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요아 Jun 06. 2022

브런치에게 실망해서, 브런치를 떠날 것 같습니다.


간밤은 태어나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습니다.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고 귓가에는 누군가의 낄낄 웃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가위에 눌리게 된 원인은 명확했습니다. 다름 아닌 브런치에서 보낸 한 통의 책 홍보자료를 확인한 후부터였습니다. 교보문고 전시까지는 한 달이나 남았고 아직 홍보 매체는 완성되지 않아 정확히 어떤 것이며 어떻게 나올지는 알려드릴 수 없지만, 삼 년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독자 분들을 만나고 브런치를 통해 첫 번째 책을 출간한 후 두 번째 책의 출간을 앞둔 지금 브런치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실망하는 마음이 공존해 이 글을 올려도 괜찮을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트라우마에 불을 지핀 자료로 인해 어쩌면 사람들과 모든 인연을 끊을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결국 이 글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홍보 자료는 제 글의 요약본을 보고 브런치와 계약한 다른 작가가 쓴 글로, 첫 장면은 자극적이게도 이랬습니다. 제가 '헉헉' 소리를 내며 걸레질을 하는 모습이었지요. 아마 동생의 혈흔을 닦고 있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러고는 "스물셋, 동생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로 이어지며 제가 약통을 꺼내 약을 삼키고 동생의 이메일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장면에 초점을 맞춰 작성되었습니다. 의자에 기대어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쓰다듬는 장면과 함께 나타난 다음 문장은 "아빠가 집을 나갔다"였고, 브런치 북에 쓰인 제 문장을 바탕으로 "맞을 때마다 도피하던 숲은 다름 아닌 이 근처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새로 산 하얀 운동화로 그곳을 느리게 거닌다."로 연결되었습니다. 사촌 언니는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라며, 너무나 자극적이라는 말을 더했습니다. 저는 폭력적인 장면에만 시선을 맞춘 변주된 서론을 읽으며 아찔해졌습니다. 가정 폭력을 당한 분, 자살로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유족 분들이 이 자료를 보았다면 어떨까요. 아마 저는 동생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파는 사람처럼 보였을 겁니다.


다행히 뒷부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불행 울타리를 깨고 나오는 모습이었는데요. 그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처음 장면이 뇌리에 남아 마지막 장면이 좋다고 기뻐할  없었습니다. 저는 자료를 보자마자 당장 취소해달라고 메일을 보냈고, 담당자님은 사과와 함께 취소를 했다고 말씀 주셨지만 찝찝함은 도무지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어떻게 사별   년도 지나지 않은 저에게 걸레질을 하는 어두컴컴한 예시 사진과 어두운 방에서 컴퓨터를 하는 예시 사진과 함께  글을 보여줄  있었을까요. 스스로 생을 떠난 동생의 혈흔을 닦은 심정을 감히 이해는   있었을까요. 아니, 이해는 못하더라도 공감할 노력은   있지 않았을까요. 참고 자료로 첨부된 걸레질의 사진에서 저는 헛구역질을 했습니다. 트라우마에 불이 지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브런치에 올라갈 프로필 사진도 마음에 들지 않아 전달받은 톤 앤 매너로 따로 찍었건만 그 사진은 지금도 확정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7월 16일로 예정되어 있던 교보문고 전시에 맞춰 동화 작가님들과의 약속을 잡고 독자님들에게도 공표를 했는데, 양해의 문구 없이 사진이 확정되었냐는 물음에 전시월 디자인 일정이 불가피하게 늦춰졌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약속을 잡고 독자님들에게 말씀을 드렸던 제 얼굴이 붉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늦춰졌다고 미리 말씀 주실 수는 있지 않았을까요. 불가피한 사정이라고 하더라도 묻기 전에 말씀 주실 수는 있지 않았을까요. 함께 수상하신 아홉 분의 작가님들은 전시 일정이 늦춰졌는지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픔을 딛지 않은 채 안고 책을 쓴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자극적이게 극단적인 선택을 골라 책의 포장지로 장식하고 싶은 마음은 일절 없었습니다. 그러나 브런치는 홍보 자료를 너무나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게 작성했으며, 사진과 내용을 보는 제 트라우마를 헤아릴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한 통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독자님들이 가득 계신 브런치에 이런 글을 올리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출간이 되었다는 소식 외에 제가 브런치에 다시 글을 올릴 수 있을까요.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입니다.




이후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다 망하면 어떡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