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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Nov 20. 2021

은둔의 고수


하루는 살고 싶고 하루는 죽고 싶던 과도기를 거치고 나니 하루는 드러나고 싶고 하루는 숨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며 스마트폰을 끄고 이불을 돌돌 말아 웅크리다가, 유튜브로 타로를 점치는 영상을 보고 나면 말없이 사람과 따스한 대화를 나눈 느낌이라 인스타그램을 켜고 근황을 올린다. 심지어 마이크를 쥐고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연 장면이다. 엊그제 강의에서는 "글은 말이에요. 영감을 포착하겠다는 마음을 지워야 합니다. 글감이 없으면 만들어내야 하는 게 작가……"와 같은 얘기를 했다. 마음에 사는 악마가 비웃었다. 야 인마, 네가 제일 노력 없이 글감을 줍고 싶어 하는 사람이잖아? 드러나고 싶은 내가 찾아올 때는 조금 허황된 말을 한다.


세세한 이유도 알리지 않고 제주로 숨은  나는 카카오톡을 지웠다. 그리고 정확히 낮잠을   다시 깔았다. 숨고 싶은 마음과 드러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는 특징을 정말  표현한 상황이었다. 불과  시간 만에 카카오톡을 다시  이유는 평소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였다.  지내,  같은 평범한 안부로 시작할  알았지만 친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인사를 했고 힘든 고충을 털어놓았다. 나는 고민을 들으며, 친구의 성향과 맞을 법한 대안책을 내놓으며 샤워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믿음직한 친구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뿌듯했던 건지 내놓은 대안책이  마음에 들어서 그랬던 건지 친구의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분위기가 느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통화를 끊고 글을 썼다.


엠-비-티-아이의 네 글자가 정확히 반대로 바뀌기도 하는 나로서는 똑같은 상황에 같은 친구를 만나도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가 기막히게 달라진다. 겉으로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짓지만 마음으로는 '으악! 도망가고 싶어! 나를 집에 보내줄 수 있겠니?'를 속으로 중얼거리다 다음 날 문득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문득 삶이 간절해지면 사람을 만나는 게 즐겁다. 오지랖 넓게 고민을 물어보고 마치 내 고민인 것처럼 조언을 내놓는다. 그러다 집에 오면? 미소 어린 훈훈한 장면이 변질된다.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친구의 고민을 뜯고 조언을 강요한 빌런이다. 이불의 아래 부분은 헤진 지 오래다. 내가 너무 발로 많이 차 버렸다.


사람 좋은 친구에게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만날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말실수를 할 수 있는데, 내가 상대의 기분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주제와 다른 얘기를 하거나 무심코 상처를 건드릴 수 있는데 어떻게 그 모든 위험 요소를 안고 친구를 만날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고민을 들은 친구는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글쎄, 사람을 만나는 내가 즐거우니까……?" 나는 이제까지 상대만 생각하느라 내 즐거움은 저 멀리멀리 치워버렸던 거다. 무릇 내가 진정으로 즐거워야 타인도 진심으로 나와의 대화를 즐길 수 있는데, 나는 상대를 만나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가 나와의 만남을 후회하지 않게 하기 위해 거의 인터뷰를 했다. 글 쓰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글 스무 편은 기본으로 읽고 만남에 임했다. 인스타그램을 하는 친구면 게시글 스무 개는 기본으로 보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니 만나기 전에 스스로 지쳐 떨어지는 수밖에. 언젠가는 단어를 잘 고르며 나를 위해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래에는 진심이 상대에게 잘 닿을 수 있도록 단어를 골라주는 기기가 생겼으면 한다. 고맙습니다, 라고 단순히 말해도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은 환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자동으로 추천되는 단어장. 아무래도 음성을 녹음하는 기술이니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지만 이미 내 개인정보는 내가 모르는 나라까지 도달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 정도야 괜찮다. 다만 그 기기에 녹음 기능은 탑재되지 않았으면 한다. 집에 오면 나는 분명히 상대와의 대화 녹음본을 듣고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발을 찰 테므로. 이불은 현재나 미래나 한결같이 헤질 것이다.


