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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현 Aug 26. 2021

유령의 피난

단편 소설 (5) 완결

5. 명성산에서               

  




  


  정서는 기절한 상태에서 눈을 떴다. 지하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이상한 공기의 냄새는 썩 좋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지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쇠기둥이 눈 앞에 보였고, 감옥과도 같은 장소였다. 자신의 팔은 묶여 있었고 자신이 가진 칼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역시 없었다. 지하실에는 정서 말고도 한명이 더 있었는데 여자였다. 그녀도 묶여 있었고, 정서가 있는 방의 앞 방에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최민영이었다. 그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체념한 듯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그녀는 긴 바지를 입었는데, 아래쪽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검정색 티셔츠는 그녀가 씻지 않아서 나는 냄새를 상징하는 듯 더 꺼무스름하게 보였다.

  “우리 둘 다 죽을 거야.” 

  민영은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듯 말했다.

  “죽긴 왜 죽어. 죽는 건 너고, 사는 건 나야.” 

  정서는 기세등등하게 답변했다.

  “보아하니, 이익배에게 대항하다가 잡혀온 놈 같은데, 그저 주어진 대로 살면 되지, 뭘 그리 궁금하게 여겨서 이런 신세가 되었냐?” 민영은 자신을 후회하는 듯 지껄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정서는 훤히 꿰뚫고 있는 그녀에게 놀라서 되물었다.

  “나도 그랬거든.” 민영은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여기는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돈이나 받아먹으면서 살면 그만인 곳인데, 유령의 피난에 대해서 너무 알려고 했던 게 문제였던 거지. 나도 여기 조직에 대해서 이해가 안가더라고, 처음에는 당연한 일인 듯 싶었지만, 너무 타이밍이 절묘하기도 하고, 내가 집이 가난한 것도, 법을 너무 두려워한 것을 이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래서 조금 조사를 해보기 시작했다가 이런 꼴이 된 거지” 민영은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긴 도대체가 어디지?” 정서가 물었다.

  “여기는 명성산이야.” 

  “그래? 헌데 너는 이 조직에 들어 온지 얼마나 된 거지?” 

  정서가 물었다.

  “나 1년”

  “뭐! 1년, 나 5년인데, 한 참 아래네, 넌 이름이 뭐냐?”

  “나 최민영, 넌?”

  “난 박정서.”     

  “화적연의 산장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답니다. 그리고 명부들, 장부들, 조직의 자금으로 필요한 물건들이 모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박정서 그 놈의 소행인 게 틀림없습니다.” 

  이익배의 부하가 말했다.

  “헌데 놈을 아무리 뒤져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다른 부하가 침울해진 채로 말했다. 

  “그래? 분명 홍혜주에게 있을 거야. 그 계집을 잡아서 우리의 명부들과 장부들 그리고 물건 등을 모두 돌려받아야 한다.” 

  이익배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 알겠습니다.” 

  부하가 대답했다.

  “권지현의 행방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놈들에게 당한 것이 아닌지......”

  “박정서 그 놈은 지독하게 운도 좋은 놈이군, 지금 당장 죽일 수도 없고, 홍혜주를 잡는 덫으로 써야겠어.” 익배는 희망을 가졌다.          

  이익배는 지하로 내려가더니만 박정서에게로 갔다. 

  “이거 둘이 죽기 전에 마지막 연애라도 하는 건가?” 

  익배는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다.

  익배는 정서 쪽으로 걸어갔다. 

  “박정서! 살고 싶다면 홍혜주가 있는 곳을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나. 넌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지? 다른 사람의 운명을 함부로 주물러서 조작하는 네 놈은, 자신이 얻을 것만 얻겠다 이건가?” 

  정서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감옥의 쇠기둥을 잡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용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이용해야 하는 것이 세상이지.” 익배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넌 그저 말 잘 듣는 꼭두각시로 살았으면 내가 호강 시켜주었을 텐데, 이렇게 까불어서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뭐라고! 네놈을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정서는 격노하며 말했다.

  “갇혀 있는 놈이 말이 많군.” 익배는 야비한 웃음을 흘렸다.

