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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 시의 폭식

by 현요아


6.

무작정 덮어놓고 숨기기에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찔려서 공공연히 밝히기로 했다. 새벽 한 시만 되면 숨어서 폭식을 한 지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자다가 일어나 속에 음식을 욱여넣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며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이유는 폭식을 했다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 폭식을 한 차례 끝낸 뒤 끝내는 법에 관해 한 편의 글을 써서 책을 낸 적 있어서였다. 배고프지 않은데 음식이 당기는 이유는 속의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서고, 결핍 어린 마음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아지지 않겠냐는 게 요지였다. 방법은 아는데 마음처럼 안 됐다. 일기장을 쓰고 내 결핍의 근원을 알아차릴 힘이 없었다. 배달앱을 켜고 음식을 주문하는 게 속을 채우기 더 간편하고 수월했다. 살이 쪘고 얼굴이 부었다. 자극적인 메뉴를 골라 먹으니 피부가 뒤집혔다. 악순환인 걸 아는데 도무지 끊을 수 없었다.


5.

이 글을 제외하고 이제껏 써둔 글만 읽으면 점점 건강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인기피증이 또 도졌다. 온라인 상으로 이야기하는 건 괜찮은데,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면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데 억지로 좋아하는 척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늘어난 약으로 인해 불안감은 많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많이 행복해졌느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복용하는 약은 심각하게 울적해지지 않도록 완화하는 효과를 가졌을 뿐 하루의 만족감을 보태어 주지는 않는다. 행복과 만족을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일은 오로지 내가 해야 한다는 걸 깨우친다.


4.

내 브런치에 들어오는 통계를 가끔 본다. 무기력을 줄이는 약을 검색하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종종 보인다. 약 한 알로 무기력이 흩어지면 더할 나위 없겠건만 결국 진정한 무기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이라는 단어가 신물 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무기력과 더불어 폭식한 나를 싫어하며 일어나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 한 모임에 가입했다. 브런치 마케터님인 김키미 님의 칭찬 일기 리추얼이었다. 그날 하루를 견디거나 건강한 습관으로 채운 뒤 몇 가지의 이유를 덧붙여 자신을 칭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모임이었는데, 마땅히 없지만 억지로 적어보았다. 채용 공고를 확인한 것도 칭찬이고 브런치에 글을 쓴 것도 드높이고 심리 상담을 다시 신청했다는 것도 잘했다고 적었다. 요아야 잘했어,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야, 라 적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그 모습이 귀엽고 생경해서 웃음이 났다.


3.

이 년 간의 공백을 뚫고 새로 사귄 연인과 데이트를 하면 내게 비어있는 무언가가 채워질 줄 알았는데 무기력을 약 한 알로 없앨 수 없는 것처럼 연인으로 채워질 리 만무했다.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온 새벽 한 시에 충만한 마음으로 김치찜을 시켜 먹었다. 이참에 폭식을 끝내기 위해 부러 거울 앞에 앉았는데 어차피 눈은 음식만을 향해 있었으니 거울을 볼 여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먹고 입을 쓱쓱 닦은 뒤 양치만 겨우 한 다음 잠에 들었다. 폭식을 하지 않으려면 잠만 자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눈을 감은 채 이대로 삼일이 흘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지만 역시나 다음날 아침 또 일어났고 또 아침을 먹었다. 음식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2.

어김없이 찾아온 어젯밤 피자와 스파게티를 비우고 잠에 들었다. 늘 그렇듯 무겁게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가뿐했다. 새벽에 먹지 않고 자정 전에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몸무게는 역대 최대 숫자를 찍었지만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입 안으로 문장을 중얼거렸다. 아직 인생은 기니 천천히 다시 하면 된다고. 망한 줄 알았는데 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하지 않았냐고. 그러니 오늘 저녁 속이 허해지면 과거의 내가 말했듯 칭얼대는 마음속 꼬마의 말에 귀 기울이자고 말이다. 늦지 않았다. 하나도 늦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만일 폭식을 하고 있다면, 끊고 싶지만 배달앱을 켜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양념이 묻은 플라스틱을 치우며 한숨을 내쉰 적 있다면, 같이 천천히 악습을 끊자고 아직 제대로 된 밤을 한 번도 보낸 적 없는 내가 오지랖을 부린다.


1.

여기 쓰일 이야기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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