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다리를 다릿발이라 부른다는 걸, 앉는 부분을 좌방석이라 이야기하는 걸 모르는 내가 인테리어 에디터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라이프스타일 에디터인데, 집이라고 해봤자 독립한 후로부터는 33m2(10평) 이상에서 살아본 적 없는 내가 가구의 쓸모를 발견하고 꽃병의 미세한 위치를 잡으며 조금 더 예쁜 집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에디터로 취재를 가면 온갖 집에 방문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집은 출장을 가서 만난 집이었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만들어진 널따란 아일랜드 부엌과 집주인 취향이 반영된 중정을 보며 나는 곰팡이가 슬고 때때로 침수가 되던 내 집들을 떠올렸다. 어엿하게 전입신고가 된 집임에도, 내 이름으로 다달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고지서가 나오는 공간임에도 전혀 내 집으로 느껴지지 않던 나날이었다.
밖에 너무 오래 있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는 누구나 공감할지 몰라도, 집에 있으면서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사람은 그만큼이나 없을 것 같다. 다만 딱 한 번이라도 집에 있을 때마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사람에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으면 조금 주저하다 이내 입을 뗄지 모른다. 집이 너무 지저분해서요. 물건은 많은데 집은 좁아서요. 천장에 비가 새고 온갖 문을 통해 물이 들어와서요. 창밖에서 모르는 사람이 두리번거려서요. 통장 잔고가 부족해 언제까지 이 집에 살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이 들어서요.
나는 그 모든 일을 경험해 봤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일곱 번 이사를 다녔다. 그러면 지금은, 일곱 번이나 집을 옮겨 마주친 이 집은 아늑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느냐 하는 궁금증이 들 텐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다. 여전히 나는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데, 확실한 건 그런 느낌이 드는 빈도가 줄었다는 거다. 내가 머무는 공간은 늘 집이라기보다는 방에 가까운 편이고, 이제는 그 사실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품고 싶은 게 생겼다면 하나씩 천천히
고시원과 옥탑방과 전셋집과 월셋집과 코리빙하우스(Co-living house)에 몸을 담가봤다. 저마다 장점이 있지만, 나는 그 장점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 집에 티끌만 한 장점이 있든 말든 결국 나는 이 집을 떠나야 하는 신세이므로. 어느 책에서는 월셋집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행위를 ‘일회용품을 깨끗하게 씻는 것 같다’며 집을 일회용품에 빗대었는데, 그런 비유에 완벽하게 압도되는 쪽이 나였다. 집은 내게 쭉 일회용품이었다. 진드기가 번식하기 어렵다는, 몸을 감싸는 침구는 턱턱 사면서 정작 손에 잡힐 만한 조그만 청소기는 여태껏 사지 않은 이유는 그런 거였다. 열심히 청소해도 결국은 내 집이 아니니까.
고시원을 나와 처음으로 마련한 옥탑방에서 나는 벽 군데군데 가고 싶은 나라의 그림엽서를 잔뜩 붙여뒀다. 이사할 때가 되자 모두 떼야 했다. 한번 벽에 붙은 마스킹테이프는 두 번 다시 쓸 수 없었고, 떼어낸 엽서는 어느 구석이 찢어지고 헤졌다. 그때부터 집을 꾸미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장식하고 꾸며도 내 집이 아닌 이상 결국 붙잡지 못할 신기루를 손으로 쥐어내는 꼴인 것만 같았다.
염세에 가까운 마음이 서서히 흩어진 건 코로나19라는 감염병으로 거리두기가 시작됐을 때부터다. 집은 단순히 자고 일어나는 곳에서 나아가 일을 하고 취미를 가꾸는 공간으로 변화됐다. 나는 큰마음을 먹고 서울을 벗어났다. 제주도에서 낡았지만 커다란 구축 월셋집을 마련했다. 그러고는 상상으로만 간직하던 가구를 주문했다. 커다란 모니터를 두고도 여백이 생기는 커다랗고 판판한 책상과 오래 앉아도 끄떡없는 탄탄한 의자를. 파란색 러그 위에서는 새로 산 게임기를 쓰거나 전자 피아노를 쳤다. 사람들에게 데어 손상된 마음이 천천히 회복됐다. 차차 이곳이 내 집이라는 확신이 들자 마음속 어느 멈춘 부분이 자연스레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집은 글을 쓸 수 있는 기다란 책상과 튼튼한 의자를 샀으니 다음 집에는 소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만일 소파가 질린다면 그다음에는 두 명이 누워도 널찍한 높은 침대를 사고 싶다고. 집을 옮길 때마다 지금은 가지지 못한 분위기의 집이 생겼다. 창문을 열었을 때 하늘은커녕 앞집 사람이 뭘 하는지 보인다면 다음에는 벽 하나를 가득 채운 넓은 창으로 풍경을 보고 싶다고, 층고가 낮아 머리가 닿을 것 같은 집에 살았으니 다음 집은 계단이 있어 층고가 높은 복층에 살고 싶다고. 나는 하나씩 내가 원하는 집의 모양을 그려보았다.
