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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y 09. 2022

다정에 보답할 힘이 없을 때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젓는 쪽이 많았다. 만나자는 이야기에 바쁘다고 고개를 저었고, 너를 보러 달려가겠다는 말에 그럴 필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알음알음 알게 된 사이의 어떤 분은 내가 서울에 살 집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편하게 집을 보라는 뜻으로 괜찮다면 자신의 집에 한동안 머물라는 다정한 마음을 내보였다. 나는 그 마음에도 가차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그러니까 따뜻한 애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보답할 필요도 사라지고마니 궁극적으로 편한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인의 집에 머물면 집을 나오는 마지막 날에 감사의 의미를 담은 선물을 준비해야 할 테고, 그 선물은 집주인의 마음에 들어야 할 테고, 비단 선물뿐만 아니라 집에 머물면서는 머리카락 한 올 떨어지지 않게 깔끔해야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사로잡았다. 친구와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만나지 않으면 말실수를 했다며 자책할 필요도 없어진다.


무의 상태에 몸을 맡기는 편을 고르니 실수를 할 리도 없고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는 장점이 부각되었는데, 가만히 있는 만큼이나 쓸쓸함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사람이 아니라 천천히 돌처럼 굳어가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커피도 말하지 않고 손짓 한 번으로 주문할 수 있고 음식을 시킬 때도 전화를 걸 필요 없어서 하루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들이 늘어났다. 시간이 흘러 사람과 진실된 언어로 말하며 사랑을 주고받고 싶다는 욕구는 점점 깊어지는데 과거의 행적으로 보건대 이미 나는 많은 이들과의 만남을 훗날로 기약해서 지금 당장 연락할 사람조차 없었다. 입도 몸도 움직이지 않으니 오늘이 월요일인지 수요일 인지도 헷갈렸다.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었다. 북적거리는 사람 사이에 굳이 끼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이 몇과 연락하며 낯선 이가 내주는 다정함에 의심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 내 모습은 영 딴판이었다. 부담스러우니 아무도 사랑을 주지 말라며 돋친 가시를 닦고 있었다.


집을 비워주겠다는 집주인은 마침 여행을 떠났으므로 결국 빈 집은 다른 이의 품으로 돌아갔다. 제때 답장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집이 누군가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김과 동시에 몸과 마음을 제대로 쓸 기회를 날렸다고 한탄했다. 빈 집이 새로운 이의 온기로 채워지는 동안 나는 애꿎은 내 이불만 덥혔다. 무료했다. 안타깝게 생명의 줄이 끊겼을 때 후회가 될 것 같은 하루를 일주일 연속으로 보내고 나니 슬슬 몸을 일으킬 힘이 생겼다. 책장에서 신간 몇 권을 꺼내 그 자리에서 세네 권을 읽었다. 마음에 드는 책은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작가님을 소환해 재밌게 읽었다는 다정을 내보였다. 내 말을 호주머니에 담아 오래 기억하겠다는 작가님의 답신을 읽기 전부터 이미 다정함을 내보였다는 이유로 스스로가 기특했다. 그제야 다정을 보이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다정은 꼭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 사람이 정성스러운 답장으로 감사를 표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내 다정이 상대에게 부담스러운 쪽으로 해석되지만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없는 다정을 하나씩 내보이니 신기한 일이 생겼는데, 서서히 내게 다정이 깃든다는 거다. 없는 다정을 끌어모아 한 번 내보이니 그 다정을 두 번 보일 수 있는 힘이 충전되었다. 나는 그 힘을 조금씩 모아 운영하는 커뮤니티에서 무료로 글쓰기 수업을 열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힘을 들여 수업을 열어봤자 수강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괜히 움직였다며 수업을 연 나를 자책했을 테다. 하지만 한 명에게라도 내보이려는 진심이 닿을지 모른다는 조그만 희망에 내 시간과 열정을 걸었다. 따로 만족도 조사를 하지 않아 수업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훈훈한 분위기를 타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점심에 홀로 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에서 당근 크림 파스타와 라떼를 시켜먹으며 책 한 권을 읽었다. 이혼 전문 변호사 분의 에세이였다.


이혼 전문 변호사다 보니 책의 내용은 이혼 사유나 이혼을 결심한 마음을 토대로 진행되었다. 그중 흥미를 붙잡았던 질문은 "결혼을 언제 하면 좋을까요?"였는데, 변호사님은 "상대가 없어도  , 내가 튼튼하게 있을 "라는 답을 하셨다. 단순히 결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정과도 통용되는 말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가  다정함에 감사하다는 내색을 비치지 않아도  , 다정을 내보였다는 자체만으로 충분한 힘이 생겼을 때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정을 베푸는 때가 아닌가 싶은 쪽으로 해석되었다. 이제껏 나는   편을 쓰고도 정성스러운 댓글이 달리기를 희망했다.  희망이 커지고 커지니 댓글이 줄어들거나 반응이 없으면 글을  동력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글도 마찬가지다.  반응이 없대도   명의 마음을 울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니었나. 다정과 글에 대한 초심을 잃은 어느 인간은 이렇게 깨달음을 얻었다.  글과 마음이 상대의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자책할 필요 하나 없다. 내보였다는 자체만으로 스스로를 칭찬할 구석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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