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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Sep 25. 2024

이렇게 사는 게 맞나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와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다. 일을 그만두면 하고 싶고, 막상 일을 시작하면 그만두고 싶어서 어떤 마음이 진짜 내 마음인지 알 길이 없다. 주변 사람들은 한 직장에서 삼 년이고, 오 년이고 쭉 다니지만 나는 이제까지 일 년을 버텨본 적이 없다. 애초에 회사를 다닌다는 표현이 아닌, 버틴다는 표현이 떠오르는 걸 보니 내가 머물고 싶은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희미하게 잡히는 것 같다.


늦장을 부리다 보니 추석에 본가로 가는 표를 끊지 못해서 연휴 내내 서울의 작은 방에만 종일 지냈다. 등이 배길 만큼 누워 있으니 무언가를 먹고 싶은 욕구도 생기지 않고, 누군가에게 일상을 공유하고 싶지도 않아서 지겨우리만큼 잠만 잤다. 저녁인지 새벽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시각에 전화가 왔다. 함께 공부하는 작가님에게서 온 안부 전화였다. 요즘 어떠냐고, 어떤 기분을 가지고 있느냐고, 잘 지내고 있냐고 묻는 평범한 물음에 잘 지내고 있다는 쉬운 답을 내밀지 못했다. 홀로 곱씹던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건 벌을 받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삶이 지긋지긋해서 급기야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말까지 뒤따라왔다.


특별한 조언을 바라고 터놓은 건 아니었지만, 작가님은 꽤나 당황한 것 같았다. 작가님은 가만히 내 말을 듣더니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내가 지닌 이 생각이 이상한 생각은 아니라는 것 같아 외로움이 조금은 덜해졌다.


재작년, 본가인 제주에서 짐을 싸고 편도로 서울에 향할 때까지만 해도 최대한 서울에서 오래 익명의 삶을 누리겠다고 다짐했다. 다시는 제주로 돌아가기 어렵겠다는 글을 제주도가 운영하는 잡지에 보낼 만큼 생각은 확신으로 차올랐다. 그런데 요즘 다시 서울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정체를 잡기 어려운 감정이 새벽마다 찾아온다. 아침에는 오늘도 도시에서 직장인으로 잘 일해보자고 다짐했다가 밤만 되면 일의 굴레를 벗고 유유히 도시를 떠나는 날을 꿈꾼다.


살면서 서울을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더라면 차라리 결정을 내리는 일도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텐데, 몇 번이나 서울을 완전히 떠난 적이 있어서 오히려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대도시를 떠났기 때문에 드는 새로운 불안이나 스트레스, 헛헛함을 알아서 요즘은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묻는다. 어디로 가고 싶냐고, 어디서 살면 마음이 편하겠냐고, 어떤 일을 하면 땅에 발을 단단히 붙일 수 있겠냐고. 저마다의 인생에는 뚜렷한 답이 없으니 그 답을 쫓기 위해 분투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지만, 한편으로는 객관식으로 고를 수 있는 수학 문제처럼 하루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느 길이라고 일러주는 존재가 있으면 얼마나 혼란스럽지 않을까 상상한다.


나는 그저 내가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무엇으로부터 급박하게 쫓기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인가 싶어 막막해진다. 서른이 되면 적어도 내가 살고 싶은 지역 정도야 쉽게 말할 줄 알았는데, 어느 곳으로 떠나도 새로운 파도를 만나 흔들린다. 그렇다면 파도의 존재를 인정하는 수밖에. 도망은 언제든 칠 수 있으니까, 도망을 가고 싶은 이유부터 샅샅이 파헤치는 것으로. 오늘은 그것만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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