나중에는 숲으로 가득 채워진 벽난로 있는 통나무집에 살아야겠다는, 훗날 내가 지을 집을 더하면서.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는대도 나는 내 취향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었다. 나는 침대보다 소파를 더 좋아하는구나, TV보다 책상을 더 좋아하는구나 같은 것들.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해 주는 걸 좋아한다는 다소 새로운 사실도 깨달았다.
근로소득만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집을 꿈꾼다. 물론 그 미래를 마주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지금 내가 있는 집을 꾸민다. 아침과 저녁에 태우는 인센스 스틱의 향은 미묘하게 다르고, 형광등을 켜기보다 노랗고 은은한 간접조명을 켜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번거롭더라도 구석구석에 수동 조명을 둔다. 매일 요리는 하지 못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나를 위한 요리를 성대하게 차린다. 친구가 오면 얼른 시장에 가 장을 봐서 제철 음식을 만들어낸다.
설령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출근 전에는 이불을 꼭 개고, 실내에서 말려도 꿉꿉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섬유유연제로 수건의 보송함을 유지한다. 몇 년이나 구매를 미루던 청소기도 드디어 샀다. 이틀마다 청소기를 돌려 깨끗함을 유지한다. 주말마다 냉장고를 치우는 건 물론이다. 집이 깨끗하니 마음도 환해졌다. 무언가 두고 온 것 같은 찝찝한 느낌도 사라졌고, 물건을 찾지 못해 지각하는 일도 없어졌다. 중고 거래 앱을 활용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빠르게 정리한다. 이제 나는 집에 산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비록 다음 달에 여덟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지만, 아직은 우리 집이라고.
내 구역 아닌 것 같은 초조함 해소법
초조함과 불안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정이다. 학교에 갔는데 나를 빼놓고 친구들끼리 웃는 소리에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을 때, 회사에 다니는데 나를 빼고 모두가 바빠 내 자리가 아닌 것만 같을 때처럼. 내 구역이 아닌 것 같은 초조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하나 두는 것이다. 그러면 조금 나아졌다. 책상을 꾸미는 데스크테리어, 식물을 꾸미는 플랜테리어처럼 나는 핸드크림과 일력을 집과 회사에 뒀다. 잠시 머무는 공간이 내 공간이라는 인지가 생길 수 있도록 코에 맞는 향과 날을 반기는 일력을 두면 요동치던 초조함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친한 작가님께서 일력을 추천하며 하신 말씀, “한 장씩 한 장씩 뜯을 때마다 나를 기쁘게 해줄 날들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가 떠올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일력을 샀다. 요즘 일력에는 하루를 싱그럽게 만드는 문장이 쓰여 있어서 그 문장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일력을 뜯을 때마다 오늘은 나를 어떻게 기쁘게 해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분명 집인데도 집이 아닌 것 같아 굳이 카페를 돌아다니며 쓰린 속을 붙잡고 커피를 석 잔, 넉 잔 마실 때마다 나는 그 돈으로 우리 집을 우리 집답게 만들 방안을 고민한다. 꼭 돈을 쓰지 않더라도 어떤 노래를 틀면 집에서 쉬는 느낌을 더욱 증폭할 수 있게끔 만들까 궁리하기도 한다. 지금 막 일력을 뜯은 뒤 블루투스 스피커로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부드러운 체크 잠옷을 입고 직접 내린 커피를 홀짝인다. 오늘도 나는 우리 집에 산다.
신동아 2023년 4월호, 현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