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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Nov 11. 2021

열등감으로부터
나르시시즘으로


  슬픔에 빠진 나도, 기쁨에 환호하는 나도 모두 나라 여기자 다짐했지만 기쁨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슬픈 나는 언제나 내게 외면당했다.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은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내 길을 걸으며 누가 뭐래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랬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면 부정적인 반응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훌훌 털어버리는 사람이랬다. 작년 이맘때는 그런 사람과 비슷했다. 원하는 기업에 붙었고, 형제는 살아 있고, 계간지에 동화를 실었고, 곧 이름을 표지에 단 에세이까지 나온다는 사실은 자아를 거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현재를 기준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뽑는 대회를 연다면 못 해도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 만큼의 커다란 자긍심을 지녔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자랑할 만한 성과를 더 이상 내지 못하는 나를 내내 맞닥뜨리니 "나를 사랑해야 해!"라고 외치다가 "넌 뭘 했어? 올해에 뭘 해냈어?"로 마음을 갈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긍정이 아닌 자기 암시였다. 글을 올렸는데 반응이 없으면 지웠다. 그러면서 자존감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상담부터 책까지 섭렵했으니 간극이 손 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건 '좋은 일'을 하는 나만이었다. 일에 매진하는 나, 피곤을 참고 글 쓰는 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나,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나. 그 외의 부수적인 나는 모두 지워냈고 무시했다. 해야 할 일을 두고 이불에 눕거나 타임 킬링용 영상을 보며 시시덕거리는 나는 솔직히 말해 나로 취급하지 않았다. 하루를 기록하던 다이어리는 먼지만 쌓였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를 들여다보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편안함을 느끼는 분위기, 싫어하는 특성을 가진 사람, 힘들 때 필요한 플레이 리스트와 음식, 장점과 단점을 낱낱이 알았다. 가장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않고 나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그게 문제였다. 이제껏 나를 사랑하지 않는 데 익숙해 나를 애정하려고 너무 애썼다. 실망을 안기는 사람이 생기면 이해할 필요 없이 멀어졌다. 나를 뽑지 않는 공모전이나 기업을 만나면 속으로 비난했다. 언제나 내 생각이 옳다고 자만했다. 나를 너무 사랑하려고 노력한 나머지 세상의 중심을 나로 두었다. 자기 연민의 늪에서는 글을 쓴 덕분에 무사히 나왔지만, 자기 연민을 하지 않으려다보니 이번에는 세상에 방어막을 세웠다.


  자아가 나를 집어삼킬 만큼 비대해졌다는 사실은 유명한 어린이 문학상 공모전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였다. 원래의 나였다면 배우는 과정이니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토닥거렸을 텐데, 지금까지 내가 해온 노력이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화가 났다. 내가 아니면 누구를 뽑는다는 거야? 건방지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사위원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뒤따라오자마자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사람들과 멀어지는 쪽을 고르자고 결심하던 느낌과 비슷했다. 어떻게 나를 실망시킬 수 있어,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도 밉고 지인도 모두 밉고 나만 애착하는 나르시시즘에 빠질 것 같았다.


  『내가 나인 게 싫을 때 읽는 책』에서 이두형 선생님은 자존감에 관해 이렇게 얘기한다.


  "자존감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타인과 비교해 이런 부분이 부족해 속상하지만 그래도 이러저러한 부분은 꽤 괜찮다고 애써 마음을 설득하는 과정은 자존감과는 거리가 있다. 그저 내 삶이 존재함을 느끼는 것,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삶이란 이토록 허무한 것이지만 그 허무함 속에서도 살아보고픈 삶을 떠올려 보는 것. 그리고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안은 채 그런 인생에 다가가는 하루를 보내는 것.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내 삶이란 이런 것이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이다."


  공모전에 떨어지고 나서 내 자리가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때까지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심사위원을 미워했다가, 힘든 상황에 처한 내게 상을 주지 않는 세상에 화를 냈고, 도대체 누가 뽑혔는지 궁금해했고, 공모전을 준비하며 쏟은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마음을 자꾸 과거로 태워 보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왜 내 실력에 자신만만해졌던 걸까, 몇 번 떨어질 수 있는데 왜 그간의 노력까지 주워 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곰곰 고민했더니 덮어두었던 본심이 빛을 냈다. 너는 너를 너무 사랑하려 애쓰느라 주변을 무시하고 있어. 빠르게 인생의 답을 찾고 혜안을 기르면서 만물을 통찰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욕구가 심해. 그러니 기대보다 대단하지 않음이 증명될 때마다 깊은 절망으로 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스마트폰을 끈 순간에도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전시하고 싶었다. 나를 찾는 모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욕구에서 기인했으리라. 기꺼이 나를 찾은 사람에게 좋은 선물만 주고 싶은 것처럼, 그 선물을 나로 만들어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처음으로 본심 옆에 고이 놓아두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포기하면 편해, 와 비슷한 마음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건 아니다.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현재를 위해 한 일이 미래의 성과와 무관한 길을 걷더라도 비난하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좌절에 허우적거리는 미래의 내게 덜 미안해 하고, 그저 하고 싶은 것을 묵묵히 하는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에밀리 디킨슨을 떠올린다. 발표하지 않고 묵묵하게 1,800여 편의 시를 쓴 진정한 시인.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기 위해서, 스스로 나는 괜찮은 사람임을 납득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고' 있다. 삶의 의미나 정답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나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냥' 하루를 살고 있다.


* 이두형 『내가 나인 게 싫을 때 읽는 책』 발췌


《시와 산책》 한정원, 시간의흐름, 2020.



  완벽하지 않은 사람의 집을 방문하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최선을 다해 선생님을 맞겠지만, 사람인 지라 실수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도 마음 편히 다녀가세요. 실수하셔도 괜찮습니다. 저희는 모두 불완전하니까요. 애초에 완전하다는 기준마저 각각 다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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