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이 얼마나 크든, 사람이 얼마나 많든, 돈을 얼마나 벌든 내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초월이라기 보다 궤적으로 여겨졌다고 하면 조금 더 맞다. 이미 나는 득달같이 명예를 좇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바랐고, 그에 맞게 어깨에 뽕을 넣은 재킷을 옷장에 두둑이 걸어놨다. 땀이 나도 재킷은 벗지 못했다. 재킷 안에는 대충 걸 터 입은 흰 티가 있으니까. 여름인데도 가을 옷을 자랑하고 싶어 아득바득 코트를 걸치고 떠들어 첫 수업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가물가물하다. 내게 연봉이나 사원증은 코트 같은 것. 자랑하면 으쓱이야 대겠지만 집에 와서까지 코트를 걸치고 잘 수는 없다.
돈이야 없으면 불편하니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겠다만 그렇다고 풍족해도 행복하지 않을뿐더러, 자산에 끝이란 것도 없었다. 더 쾌적한 집, 좌방석이 움직이는 운전석, 두 시간 남짓 배를 부풀려야 하는 호텔 뷔페와 리치 빙수. 그 가치는 과연 무시와 모멸과 괴리감을 느끼면서까지 치환해야 하는 존재인지 거듭 골몰하다 보면 언제나 명명백백한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아파트도 관심 없고 코인도 관심 없어. 전 애인이 코인으로 몇십억을 벌고 미국에 회사를 차려 뉴스에 나와도 딱히 미련이 없었다. 걔는 걔고 나는 나다. 걔 세상과 내 세상은 완전히 달랐다. 헤어질 즈음에 전 애인이 흘렸던 말이 떠올랐다. 너랑 만나면 욕심이 없어져. 재물을 품고 싶은 사람과 재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의 결말은 예상대로다.
스타트업 초기 멤버로 합류하던 때와 역사를 썼다는 대기업 부사장의 스카웃을 받는 때가 겨우 오 년 차이라면, 캐리어 하나 끌고 국제 고시원에서 지내던 스물의 내가 듣는다면 감격할 일이지만 그 감격은 한 달 채 못 갔다. 성과에 대한 압박과 자리를 꿰차기 위해 억지로 웃는 삶이 훗날 확실한 뭔가를 보장해 준다면 고려야 했겠지만 나는 그보다 원초적인 가치에 눈이 갔다. 재미, 웃음, 기쁨, 보람 그런 것들. 자기주도학습이 휘몰아치던 시대에 공부를 해서인지 나는 그 기쁨이 더 오래갔다. 그러니 퇴사를 잘 했다고 느낀 순간은 퇴사 일부터 있었다. 워낙 바쁜 일정 때문인지, 한 달 만에 나가는 동료에게 정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퇴사일 날조차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시키는 사람들. 슬금슬금 차가워지는 바람을 맞으며 쥔 아아가 그렇게 냉담한지 처음 알았다. 혼자 있을 때는 꼭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홀짝이고 싶다는 소망만 강해지고.
문과는 영업을 해야지, 처음부터 마케팅을 꿈꿔서는 안된다는 선생의 말이 무색하게 나는 열 군데의 회사에서 마케팅이란 걸 했고 허상 없는 것 같은 브랜딩을 좇았다. 뭐가 더 멋스럽게 보이는지, 알맹이보다 포장지에 시간을 들이던 날을 보내고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나아가려지만 현실은 현실인지 무급을 받는 기간이 너무 길었다. 무급인데 받는다고 표현해도 옳은지 모르겠지만 이 년 정도는 수입이 없다는 뜻이라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모니터 밖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올해가 끝나갈 무렵이라 적당한 일자리가 없어서 콜센터에 들어갔다. 목이 다 쉴 줄 알았는데 타자가 빨라 게시판 팀에 들어갔고, 화장실 이석도 고해야 하는 낯선 문화에서 정시 퇴근을 했다. 일 분이라도 일하면 일 분만큼의 시급, 아니 초급이 나오는 곳이라 여기가 평생직장인가 싶었지만 봇을 써도 거짓이라 들을 만한 악성 민원을 보며 인류애가 사라질까 계약 기간까지만 일했다.
잠에 들 때나 잠에서 깰 때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서던 나와 뜨거운 조명 아래서 연설을 하던 나, 부사장이 건넨 펜으로 내 책에 사인을 하던 나와 연신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타자를 치는 내가 동일 인물인가 싶지만 에고를 버리면 다 상관 없는 일이다. 나는 나비여도 되고 나비가 나여도 되고. 제법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