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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S Apr 23. 2016

빈곤 포르노

남미에 있을 때 이런 모습을 자주 보았다. 때는 주로 따뜻한 봄이 오는 계절. 웅크렸던 겨울을 갓 지나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따스할 수 있도록 고도의 펀드레이징 전략을 사용하여 철저히 계산된 멘트와 사진으로 뜨거운 눈물 한 방울 짜낼 시기. 바알간 플람보얀 꽃이 피면 후원자에게 감사카드를 써야 할 시즌이었다.


후원받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편지를 쓰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다니거나, 자기의 대학까지 책임져달라는 요구를 당당하게 감사카드에 적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감사카드 내용 중 하나.



안녕? 나는 인디엘이야. 너는 돈이 많으니 나 좀 한국에 초대해줘



담당자들은 뒷목을 잡고 쓰러질 판이었다. 내용을 조금만 바꿔보라도 사정을 해도 도통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그들이 자신을 왜 후원해주는지도 몰랐고, 그러니 감사함도 몰랐다. 당연하지. 나도 왜 너희들을 후원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한국기준으로 어려운 가정이라고 보이면 담당자들이 불쌍해보이는 사진을 연출하고, 과장하고 부풀린 사연을 창작해 모금하곤 했다.


특히 대표적인 사기 중 하나. 아이티의 진흙쿠키. 사람들은 배고파서, 먹을 것이 없어 이걸 먹는다고 홍보를 한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서도 우리는 일단 진흙쿠키는 버터로 반죽해 굽는다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비천한 진흙과, 우아한 버터의 만남. 한국에서 온 NGO 단체들은 진흙쿠키 파는 장면을 열심히도 찍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들을 불쌍한 듯이 열심히 포장했다. 또한 일종의 '갑'인 그들을 바라보며 불쌍한 표정을 짓는 '을' 또한 공모자였다. 그 진흙쿠키는 아주 곱고 미세한 흙으로 만드는 것이다. 주로 임산부가 먹는다. 아이티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사람이고, 지능이 있다. 그렇다면 왜 그걸 먹을까?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알겠지만-아이티의 흙에는 철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벽돌색의 고운 입자 쿠키. 그건 번데기와 메뚜기를 먹는, 비린내 나는 김을 먹는 우리네 이유와 다르지 않다. 그들의 식문화와 생활이기 때문이다. 황량한 땅에서 어디서 철분을 구한단 말인가? 그래서 대대로 그들은 흙을 먹었다. 아무 흙이 아니라 작열하는 태양의 열에 기생충알과 세균이 소독된 쿠키를.


해외구호를 하는 대형 NGO는 이런 상황을 잘 알거라 본다. 지금이라도 빈곤 포르노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성적으로 모금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감정에 호소하는 기술대신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1900년대 신파극이 이제는 유치해 보이는 것처럼, 여기에 식상해져 정작 필요한 곳에 도움이 가지 못할까 걱정된다. 우선적으로 지원되어야 할 곳에 적절한 자원이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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