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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현요아 Oct 24. 2021

실력에 의구심이 들 때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

타인의 장점은 그토록 잘 찾아내면서, 상대가 내 능력을 칭찬하면 입을 열지 않았는데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칭찬을 받으면 오히려 못해요.”라며 좋은 점을 짚지 말라고 부탁까지 했다. 행동 어딘가에서 인성과 재능이 자연스레 묻어난 것일 텐데, 겸손이 미덕인 시대에서 살아남느라 고개를 젓는 게 익숙했다. 그런 내게 어떤 이는 “겸손까지 갖춘 사람”이라고 엄지를 보였다. 어색하게 어깨를 움츠렸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무한한 칭찬을 건넬 때도 있으니 그가 말하는 ‘겸손한 사람’에 부합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역시 입 한 번 뻥긋하지 않았는데 또 거짓말을 한 기분이었다.

가만히 있는데 거짓말했다는 마음이 들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증상은 사람들이 무서워진다는 거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므로, 아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므로 기대에 부푼 당신을 만났다가 부족한 부분을 들켜버리면 어쩌지 싶었다. 그러니 우리는 만나지 않는 편이 지금의 사이를 오래 지켜주는 방안이라며 온갖 핑계로 약속을 미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잘 알지만 잘 안다고 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내게 관심이 없다지만, 당신은 수많은 사람 중 나와의 만남을 골랐고 선뜻 시간을 낼 준비를 했다. 감사의 의미로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당신의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거나, 당신의 일기에 내가 뱉은 문장 하나가 들어가도록 심혈을 기울여 단어를 고르는 게 아닐까. 나와의 만남을 고른 사람에게 실망을 안기기 싫다는 열망은 이윽고 다른 목표로 발전됐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당최 이뤄지지 않을 바람을 품으니 상대의 눈에서 지루함이 발견되면 미안한 감정을 넘어서서 힘까지 들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부족한 면을 보였다. 저는 무언가를 뚝딱 만드는 손재주가 없고요, 예전에는 허언증을 앓았어요, 책을 읽기는 하는데 금방 잊어버려요. 상대는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얼른 안 좋은 패를 보였다. 집에서는 후회했다. 끝도 없이 부족한 면을 꺼내 웃음으로 승화시킨 장면은 술을 마셔도 또렷이 기억났다. 내가 가진 능력과 재주와 노력과 열정은 북적거리는 술집의 테이블에서 휘발되는 이야기가 되었다. 지인 덕분에 말을 더듬는 습관이 고쳐졌어요, 제 글을 찾는 분이 늘어난 건 알고리즘의 운을 탔기 때문이에요, 운이 좋아 글이 발견된 덕분에 책을 냈어요. 손가락으로 대본을 짚으며 발음을 녹음하던 나와 밤을 새우며 글을 쓴 뒤 출근하던 장면이 스쳐갔으나 열린 입은 멈출 줄 몰랐다.

타인에게 실망을 안기지 않겠다는 선의는 곧 내 모든 능력을 회피하게 했다. 강의를 하는 와중 내가 사기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운이 좋아 실력에 비해 성과를 이룬 사람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는구나. 만족도는 만점 가까이 이르며 잘 끝났지만, 정작 나는 조금 더 작아져 있었다. 아무도 사기꾼이라 손가락질하지 않았는데 내가 내게 손가락질하는 것만큼 큰 건 없었다. 글을 그만둬야 한다는, 마케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더 잘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보다 간절히 쓰고 싶은 이들이 많으니까,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선생님이 되는 게 도움 될 테니까. 물러서야 할 이유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제였다. 애정하는 선배를 만났고, 우리는 사람들이 숟가락을 떨어뜨리는 소란스러운 술집에 들어섰다. 대화는 여러 주제를 돌아다니다 곧 타인에게는 칭찬을 쉽게 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인색한 경우에 도달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을 치는 내게 선배가 작게 읊조렸다. “그거 알지? 요아, 네가 제일 박한 거.” 사람들은 여전히 내 주변에서 소리를 질렀고 술잔을 부딪쳤으며 바닥에 떨어진 코트를 주웠다. 나는 찡그려 울고 싶은 마음을 담아 보조개를 찡그려 웃었다. 돌아오는 택시에서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를 검색하니 연관검색어에 ‘가면 증후군’이 떴다. 과할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며 심지어는 스스로를 운 좋은 사기꾼으로 여기는 심리랬다. 마음이 언어로 조목조목 표현된 사전을 보자 신기하게 편안했다. 단어로 또렷이 보이니 이 마음을 더 명확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미워한 시간이 글자로 천천히 조합되는 기분을 느끼며 횡단보도를 걷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출퇴근을 반복하며 매일 걷던 이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음을. 반대편 길로 넘어서기 위해서는 양쪽으로 오는 차의 속도를 가늠하고 보폭을 그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손을 들어야 횡단보도를 걸을 수 있다고 허락받던 나이의 나는 이 길을 혼자 걷기 힘들어했겠지. 한참을 기다려도 초록색으로 바뀌지 않는 휑한 길에서 빠르게 지나치는 차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지나가는 어른을 멈춰 세운 뒤 같이 걸어가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홀로 건널 능력이 생겼다. 심지어 이 길에 신호등이 없는지 알지 못할 만큼 익숙하게 길을 건너는 어른이 되었다. 가면 증후군을 손에 쥐고 발을 뗐다. 그 걸음이 너무 가벼워서, 가벼움, 이라는 단어로는 차마 표현이 안 되어 이만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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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요아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직업 에세이스트

내가 너무 싫은 날에 저자

우리를 살리고 사랑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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