진정한 은둔의 고수는 혼자 있어도 너무너무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하루는 혼자 있는 게 너무너무 즐겁다가 다음 날에는 너무너무 심심해서 꿈에 그리는 은둔의 고수가 되기는 멀었다. 심심한 날에는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나누는데, 행복한 나머지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쏟아내거나 차별이 담긴 보편적인 언어를 쓸 때가 있어서 전화를 끊고 후회한다. 그러면 혼자 있어도 괜찮고 편한 일주일의 시간이 따라온다. 메일과 댓글에 답장하는 나는 항상 메모장을 켜고 상대의 글을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그 줄에 맞춰 마음을 꺼낸다. 답글과 회신이 늦은 이유다. 충분히 생각해 최대한의 후회가 없도록 글을 남긴다.


대화는 다르다. 단어를 고르는 주저함이 길어지면 대화가 끊기고 티-키-타카 하는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빠르게 말을 내놓으면 실수할 위험이 높아진다. 예전의 나는 자살 각, 이라는 단어에 아무런 의식을 하지 못했지만 생존자가 되고 나서 자살이라는 단어에 깜짝깜짝 놀란다. 어떤 유머를 담은 카드 뉴스에는 수치로 자살 각, 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그 말이 내게 웃지 못할 이유가 생기고 난 뒤였기 때문에 나는 이제까지의 나를 바쁘게 점검했다. 나는 그간 어떠한 언어로 상대를 괴롭혔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그건 바다와도 같았다. 한 유가족은 내게 바다의 지점을 가리키며 가족을 잃은 곳이라 했다. 그를 애도하러 바다를 방문한 날, 사람들은 우연하게 같은 곳을 가리키며 정말 예쁘다고 외쳤다. 내게 그곳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고뇌를 거치고 들어선 장소였다. 그를 애도해야 하는 곳이었다. 관광객에게 그곳은 관광지였다. 예쁘다는 말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나 다만 조금 아픈 사람이 생길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커다란 지점을 나는 실수로 얼마나 건드렸을까.


브런치를 삼 년 가까이하다 보니 만나고 싶은 사람이 늘었다. 글을 올리자마자 한결같이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분, 조울증을 앓아 성격이 이리저리 바뀌는 내 모습을 요아 유니버스라고 기대가 된다고 말씀해주신 분, 기개가 멋지다고 응원해주시는 분, 자신에게 뒤집힌 모래를 흙으로, 땅으로 만들어 그 위에 올라서고야 말았다는 서평을 남겨주신 분과 브런치를 진작 구독했어야 한다며, 기존에 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부럽다는 글을 남겨주신 분을 모두 만나 한 명 한 명에게 안부를 묻고 악수를 청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글이 편한 사람이라 말로 감사함을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렵다. 자꾸만 은둔의 고수를 자처하는 이유다. 글로 나를 접한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길까 봐 무섭다. 물론 글 쓰는 자아와 개인의 자아는 다르다고 하지만 나는 에세이를 쓰며 거짓말을 하지 않으므로 꽤 비슷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라는 걸 자꾸 증명하고 싶다.


꼭 만나요, 올라가면 연락할게요, 밥 한 번 살게요,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 아니다. 다만 내게 가장 좋은 기분을 찾아 당신에게 즐거움을 안길 수 있도록 컨디션을 되찾는 중이라 자꾸 미뤄질 뿐이다. 너무 늦지 않게 가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러니 내년에는 다시 육지를 가기로 정했다. 사람이 붐비는 육지로 향하는 은둔의 고수. 어색하고 역설적이지만 어느 쪽이든 나니까. 다만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정적이 길어져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음을 담을 가장 알맞은 단어를 찾는 중이어서다. 당신을 실수로라도 해치지 않을 무해한 문장을 찾는 중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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