  “저승길 같이 가게 해줄 사람도 옆에 있으니, 둘이서 최후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고문을 당하고 싶지 않거든, 홍혜주가 있는 곳을 말해!! 시간을 조금 주지.”

  “하하하하!! 고문을 당한다고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정서는 비웃었다. 

  “시간을 조금 주지. 말을 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익배는 감옥에서 나왔다. 익배는 고문을 해서 끝낼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혜주가 가진 물건들과 정서를 교환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홍혜주, 그 계집을 어떻게든 찾아서, 정서하고 맞교환 해야겠어. 지금 즉시 화적연의 산장도 다시 가보고, 혜주를 놓쳤다는 곳도 다시 가보고, 비둘기낭 폭포의 산장도 다시 가봐. 그 계집을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서 정서는 우리가 데리고 있으니, 우리가 조직원으로 조작해서 끌어들인 명부와 거래한 장부들 그리고 물건들을 돌려달라고 해!! 알겠나?” 

  익배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혜주와 도현은 명성산에 도착했다. 

  “여기서 죽게 된다면, 궁예만큼이나 나도 울음이 나겠는 걸......” 

  도현은 숨을 크게 쉬었다.

  “죽긴 왜 죽어. 잘 될거야!” 혜주가 도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밖에서 살펴 본 결과 대략적으로 유령의 피난은 스무 명 정도였다. 수는 굉장히 많았다. 그에 비해 혜주와 도현은 둘 뿐이었다. 둘이서 스무 명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안에는 정서도 갇혀 있고 섣불리 행동하다가는 정서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밖에는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들어가고 나가는 문은 하나 밖에 없었는데, 여기는 무슨 작전을 짜서 들어가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았다. 다행히도 화적연에서 찾아낸 명부를 살펴보니 유령의 피난의 조직원이 된 사람 중에 한 명이 한도현 자신을 닮아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름은 유승진이었다. 유승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놈과 한도현은 얼굴이 정말 닮아 있었다. 도현은 자신이 여기 명부에 있는 승진이라는 사람으로 변장을 해서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위험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 밖에 없었다. 명부에 있는 유승진이라는 사람으로 변장을 했고,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행여 무슨 일이 생기면 혜주는 뒤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이봐, 유승진!! 너 여긴 어쩐 일이야?" 

  초소에서 지키는 부하 중 한 명이 물었다.

  "리더에게 보고할게 좀 있어서, 리더 지금 안에 있지? 들은 바로는 누가 잡혔다던데......"

  한도현은 최대한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말을 많이 걸까봐. 최대한 상대방이 말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아, 박정서라고 알지? 그놈이랑, 다른 데서 잡아온 최민영이라고 계집 알지? 둘 다 곧 처형 될걸, 아마......" 초소를 지키는 왼쪽 부하가 웃으면서 말했다.

  ‘헌데 잠깐, 물건을 잊은 건 아니겠지?’

   초소를 지키는 오른쪽 부하가 목소리를 최대한 작게 하며 물었다. 

  ‘......’

  ‘물건 말이야, 물건’

  ‘무슨 물건이지?’ 도현은 곤란해했다.

  지금 상황에서 물건을 묻는다는 것은 뭔가 대답하는 것에 따라서 자신이 유승진으로 변장한 게 들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 빼돌려 주겠다고 했잖아.’ 

  왼쪽 부하가 다리를 살짝 치면서 물었다.

  ‘아 그거. 그게 뭐......지?’ 

  도현은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아 나 이거 참 답답하네, 최익현의 초상화 말이야.’ 

  왼쪽 부하가 도현의 팔을 붙잡았다.

  ‘아...... 그거, 크기가 커서, 지금 가져오지...... 못했어. 잘 가지고 있으니 걱정 마.’ 도현은 최대한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래, 너만 믿을게!’ 

  오른쪽 부하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너 목소리가 이상해진 것 같아. 며칠 사이에.’ 

  왼쪽 부하가 물었다.

  ‘아...... 감기에 걸려서 그래.’ 

  도현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긴, 감기에 걸리면 목소리가 다 이상해지기는 하지.’ 

