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닮은 매생이 굴국밥
학원에 가기 싫어 온갖 거짓말을 하던 때가 있었다. 엄마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가장 많이 통한 거짓말은 당연히 아프다는 얘기였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된통 아프다는 말만 반복해서였는지 하루는 진짜 감기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더랬다.
정말 아프면 눈물도 찔끔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머리가 깨지던 날,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엄마가 비틀거리는 나를 보고선 웬 음식점에 데려갔다. 간판이 없는 건 물론이고, 어두컴컴한 조명에 곳곳마다 벽이 세워진 자리. 처음에는 중학생을 데리고 맥주라도 마시라는 건가 싶었는데, 곧 식탁에 놓인 음식은 다름 아닌 매생이 굴국밥이었다.
미역도 톳도 파래도 아닌 것이 불닭이나 페퍼로니 피자처럼 먹음직스러운 빨간 색도 아닌 것이 뚝배기에 담겨 있었다. 흡사 초록색 머리카락을 뭉쳐 놓은 듯한 모습에, 숟가락으로 뒤적거리면 나오는 뜨거운 굴이라니. 나는 절대로, 절대로 먹지 않겠다며 뚝배기를 엄마 쪽으로 밀었다. 물론 엄마는 다시 그 뚝배기를 내 쪽으로 밀었고.
"한 입만 맛봐봐."
"싫어."
"만 원."
"어?"
"딱 한 입만 먹으면 만 원 줄게."
엄마는 당시 매생이 굴국밥보다 비싼 만 원을 걸고 나를 유혹했다.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게 고민하는 듯했으나 실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숟가락을 들어 최대한 매생이가 없는 가장자리를 긁어냈다. 엄마는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엄마 몫의 매생이를 건져 내 숟가락에 사뿐히 올려주었고, 나는 울상이 된 채 한 입을 맛보는 수밖에 없었다.
열이 38도까지 다다랐던 열다섯의 여름날, 매생이 굴국밥의 맛을 처음 알아버린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비주얼에 놀라 아직 매생이를 맛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러니까 매생이는 따뜻하고 말캉말캉하니 부드럽고 간이 딱 맞아 짭조름하다. 뚝배기로 데워진 굴은 호호 식혀 입 안에 쏙 넣으면 커다란 조개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후 십여 년 동안 나는 아플 때마다, 입맛이 없을 때마다, 슬플 때마다,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인중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매생이 굴국밥을 찾는다. 굴국밥까지는 어떻게 찾을 수 있어도 매생이와 굴이 같이 들어간 음식을 파는 곳은 드문데, 그러면 유명한 죽 체인점에 가서 매생이 굴죽으로 굴국밥을 향한 열망을 대신한다.
연인과 헤어진 후 헛헛한 속을 달래주었던 음식도, 벽을 넘나드는 외풍으로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 보약처럼 나를 낫게 해주었던 음식도 모두 매생이 굴국밥이다. 새해가 기대되지 않을 때도, 연말인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 상심에 빠질 때도 굶기보다 시장에서 매생이와 굴을 사 와 국밥을 만들어 먹었다.
2022년, 지난겨울은 아픈 소식이 참 많았다. 마음을 달랠 길을 찾는 이들에게, 연초가 기대되지 않는 이들에게, 새해에 하고 싶은 일이 없는 헛헛한 이들에게 속 끝까지 데워지는 이 음식을 권하고 싶다. 초록색 머리카... 아니, 매생이 굴국밥.
배달의 민족이 발행하는 뉴스 레터, '주간 배짱이'에 푸드 에세이가 실렸어요. 오랜만에 귀여운 글을 쓰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눈이 와요. 오늘 저녁은 뜨끈한 매생이 굴국밥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