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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n 16. 2022

위로에 적당한 언어



브런치에 대한 커다란 실망감을 토로한 뒤 다음날 사정을 속속 안 파트장님과의 통화를 기다리며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홍보 자료를 보낸 브런치 담당자님은 이미 급하게 항공편을 끊고 제주로 오신 뒤 심심한 사과의 말을 건넸던 터라 화가 한층 누그러뜨러진 채였다. 어떤 말로 서두를 시작해야 하지 고민하다가 그건 내가 고민할 영역이 아니라 다짐하고 그저 말씀을 가만히 듣기로 했다. 파트장님은 내가 올린 글의 무게에 좋아요도 누르지 못했다며,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연거푸 하셨다. 직접 뵙지 않았는데도 목소리로 진심이 느껴져서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통화는 끊기지 않았는데 수화기 건너편에서 정적만 들리자 파트장님도 따라 말을 하지 않으셨고, 어렵사리 뗀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잠자코 들어주었다.


제주로 온 매니저님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실망한 건 단순히 홍보 자료의 내용 때문이 아니에요. 잘못하면 트라우마를 안은 많은 분들의 아픔을 동시에 건드릴 수 있었어요. 게다가 제 편인 브런치마저 이토록 제 사연을 폭력적으로 대한다면 제게 관심이 없는 제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주 상처를 받을까 싶은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었고요." 매니저님은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이셨고 나도 따라 입을 다물었다. 고요할 줄 알고 열심히 찾았던 찻집은 평일 낮임에도 시끌벅적거렸고 차라리 조용한 분위기보다야 아예 북적거리는 게 낫다는 마음이 들었다. 매니저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작가님의 마음이 괜찮으신지가 걱정이 되었고요. 더 이상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우려되었습니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노라니 브런치에 대한 화가 다 풀렸을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지만,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으나 아직 인스타그램을 확인하지 못하신 독자님들이 나를 걱정할까 올린다.


그간 글을 쓴 게 헛되지 않았는지, 많은 독자님들과 작가님들께서 댓글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셨다. 바로 답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으니 언제고 읽을 수 있게끔 메시지를 남긴다는 분의 따뜻한 말에 슬펐던 마음이 차차 회복되었다. 신간의 편집을 맡은 허밍버드 편집자님도 글을 읽고 먼저 연락을 드릴까 하다가 나에게 회복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메일을 보내셨기에 많이 괜찮아졌다. 그제야 연락을 바라던 대상에게서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아 실망하던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글을 읽고 바로 괜찮냐며 함께 분개해주리라 확신한 친구에게서 어떤 말도 오지 않아 차마 내색할 수 없지만 커다란 서운함을 안고 잠에 들었다. 그러나 편집자님이 말씀하신, 회복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에서 친구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친구는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괜찮아지기를 멀리서 바라며 나를 응원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기억할 만한 행복한 날만 매일 이어지면 참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갑작스럽게 몸과 마음의 병을 진단받기도 하고 소중한 지인을 잃거나 생계에 위협이 갈 만큼 수입이 뚝 끊기기도 한다. 그때마다 진심이 담긴 위로의 언어를 들으면 좋겠지만 당사자는 완벽한 내가 아니므로 완전히 내게 다가올 위로의 언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응원과 사랑을 건네도 상대가 그 언어를 받을 마음의 여유가 확보되어 있지 않다면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튕겨나간다. 그 마음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위로의 언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 답장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제야 댓글에 꼬박꼬박 답장하던 나도 마음의 여유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무리 사랑이 듬뿍 담긴 글이어도 읽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감사를 표하는 게 모두 감정이 드는 일이었다.


슬슬 애정하는 독자님들에게 답장할 힘이 차오르고 있다. 80 언저리에서 머물던 구독자는 어느새 2,000분을 넘겼다.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릴지는 아직도 의문스럽지만, 브런치는  신간 홍보에 열과 성을 다할 테니 잘못한 행동만 꼬집고 나머지 행동까지 깡그리 끌어내지 않으려 한다. 전시 일정은 늦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7 16일부터 8 19일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진행한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하며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독자님들에게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할 날을 공지할 예정이다. 내가  말은 책으로  했으니 독자님들의 말씀을 가만히 들으며 독자님에게 닿을 내가 내보일  있는 가장 따뜻하고 귀한 언어를 고르고 고르려면 지금은 회복에만 전념하며 퇴고를 해야겠다. 신간의 제목은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문득 서점을 지나치다 책을 만나거든 부디 반가운 마음으로 기꺼이 손을 뻗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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