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요아 Jan 07. 2023

외롭다 외롭다 말하면


직장인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을 전할 때마다 사람들은 프리랜서가 좋은지 직장인이 좋은지를 궁금해했다. 어떤 이는 내게 작가로 자리를 잘 잡았는데 돌연 직장에 꼬박꼬박 시간을 투자하면 후회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겉으로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서요, 아무래도 저 혼자 일하다 보니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지 못해서요, 라고 에둘렀지만 진짜 마음은 달랐다.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낮을 보내는 게 외로웠다.


새벽 일찍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방을 들고 부리나케 목적지를 정해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알람을 맞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지만 일 년이 지나니 어느 한쪽이 간지러웠다. 정오 가까운 시각에 눈을 뜨면 창문 밖으로는 아무도 사지 않는 잡화점 트럭이 지나갔고 때때로 오토바이 달리는 소리만 들렸다. 인기척이라곤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낮들이 모였다. 해가 지면 개찰구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인기 있는 식당에 들러 소주잔을 기울였다. 나는 일에서 분한 일이 생겼을 때 홀로 술을 마셨다. 친구를 잡아 어떻게 이야기해도 동료가 아니니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분한 일을 겪었을 때 같이 어이없어하는 동료가 필요했다.


입사만 하면 외로움이 전부 해결되겠지, 하고 사원증을 잡았지만 아니었다. 이름과 직함을 외우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식탁을 지나갔고 내가 없을 당시 진행되던 일을 능숙하게 이해하는 데 노력을 들이니 동료와 사담을 나눌 기회 없이 저녁이 찾아왔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저녁을 해치운 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기에는 진이 빠졌고 친구 몇과 갈등을 빚으니 애초에 만나지 않는 쪽이 낫다는 판단이 들어 먼저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 외로웠다. 외롭다 외롭다, 중얼거리자 가실 줄 알았던 외로움이 걷잡을 새 없이 커졌다. 외롭다 외롭다, 하면 내 처지가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았고 외롭다 외롭다, 하면 아무도 내 외로움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새해가 밝았는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지 않아 쓸쓸하던 때에, 같이 점심 식사를 하자고 묻는 동료가 없어 홀로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내던 때에,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에 싸라기눈이 내리는 새벽녘에, 나는 종종 외로웠고 자주 쓸쓸했다. 이 외로움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하고 이전 동료에게 묻자 그는 내게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말을 꺼냈다. 외롭다는 글을 쓸 수 있어서, 외롭다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외롭다고 어딘가에 글을 올리고 그 외로움을 어느 누군가가 읽고 알아줄 수 있어서 얼마나 좋냐는 뜻이었는데 나는 이 사람이 당최 내 고민을 이해해서 하는 말인가 의뭉스러웠다. 그래서 꺼낸 답이 이랬다. 지금 상태는 외롭다는 얘기만 한창 떠들어놓고 끝이라고요, 결론이 없단 말예요.


결론 없는 에세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어느 정도의 결론이 맺어진 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 편이라 한참을 고민했다. 외롭다는 글은 쓰고 싶은데 글의 바다를 유영하다 내 편으로 배를 돌린 사람에게 칭얼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의 끝은 돌고 돌아 자기 계발이었다. 몇 권의 어학 서적을 샀고 에디터 스쿨 강의와 온라인 요가 리추얼을 끊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애인의 회사를 조사해 나는 이직하지 않더라도 그는 이직하게끔 도왔다. 바쁘면 바쁠수록 외로움은 잦아드는 듯했다. 찾아올 기미 없이 바쁜 나를 통과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바쁜 찰나가 끝나면 다시 또 내 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척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결론이 없더래도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에디터를 직업으로 삼았으니 잠잠하던 글쓰기 모임에 슬슬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자기 계발적인 충동이 들어 모임 채팅방에 뜬금없이 메시지를 전송했다. 다들 잘 지내시……로 시작하는 메시지는 그래서 제가 글을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로 이어졌고 그러니 글쓰기 모임에 자주 얼굴을 비추겠습니다……로 마무리되었다. 아직 친해지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둘 박수를 치는 이모티콘을 보냈고 신년을 맞아 글쓰기 모임을 재개하자며 날짜를 잡았다. 얼결에 미래에 친해질 가능성이 상당한 사람들과 만날 날짜가 달력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외로움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었다. 짙게 깔린 외로움이 조금 걷힌 기분은 오랜만이어서 나는 당황스러워 눈을 깜빡거렸다. 단순히 낯선 사람들을 만나 글을 쓰는 기회가 생겨서 외로움이 가신 건 아니었다. 답은 미래에 있었다.


며칠 차이로 작년이 돼버린 해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잃었다. 나의 이기적인 면모 때문이기도 했고, 상대의 이기적인 면모로 인해 빚어진 일이기도 했다.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하나둘 내게 서운함을 표현했고 맞는 약을 찾지 못해 온갖 부작용에 시달리는 나는 그 서운함을 풀어줄 여유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십 년 지기와도 멀어지니 사람들은 결국 나를 떠나가는데 왜 우리는 굳이 만나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하는 물음이 들어 외로움을 자처했다. 나와 맞는 사람도 과거에만 맞았지 수많은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해 조금씩 겹겹이 비틀린 현재의 우리가 지금도 맞을지는 미지수였으므로 사람들을 멀리했다. 본격적으로 외롭다는 말을 많이 한 시점은 그때였다.


우리는 맞고 맞지 않다가 미래에는 또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는다. 그 말은 어떤 이를 잃었을 때 오래 슬퍼할 게 아니라 추후 더 나와 맞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한 뼘 크게 왔다는 말과도 비슷하다. 나와 맞지 않는 듯해 멀리 한 사람이 실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무시하고 나는 내 경계선 안에 들어온 사람들만 챙겼다. 그 사람들이 멀어지면, 그리고 일에서 받은 분노를 완벽하게 동기화해 화를 내주지 않는 사람에게 섭섭했다. 완전하게 내가 되지 않는 이상 같이 일하는 동료도 조금씩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는 공생활과 사생활에서 완벽하게 내가 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니 직장에만 들어가면 해결될 줄 알았다. 비슷한 커리어와 목표와 연봉과 업무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학교를 벗어난 나와 어느 정도 맞지 않을까 싶어서.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잠식될 만큼 늘어나지도 않았다. 미래를 마음껏 안은 덕분이다. 훗날 만날 이웃집 사람을, 직장 동료를, 카페에서 만날 사장님을, 학원에서 만날 친구를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