  오른쪽 부하가 자신의 동료를 쳐다보았다.

  "자! 그럼 들어가 보라고". 

  왼쪽 부하가 안을 가리켰다.

  도현은 안으로 들어와서 살펴보았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차가운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 공기가 심장을 눌렀다. 정서를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은 차가운 공기가 심장을 꿰뚫어 가듯이 자신의 심정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길게 뻗은 통로도 보였고 군데군데 벽들도 세워져 있었다. 위층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지하로 가는 길을 택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도현은 대부분 갇혀있는 곳은 지하라는 것을 고려해서 지하로 먼저 내려가 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누군가 자신의 방향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현은 일단 벽 뒤로 숨기로 했다. 세 사람 정도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우리가 살아야지."

  "암, 박정서를 죽일 수는 없잖아."

  "그 계집은 죽여도 되지 않을까?"

  세 사람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세 사람이 완전히 사라져 갈 때, 도현은 재빨리 뛰어서 지하로 내려가기로 했다. 지하에는 열쇠를 가지고 지키고 있는 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 놈은 한눈에 보아도 날쌔보이지가 않았다. 도현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제압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어이, 여긴 무슨 일이야?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는데 빨리 나가!" 

  문을 지키는 녀석이 고자세로 고함을 질러댔다.

  "아니, 그게 아니고......" 

  도현은 대답했다.

  "뭐라고?"

  "그러니까......"

  "뭐라는 거야?"

  도현은 문을 지키는 놈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일격을 가해 기절시키고는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도현은 재빨리 정서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나야, 도현이’

  ‘도현아. 네가 어떻게 여길.’

  ‘일단 이걸 받아.’

  도현은 자신이 가져온 칼을 정서에게 주었다. 정서는 칼로 자신의 손목을 묶어버린 끈들을 잘라 버렸다. 

  ‘옆에 있는 애는 어쩔거야?’ 

  정서가 물었다.

  ‘데려가야지. 나는 너보다는 잴 구하러 온 건데’ 

  도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 판국에 그런 대사가 나오는 건가’ 

  정서는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도현은 자신의 칼을 하나 더 꺼내서 옆에 있던 여인에게 주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알고 있겠지만 최민영이다. 도현은 민영를 보면서 자신은 정서가 대신해서 혜주의 죄까지 짊어지고 감옥살이를 한 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도현은 민영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꾀죄죄한 모습이 그를 더욱 자극시켰다. 도현의 사랑의 시작이었을까?

  ‘나까지 살려주는 건가?’ 

  민영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민영 또한 칼로 자신을 묶은 끈들을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열쇠로 문을 열어서 감옥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이제 나가는 것이 문제였다. 셋은 지하에서 위층으로 올라갈 때 벽에 숨으면서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벽은 그다지 세 사람이나 숨겨줄 만큼 너그럽지 못했다. 세 사람이 한쪽 벽에 몸을 숨기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고 셋은 함께 있을 때, 너무나 비좁아서 그런지, 혹은 민영이가 입고 있는 빨지 않은 옷에 묻은 땟물 탓이던지, 민영은 그만 재채기를 하고 말았다. 

  "엣취~~!"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다섯 명 정도 되는 조직원들이 칼을 들고 정서 일행을 덮쳤다. 싸움에서 도현은 정서가 위험해질 때 도움을 주었고, 둘은 결국 다섯 명을 쓰러뜨렸다. 민영은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비호처럼 몸을 놀리는 도현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정서보다도 잘 싸우는 것 같아 보였다. 정서가 위험해질 때 도와줄 정도로 도현은 강했다. 

  ‘후우...... 큰일이야. 밖으로 나가려면 아직 시간이 걸리는데......’ 

  도현은 자신의 칼을 잡으며 말했다. 

  ‘혜주는?’ 

  정서도 칼을 다시 잡았다.

  ‘밖에 있어.’ 

  도현은 민영을 쳐다보았다.

  ‘너 설마 이 정도도 휘두르지 못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 

  정서가 민영에게 물었다. 

  ‘난...... 이정도 못하는데,’ 

  민영은 칼을 입에 물고 옷을 살짝 찢어져 그 옷으로 머리를 묶었다.

