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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y 07. 2022

즐겜인
인생


내일에는 살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정작 나는 내일 정도야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 믿는 사람처럼 군다. 당장 오늘 점심 메뉴로는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으로 충분한 듯한데, 앞으로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이대로 내 길을 개척해도 과연 괜찮은지 의문이 드는 순간에는 하염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이름을 숨긴 채 월 천만 원 이상을 버는, 이른바 조용한 부자는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읽은 후로 더욱 나를 알리는 과정에 매진한다. 어제는 네이버 인물에 나를 등록했다. 신간 홍보에는 인스타그램을 빼지 못하고, 인스타그램을 홍보하려면 무엇보다 계정의 접근성이 좋아야 하고, 접근성이 좋으려면 네이버에 이름을 쳤을 때 한 번에 들어가도록 만드는 것이 최상의 접근법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시와 산책을 쓴 한정원 작가처럼 큰 활동을 하지 않고도 조용하게 책만 유명해지게 만들고 싶지만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나는 결국 사진과 수상 이력과 생년월일을 적는다.


하루는 모든 사람에게 나를 알리고 싶고 이틀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는다. 한 유튜버는 이 세상이 가상현실의 가상현실의 가상현실이라 그랬다.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의 본성에 따라 현실을 닮은 가상현실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그만 현실을 잊고 끊임없이 가상현실을 만들어 낸 결과가 이 세상이라고. 댓글에는 “그럼 죽으면, 4D 안경을 벗고 ‘아, 재밌었다.’ 하겠네요?” 영상과 댓글을 차례로 본 사람들은 너무 소름이 돋는다며 좋아요를 눌렀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친구는 그러면 우리, 헤어질 때마다 즐겜이라고 인사하는 건 어떻냐며 킬킬 웃었다.


지난한 인생이 실은 게임 한 판이었다면 그것만큼 가벼워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 기쁜 마음으로 좋다고 답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 재능은 무엇이며 그 재능으로 밥벌이는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드는 날에는 즐겜을 떠올린다. 고민이 하나의 퀘스트라면 그 퀘스트 정도야 주인공은 가뿐히 깰 수 있으니까. 주인공이 깨지 못할 미지의 퀘스트는 게임에 구축되어 있지 않을 테니까, 나는 고민을 떠올린다. 이 정도야 깰 수 있는 퀘스트지. 내일 안경을 벗으며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고민을 작디작은 퀘스트로 여긴다. 보스맵에 있을 만한 너무 큰 퀘스트는 되도록 생각하지 않고, 우선 오늘 해야 할 일을 열심히나 하자는 작은 퀘스트에 주목한다. 그래, 즐거운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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