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연애에 지친 나는 걔에게 독립을 종용했고 걔는 받아들였으며 곧 걔는 전세 사기의 피해자가 됐다. 이 한 마디가 지난 일 년의 나를 얼마나 옭아맸는지 모르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걔가 다니는 회사는 망했다. 심지어 그 회사는 이전에 내가 다녔던 회사로 일이 별로 없으니 면접을 추천한 곳이었다. 내가 없으면 걔는 일 억도 안 잃고 천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밀리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니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마치 파괴왕이 된 기분이었다. 집 구하라고 떼쓰지 말고, 제주에서 항공권 끊어 올라온 다음 같이 집이라도 볼걸. 보증보험 가입할 수 있는 집인지 확인할걸. 걔가 사는 빌라의 가해자는 어마어마한 사람이었고 그 사건은 동작구에서 꽤 커다란 사건으로 번졌다. 걔는 마스크를 끼고 시위에 나갔다. 종종 법원도 나갔다. 법원에 나가면 옆에 앉은 사람들이 훌쩍인다고 했다. 아무리 담담한 사람이어도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심장이 빠르게 뛸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이직할 때마다 연봉을 이십 퍼센트씩 올리면 아주 커다랗다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날을 보냈다. 애초에 안 잃고 안 쓰는 게 훨씬 돈을 빠르게 버는 지름길이다. 뺏기지 않으면 많이 벌 필요도 없다. 많이 벌어도 뺏기면 다 날아간다. 걔는 일 년 동안 씨름한 덕분에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걔를 포함한 75명의 피해자와 66억의 보증금은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 나쁜 사람이 파산 신청을 했으니까. 그래서 이웃이, 친구가, 지인이 몇 년 뒤면 보증금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지만 그 몇 년을 기다리는 일이 괴롭다고 말할 때 마음이 딱딱해졌다. 걔는 어쩌면 한 푼도 못 가져갈 수 있다. 피해자가 되었으니 회생을 신청하면 갚아야 할 시간이 꽤 감면된다고 웃는 걔 얼굴을 보니 배낭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땅끝마을로 달려가고 싶었다. 내가 가리키고 추천하면 모두 망하나 싶어서 저주받은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아니라고 했지만 아닌 게 아닌 것 같았다.
오늘까지도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걔는 안 운다. 여전히 맛있는 짜장면도 후룩후룩 먹는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짜고 친 사람들이 나쁜 놈이니까 자기는 잘 지내려 한다. 잘 지내려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내가 볼 때는 잘 지낸다. 그래서 나는 불을 끄고 이불에 내내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걔랑 같이 맛있는 짜장면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뭐든 둘이 먹어야 더 맛있다.
판결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고 걔는 어느 정도의 빚을 얼마나 갚아야 할지 모른다. 전세대출로 끌어안은 돈이기에 어쩔 수 없이 회생을 염두하고 있지만 그냥 그것도 그렇구나 생각한다. 걔랑 같이 지내는 그 빌라의 사람들은 시위를 벌이고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간다. 그 집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 나는 걔를 내 자취방에 살게 했다. 걔가 사는 빌라의 복도는 아주 조용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사는데 인기척이 나지 않는 복도를 굳이 걔에게 걷고 싶게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복도를 어쩔 수 없이 걷고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걸 안다. 그래서 가끔은 죄책감이 들었다. 죄를 짓지 않았는데 느끼는 죄책감은 언제 느끼든 참 별로다.
내가 생각과 불안에 휩싸여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라면 걔는 참 나무 같은 사람. 제주에서 오름을 걷다가 돌을 뿌리 삼아 솟은 나무를 본 적이 있었다. 걔랑 내가 꼭 그 나무와 돌 같았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돌에 뿌리를 감고 줄기를 뻗는 사람. 다행히 천만 원의 퇴직금은 나라 덕분에 느지막하게라도 받았고 걔는 다시 새로운 회사에 가기 시작했다. 후드티에 백팩 메던 애가 셔츠에 재킷을 걸치고 검은색 서류 가방을 든 채 집을 나선다. 겉만 보면 회색 도시의 일원이 된 평범한 직장인 같은데 걔는 날 만나면 또 애교를 부린다. 현관 밖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우리는 돈과 시간을 잃었지만 나무랑 돌은 여전히 거뜬하게 잘 자란다. 낭은 돌 의지, 돌은 낭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