  ‘갈수록 태산이군.’ 

  정서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 사람은 최대한 자신들을 벽에 숨기면서 다시 움직였지만, 출구에서 그만 이익배에게 걸리고 말았다. 익배는 이미 그들이 탈출 한 것을 눈치 채고는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익배를 만나게 되었다. 익배의 부하들은 대략 열다섯 명 정도 되었다. 

  "이렇게 반가운 얼굴을 이렇게 빨리 보내드릴 수가 있나?"

익배는 총을 꺼냈다. 부하들도 하나 같이 총을 꺼내서 정서 일행을 겨누었다. 정서 일행은 익배와 익배 부하들의 총 앞에서 어찌해야할지를 몰랐다.          

  밖에서 보초 서던 두 명이 안에 침입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혜주는 지금 안에 위험한 일이 생긴 것 같아서 들어가는 것을 결심했는데, 문 뒤로 다가와서 살펴보니 친구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살금 살금 다가가더니 리더로 보이는 놈의 뒤통수를 잡고 총을 관자놀이에 대었다.

  "모두 꼼짝마라! 움직이면 이놈의 목숨은 없다. 죽고 싶지 않으면 무기를 모두 버려라!!"

  갑작스런 혜주의 등장에 익배의 부하들은 서로 쳐다보기가 바빴고,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뭐해, 다들 총 내려놔!" 

  익배가 말했다. 

  익배의 부하들은 총을 내려놓았다. 혜주의 등장에 정서 일행은 기운을 내기 시작했다. 혜주는 뒤로 조금씩 움직이면서 정서 일행을 문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산장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나오게 되었고 발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부하들도 같이 움직이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혜주가 그만 뒷걸음질을 잘못하여 넘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모든 총은 문 안, 그러니까 산장 안에 있었다. 혜주가 무기를 버리라면서 소리쳤으니까 말이다. 넘어지는 순간, 익배의 부하들은 주머니 안에 있던 칼을 재빨리 꺼내들었다. 칼을 항상 주머니에 숨기고 있었나 보다. 정서일행도 총은 있었지만 총을 쓰기에는 시간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정서는 재빨리 뛰어서 넘어진 혜주를 일으켰다. 혜주에게도 총은 있었지만 넘어지면서 떨어뜨리게 되었고, 이익배의 부하들이 눈앞에서 칼을 들고 들이닥치니, 총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떨어진 총을 줍느니, 주머니에 있는 칼을 꺼내는 게 더 나았다. 총이 없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정서와 혜주는 싸우면서 러브씬을 찍고 있었다. 도현은 정말 잘 싸웠다. 도현은 민영을 지켜주면서 싸웠다. 민영은 도현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민영은 잘 싸우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한명씩 처치해 나갔다. 도현과 민영도 싸우면서 하나의 러브씬을 찍고 있었다. 

  “대체 뭐하는 건지?” 

  익배는 러브씬을 찍으면서 싸우는 놈들을 어이없어 했다.

  그렇게 네 명은 익배의 부하들과 싸웠다. 결국 익배의 부하들을 다 정리 하고 이익배만 남겨두었다. 

  "하아......드디어 너만 남은 건가?" 

  정서는 상처 난 곳을 부여잡고 말했다.

  도현은 이익배는 정서가 처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혜주도 민영이도 가만히 있었다. 민영은 기껏해야 조직원으로 있었던 게 1년이니까.

  "죽여라! 어서, 박정서!" 

  익배는 정서의 칼에 자신의 배를 더 가까이 대었다. 

  "너는 사람의 운명을 함부로 짓밟았다! 나는 너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살지 않을 수 있었어!" 박정서는 고함을 질렀다. 

