄(지금 사람들은 모르지만 예전에 대한민국엔 연좌제라는 공식화된 괘씸죄가 있었다. 별 머저리 같은 병신 같은 제도)로 인해 그는 어떤 직장이나 공식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허탈함과 막막함에 이때부터 술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술이 그를 완전히 잠식해서 찬란함을 잃기 전에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 운 좋게도.


나 : 개고생 하며 일하다 그 바닥에서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긴 했지만, 위치만 그랬을 뿐 연속적인 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아마도 그때까지 계속되었던 중증우울증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지금 추측해 본다. 나도 어찌어찌 결혼을 했다.

A :  그냥저냥 버티고 살다 목사가 되었다. 나름의 탈출구라고 생각을 한 건지, 그냥 목사가 되기 쉬워서 그런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왜 목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나님도 모르시지 싶다. 알코올중독자 목사가 뭐를 제대로 했겠다. 글로 쓰기 창피한 일만 사천 팔백만 개를 남겼다.


니 : 중증우울증에 직업적 성공도 없고, 그러다 제대로 하나 말아먹고, 아마 깊은 현타가 왔었던 것 같다. 고민을 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목사가 되는 과정을 밟기로 했다. 신학대학원 입학 시험 준비를 했고 합격을 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목사가 되진 못했다. 목사라는 직업에 열망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냥 어쩌다 보니 목사가 되었고 답답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목사 직함은 가지고 있지만, 어느 교회에 소속되어 주일마다 설교랍시고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 부분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A : 목사라는 보호막 아래 술에 더 더 빠져들었다.


나 : 현재 사업을 하고 있다. 잘 안돼서 죽을 맛이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끝까지 해 볼 거다. 나도 내 배경과 내 상황에서 당당히 벗어나서 내 두 발로 굳건히 서고 싶다. 는 마음이 간절하다. 술은 안 마신다.

A : 말년에 아무 말 없이 가출했다. 그러다 어느 섬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되어 전주로 이송되었다가 서울 국립의료원으로 왔다. 처음에는 신분 확인이 안 되어 행려병자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신분 확인이 되어 가족에게 연락이 닿았다. 몇 년 만에 만난 그 사람. 찬란함은 먼지만큼도 없고, 골격이 그대로 보이는 모습. 그를 국립의료원 병실에서 보았을 때 나의 첫마디

이러려고 그렇게 했어?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간암으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두서없이, 정교하지 못하게 나와 A의 인생을 병렬로 늘어놓았다.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다른지.

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같은 사람이지만, 완전히 그렇지는 않아 다른 나.



마음이 한결 편하다.



지금 떠오르는 한 마디.


잘 가. 아빠.
나는 나의 아이들의 아빠가 되기 위해 갈게.
안녕



나는 내 길을 가야겠다.

난 찬란했던 그의 황금기보다 더 찬란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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