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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y 19. 2022

내가 한 명이라는 게 외로운 날에


산란한 마음을 붙잡고 베갯잇을 꼬집다가 친구에게 연락을 청했다. 시각으로 보건대 출근을 앞두고 곤히 자고 있을 테지만 누군가를 붙잡고 묻지 않으면 주어진 밤을 편안히 보내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친구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비몽사몽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미안해진 나는 마저 자라고 했지만 친구는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냐는 물음에 실례를 무릅쓰고 이상한 질문을 했다. 너는, 사무치는 외로움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해?


외로워? 수화기 건너편으로부터 울리는 목소리에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고개가 보이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친구는 어디가 어떻게 외롭냐고 물었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내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힘을 다했다. 그러니까 오늘 외로움은…… 내가 나인 게 외롭다고 해야 하나. 결정도, 선택도 내가 해야 하잖아. 일도 내가 해야 하고 돈도 내가 벌어야 해. 말도 내가 해야 하고 글도 내가 써야 해. 그게 너무 외롭고 쓸쓸해. 너는 그렇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책에 그런 글을 썼다니까. 나의 유일무이함이 두렵고 무서워서 어느 동화처럼 손톱을 바닥에 흩뿌린대. 손톱을 먹고 도플갱어로 변하는 쥐를 찾아서.


친구는 웃으며 답했다. 그래서 네가 여러 명이면 좋겠어?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그렇다고 똑똑히 답했다. 군데군데 잠이 묻은 친구의 목소리에서 나를 신경 쓰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건 네가 기대지 않고 모든 일을 혼자 하려고 노력해서 그래. 너는 너를 제외한 사람들을 잘 믿지 않잖아. 일을 할 때에도, 고민을 해결할 때에도 이미 문제가 다 끝난 뒤에야 그런 고민이 있었다고 반추할 뿐이지. 과정을 진행할 때에는 자문이나 조언을 구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잖아.


이야기를 듣는데 귀에 열이 올랐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어른의 답이라고 여겼다. 외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책임이라는 무게를 지고 걸어가는 게 어른스러움의 징표라고 생각했다. 글도 말도 오롯이 내가 했다. 사람들의 미흡함을 기억하니 자연스레 도움을 구할 일도 사라졌다. 내가 쓴 글을 윤문하는 일은 편집자님께 위임하면 되고, 책을 잘 파는 일은 마케터에게 맡기면 되고, 유통은 유통업자에게 맡기면 되는데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아 그 과정에서 반드시 실수가 따르리라고 믿었다. 다소 힘들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은 모두 내가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니 번아웃을 동반한 외로움이 내려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걸. 실수를 할 때마다 불신이 생겨. 또 실수를 했구나. 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이 다 편하다. 이런 마음이 든단 말이야. 친구는 웃으며 답했다. 실수를 할 때마다 불신이 생기면 실은 너 자신에게 가장 큰 불신이 생겨야 해. 실수는 본인이 가장 많이 알아차리니까. 번번이 현명한 말을 읊는 친구에게 이번에는 대들 수 없었다. 내 실수는 관대하게 넘기고 타인의 실수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니 내가 아닌 상대를 믿을 수 없었고, 상대도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자원했고, 따라 지쳤고, 그래서 사무치게 외로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과 선택과 결정에 대한 고충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은 다 떠난 뒤였다.


네가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어, 누구에게든. 이렇게 용기 내어 나한테 전화를 건 것처럼. 새벽 세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더는 친구의 단잠을 방해할 수 없었다. 외롭다고 칭얼거릴 게 아니라 외로움을 스스로 만들어 낸 나를 돌이켜봐야 할 때였다. 실수를 할 때마다 불신이 생기면 실상 스스로에게 가장 큰 불신을 지녀야 해. 철학자 같은 그의 말을 곱씹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는 손톱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여럿이란 말이지. 여럿인 내가 동시에 잠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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