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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y 17. 2020

카카오맵에 엄마 가게가 지워진 날

옆집이 엄마 가게를 지웠다

이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마음을 쿡쿡 찔렀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으로 글을 썼다는 걸 엄마가 알게 된다면 혼을 낼 게 분명하니, 화는 고사하고 도리어 속을 앓을 게 분명하니 포기했습니다. 카카오맵에서 답신을 받은 날짜가 4월 28일, 근 한 달간 저는 이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카카오맵의 빠른 대처를 요구함과 동시에, 경쟁사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은 점주 분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엄마는 제주도에서 작은 휴게 마트를 운영하고 있어요. 과자나 음료수를 파는 것과 동시에, 제가 초등학교 때 이 년간 운영했던 분식점을 가꿨던 솜씨로 떡볶이부터 제육덮밥 같은 요리를 함께 만들기도 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늦둥이 남동생은 아직도 중학생인 데다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저는 글로 많은 돈을 벌기엔 아직 멀었으므로 엄마는 건물을 9년간 빌려 마트를 운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횡단보도를 두고 세 곳의 빵집이 서로를 시기하는 장강명 작가의 소설 「현수동 빵집 삼국지」처럼, 휑한 도로에 지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했음에도 저 자리는 내 것이라며 호시탐탐 중얼거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소상공인은 살아남기 어려운 법, 엄마는 그 질투마저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장사도 그리 나쁘지 않게 굴러가니 오히려 동정받는 것보다 질투받는 게 낫다고 위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질투를 하는 대상이 건물주라는 사실은 비단 엄마 본인의 위로만으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한 건물에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차리며 엄마에게는 담배를 팔지 말라고 했거든요. 서른이 넘은 건물주의 아들은 엄마 앞에서 계약서를 땅에 던지기도 하고, 몰래 호스를 갖다 써 덤탱이된 수도비를 내게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싱글벙글 잘 웃으며 손님을 대하는 엄마의 성격 덕에, 손님들은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 담배만 산 뒤 엄마의 가게로 발을 돌렸습니다. 주인은 배가 아플 게 분명하죠. 엄마는 일주일마다 주민센터에서 감시하러 나온 공무원분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위생이 안 좋다는 허위 제보를 받았고, 보건증이 없는데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는 허위 신고를 받기도 했죠. 번번이 빈 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던 공무원들은 오히려 저희에게 "장사가 너무 잘 돼서 그런 거니 속상해하지 마세요. 저희가 대신 죄송합니다."라고 사과까지 했습니다. 공무원분들이 사과한 적은 처음이기에 저는 생경한 풍경에 놀라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카카오맵에 엄마 가게가 사라졌습니다. 카카오맵은 광고가 많지 않아 클린하다고 유명했고, 그러니 저는 마음에 드는 가게를 만날 때면 카카오맵을 켜 리뷰를 자주 남겼습니다. 혹시 몰라 엄마의 옆 가게, 건물주가 차린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눌렀더니 저희 가게를 칭찬하는 리뷰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올라왔습니다. 카카오맵에 엄마의 마트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으니, 건물주의 편의점을 통해 엄마 가게의 후기를 적었던 겁니다. 자세히 보기를 누르지 않았더라면 편의점의 별점이 5점으로 오해되기 딱 좋았어요. 후기를 적어주신 분에게는 말도 다하지 못할 만큼 감사했으나 누가 신고했는지 빤히 보이는 일이었어요. 엄마에게 스크린샷을 보내며 "그분들이 신고한 게 분명해!"라고 소리쳤으나 엄마는 오히려 저를 토닥였습니다. 되레 차분한 말투로 카카오맵에 연락해 다시 우리 마트를 보이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카카오맵에 신고하기 전, 실험 삼아 건물주의 편의점이 사라졌다고 허위 신고를 해봤습니다. 금세 적용되었고요. 그러니 이로써 따로 폐업되었다는 증거 없이도 허위 신고로 가게의 정보를 사라지게끔 할 수 있음을 알았어요. 저는 다시 카카오맵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제가 했던 허위 신고를 시인하며 그 가게와 엄마 가게를 다시 살려달라고 했어요. 증거 없이  명의 신고로 가게 정보를 없애지 말라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바가지가 심한 제주도에서, 가족 여행으로 놀러 온 한 분이 계산 중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이 4박 5일 여행 중 마지막 날인데, 제주도에서 이렇게 친절한 분은 처음 봬요."라고요.


허위 신고를 당해 정기적으로 공무원을 보더라도, 허위 제보로 카카오맵에서 가게 정보가 사라져도 도리어 괜찮다며 저를 토닥이는 엄마입니다. 저는 이런 엄마가 답답하기도 해요. 직접적으로 당한 건 엄마임에도 제가 방방 뛰고 있으니 오버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어떤 일이 생겨도 차분하게 그럴 수 있다며 넘기는 엄마, 저는 아직 그 경지까지 다다르려면 얼마만큼의 세월을 보내야 할지 캄캄합니다. 재난 지원금을 받는 요즘,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너무 미워하지 않는다면 좀 더 활기차게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겠죠. 저도 이 글을 끝으로 저를 갉아먹었던 미움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카카오맵, 부탁할게요. 다른 곳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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