  "그게 너의 문제야, 민영을 봐라. 1년만 지나도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 너는 5년이 지나도 찾지 않으려고 했어. 1년도 문제 아닐까? 게다가 네가 감옥까지 갔다 온 시간 다 합쳐봐. 9년이나 약 10년 되려나? 민영인 감옥까지 갔다 온 시간 다 해도 약 3년 되려나? 너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지. 인간이란 원래 주어진 것에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사는 동물이라는 거지. 물론 너는 나름대로 부정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그저 주어진 현실만 탓하는 것일 뿐이라는 거지. 그 주어진 것 자체를 부정하면서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하는 데 말이지. 결국 그렇게 사는 것은 너의 문제지. 내 탓이 아니야. 나로 인해 이런 문제가 생겼다? 아니, 내가 아니었어도 너는 이런 문제를 겪었을 거야. 유령의 피난 이름의 뜻이 뭔지 아냐? 바로 너 같은 놈들을 유령으로 만들어서 피난시켰다는 거다. 너는 그저 유령이고 피난하고 있으며 나 같은 놈의 꼭두각시로 살면 되는 거였어!”

  "뭐라고?" 

  정서는 어이가 없었다. 

  “유령의 피난이 그런 뜻이었다니......” 

  혜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유령의 피난의 뜻을 듣고는 모두 충격적이어서 그런지 갑자기 정적이 흘렸다.  

  "아니, 어쩌면 너는 오히려 내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냐?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한 것도 다 내가 한 거잖아. 어디 가서 일해 봐라. 지금만큼 돈 벌 수 있을 것 같아?" 

   역시 이익배는 조직의 보스답게 배포가 컸다. 이익배는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 자랑스러운 듯 지껄였다.

  "불법적인 행동들로 가득 채워진 심장으로 밖에서는 사람행세도 못하면서 사는 것을 어떻게 감사해야 한다는 거지?" 

  이익배의 황당한 말을 듣고 정서는 격렬히 분노했다. 뻔뻔스럽게 말하면서 지금 상황을 넘어가려는 그런 수작들이 너무 훤히 보였다. 

  "매일 같이 죄인취급 당하면서 사는 심정인데 돈이고 황금이고 무슨 소용이냐? 무슨 소용이냐고!"

  정서는 소리치며 말했다.

  산장 안에서 탈출 할 때 기절했었던 다섯 명의 조직원들이 밖으로 나온 것인지 그들은 총을 들고는 밖으로 나와서 정서 일행에게 다가왔다. 정서와 익배가 이야기 중이라서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익배의 명령으로 혜주를 찾아서 협상을 하려던 조직원들도 모두 돌아와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총을 하늘로 쐈다. 

  "이런 큰일이군!" 

  도현이 말했다. 

  "하하하하, 나의 승리인 것 같군." 

  익배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표정이 흐뭇해졌다. 

  아니 이미 정서와의 대화중에 뒤에서 다가오는 자신의 부하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싶은 것을 숨기느냐고 애를 먹었다. 익배는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느꼈다. 쓰러져있던 부하들도 하나 둘 씩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상황은 정서 일행에게 완전히 불리해졌다.          

  "모두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뒤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많은 경찰들이 에워싸고 총을 겨누었다. 혜주가 이미 지원요청을 했던 것이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이익배와 부하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체포되었다. 유령의 피난은 그렇게 끝이 났다.           


  






  네 명은 명성산에서 저녁노을을 보았다. 저녁노을이 인생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보인 적이 있었을까? 네 명은 격렬하게 싸움하느라 옷이 너덜너덜하게 헤지고 몸은 여러 군데 상처도 입었지만 지금의 심장은 너무나 따스하고 새로운 기운이 차오르는 듯 영혼을 일깨워 주었다. 정서는 무엇보다 앞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 불법적인 행동으로 채워진 심장에서의 해방감, 죄에 대한 고통에서 벗어나서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사람으로서 살고 싶었던 마음을 이제야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도현은 민영을 바라보았고, 민영도 도현을 바라보았다.

 "도현아. 나도 앞치마 사줄래?" 

  민영이 물었다. 

 "물론! 앞치마 커플하자."

 도현은 민영을 안아주었다.      

정서도 혜주를 바라보았고, 혜주도 정서를 바라보았다. 

 "정서야, 이제 앞으로 뭐할 거야?" 

 혜주가 노을을 보며 정서에게 기댄 채 말했다.

 "응? 경찰해야지. 그래서 너랑 결혼하려고." 

 정서는 혜주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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