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요아 Apr 15. 2022

정신병은 취업에 불리한가요


조울증을 앓기 전까지 몰랐다. 조울증은 하루에  번씩 기분이 오르내리락 거리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삽화가 당최 무슨 용어인지 몰랐고 울적한 기분이나 들뜬 기분이 짧게는 이주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지속되며 그래프를 그린다는 자체 역시 하나도 몰랐다. 양극성 장애라 불리는 조울증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앓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제때 약을  삼키면 겉으로는 사회생활을 하며  나지 않게 만들  있다는 사실도   없던 나는 조울증을 직접 앓아보고 여러 정신과 의사들의 대담을 통해 정신병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나서야 얕은 지식과 깊은 편견이  사람을 무너뜨리게 만들  있음을 배웠다.


낱낱이 모든 아픔을 밝히는 동력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숱하게 들었다. 물음을 들을 때마다 잃을 게 없어 쓸 수 있다고 답했다. 원하는 기업에 합격해놓고 입사를 취소한 이유는, 계속 볼 동료가 생기면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생겨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하리라는 확신에서 비롯한 결정이었다.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은 이유도 지키고 싶은 것이 없었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무언가를 아끼고, 그 아끼는 것이 조울증에 담긴 편견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는 순간 찾아올 절망적인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살고 싶은 집의 형태가 뚜렷해질수록, 비단 연인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내 삶을 강력하게 지배하는지를 알게 된 순간 잃을 것이 생겼고 인생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질뿐더러 그러면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인 솔직이 담긴 글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충동이 들었다.


스스로 삶을 등지고 싶다는 충동과 그 충동을 택한 동생의 이야기와 언제쯤 헤어 나올까 싶은 깊고 어둑한 우울을 다룬 글을 쓰는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 브런치 주소를 밝히는 순간 영영 취업을 할 수는 없는 걸까 하는 상상이 솟아오르자 취업에 도전하기 전부터 주눅이 들었다. 원하는 기업에서 에디터 직무를 뽑는다는 채용 공고가 걸렸는데 마감일을 앞두고도 내 브런치 주소를 밝힐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지원 자체를 포기했다. 무엇이든 해보고 후회하자는 신념을 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친구는 솔직함을 내보이는 글을 썼다고 서류를 탈락시킬 기업이라면 탈락한 게 아니라 네가 기업을 거르는 거니 조금만 더 당당을 장착하고 서류를 쓰라는 현명한 답변을 했다. 답을 들은 순간에는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금세 잊혔다. 동생을 자살로 잃었다는 사실을, 가정폭력을 당하고 생을 끊으려고 차에 뛰어들었다가 붙잡힌 사실을 적은 책으로 인해 면접관에게 버림받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영영 월급을 받지 못한 채 고독한 방에서 굶을지 모른다는 예측을 하자 역설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웃는 표정을 내세워 수업을 하는데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내 모든 면면을 알고 나면 무서워서 도망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신변 정리를 하고 도망가고 싶은 이유를 뜯어보니 그런 걱정에 파묻힌 나를 발견했다. 지금은 솔직을 팔아 돈을 벌고 있는데, 지킬 가치가 많아져 더는 솔직을 내걸 수 없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두려워졌다. 미래를 향한 불확실한 불안이 확실한 현재의 두려움으로 변화되자 낡은 노트북을 처분하고 최신 노트북으로 바꿔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한 푼 두 푼 아껴야 할 백수 시기에, 사람들이 기피하는 자살이라는 소재로 책을 준비하다 보니 안 좋은 편견을 받아 취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는 이 시기 갑자기 왜 노트북을 바꾸냐고 물으신다면 친구의 말마따나 아무도 날 뽑아주지 않는다면 내가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서다.


작년 이맘때쯤 진행한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도박 중독자 분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알려드렸다. 도박 중독자 분의 아픔은 채 알지 못하지만 다른 아픔은 알고 있다 말하며 세상을 저문 동생의 사연을 꺼냈다. 상실로 인해 느낀 생명의 소중함과 그 아픔을 글로 치유한 내 사례를 덧붙이 일순간 정적이 일었고 어느 중년 분께서 더듬더듬 손을 열며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강사님의 친동생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 섭외 요청을 한 매니저님은 젊은이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기대하고 나를 뽑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솔직함을 보이지 않으면 그분들의 아픔 어린 마음에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강의는 하루를 채우는 건강한 습관으로 더 생기 있어지자는 느낌의 강의라 이 아픔 어린 말을 꺼내도 될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트라우마를 앓는 중이고 사람들을 이끌 만큼의 주도적인 성향을 지니지 않은 극한의 내향적인 인간이라고 말이다.


우울증을 앓는다거나 자해를 한 경험은 꽁꽁 숨겨야 건강하다고 평가받는 기이한 세상에서 나는 내 패를 전부 꺼내 놓는다. 어떻게 이른 아침에 일어나 새소리를 들으며 생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해받지 못하겠으나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내 솔직한 이야기를 읽는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며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어두운 아픔을 전시했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워 올여름 책이 나오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언제나 인생을 하이라이트로만 채울 수는 없다. 나는 힘을 모아 인생의 비하인드를 적는다. 그렇다면 종종 찾아올 나의 하이라이트에도 비하인드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이 힘을 내어 손뼉을 칠 테니까. 우리는 서로의 손바닥에 온기를 더하고 진심을 담아 축하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 안에 이렇게 다정한 면모가 깃들어 있었다고 온 진심을 다해 기뻐할 것이다. 연봉을 받지 못해도 그거면 됐다. 오늘도 내일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병을 고백한다. 어떤 아픔은 정돈되고 어떤 아픔은 채 포장되지 않은 채 날 것 그대로 놓여 있겠지만 그 날 것 그대로를 좋아하는 이도 분명 존재할 테다.


작가의 이전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