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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Sep 19. 2021

개념이란 여러 가지 물체나 생각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개념을 알아야 개념이 선다

개념이란 무엇인가?


복잡한 개념을 배워야 하는 학생은 개념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이해하면 어려운 개념도 쉽게 배울 수 있다. 개념이란 여러 가지 물체나 생각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개념을 정의를 통해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사전적 정의를 모르면서도 그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가 전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전적 정의는 개념을 학습할 때 보조적 역할을 하지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상 언어에서 쓰는 개념 대부분은 이렇게 비체계적이고 모호한 경향이 많이 있다.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고 개념의 모호성을 일단 받아들여야 복잡한 개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개념을 사전적 정의로만 이해하려 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인터넷에 있는 개념에 대한 정리이다. 개념을 알고 나면 복잡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공감이 간다. 문자로 정리하다 보면 사물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쉽게 말해, 개념이 잡힌다. 정리하면 정리가 되고 개념이 잡힌다. 또 정리된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개념이 잡힌다.


여러 가지 서양철학의 전통적인 개념군을 끈질기게 분석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많이 아는 유식한 사람이 되지 위해서가 아니다. 그 개념이 안고 있는 과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_나카야마 겐




개념이란 무엇인가? 난데없이 이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인가? 개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잘하지 않는다. 하늘은 왜 파란가? 이딴 식의 질문은 배부르고 시간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바쁜 사람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복잡한 개념을 배워야 하는 학생은 개념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이해하면 어려운 개념도 쉽게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개념이란 여러 가지 물체나 생각을 하나로 묶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의자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진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가구를 모은 개념이다. 그러면 개념과 단어가 다른가? 단어 특히 보통 명사는 개념의 이름이다. 명확한 이름이 없는 개념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의 모음은 개념이지만 그에 대한 보통 명사는 없다. 사람은 계속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고 여러 사람이 그 개념을 쓰기 시작하면 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가 생긴다. 그거 최고야라는 말은 좋다는 뜻일 텐데 새로운 세대가 자기 세대의 유행에 맞는 좋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거 좋아 그러면 왠지 구세대 가치관으로 보는 긍정적인 것을 의미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내가 어렸을 땐 삼삼하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었는데. 미국도 마찬가지다. Cool이라는 단어가 자기 세대의 유행에 맞으면서 좋은 것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심지어 Bad라는 말도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도 있다.


개념도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체를 모아 놓은 개념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은 비교적 쉽고 사랑이라든지 평화 같은 추상명사가 대표하는 개념은 배우고 이해하기가 비교적 어렵다. 실존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학생이 처음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사전적 정의를 외우려고 하고 정의를 외우면 개념을 배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의를 외워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이 많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문예사조”로 정의한다면 그 정의를 외웠다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다 알고 있는 개념 예를 들어 게임 같은 개념은 사실 정의하기가 아주 어렵다. 물론 삼각형 같은 수학적 개념은 정의가 잘 되어있고 정의를 통해서 배우기 쉽지만 많은 개념은 잘 정의되지도 않고 정의로만 이해하기도 어렵다. 사랑을 정의해 보시라. 사전적 정의를 모른다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개념을 정의를 통해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사전적 정의를 모르면서도 그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개념을 어떻게 배우고 이해하나? 먼저 전형 (Prototype)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사전적 정의 대신 각 개념에 대한 전형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개라는 개념은 여러 모습과 크기의 개의 평균적인 모습의 전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어진 동물을 보고 머릿속의 개의 전형과 비교한 뒤 비슷하면 개라고 분류한다는 것이다. 즉 개의 사전적 정의를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가 주어진 개체가 그 정의에 맞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사전적 정의가 전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전적 정의는 개념을 학습할 때 보조적 역할을 하지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형 이론에서 한발 더 나가서 개념을 대표하는 평균적인 모습을 만들어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대표적인 예를 기억하여 개념을 시용한다는 것이 사례 이론 Exemplar Theory이다. 예를 들어 야채라는 개념은 그에 대한 정의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야채를 정의해 보시라) 야채의 평균적인 모습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배추, 홍당무, 고추 등등을 지칭하는 것이 야채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토마토가 과일이냐 야채냐가 혼동되는 이유도 우리가 개념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여러 가지 물체나 생각을 하나로 묶어 개념화할 때 체계적인 정의나 조건을 만들어 이러이러한 요인을 가지고 있는 대상들은 하나로 묶는다라는 식으로 하지 않고 대충 얼기설기 묶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을 인지 심리학자들은 가족적 닮음 (family resemblance)이라고 부른다. 3 형제가 있다고 했을 때 첫째와 둘째는 눈이 닮고 둘째와 셋째는 코가 닮았지만 첫째와 셋째는 닮지 않았을 수 있다. 이런 식의 묶음을 가족적 닮음 (family resemblance)이라고 한다. 카드 게임과 축구 시합이 다 게임이라는 개념에 속해 있는데 그 둘은 상대방을 이기려는 경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혼자 심심풀이로 하는 카드놀이는 경쟁의 요소가 없다. 그러나 카드를 가지고 노는 것이기 때문에 카드 게임과 닮아서 게임이라는 개념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일상 언어에서 쓰는 대부분의 개념은 이렇게 비체계적이고 모호한 경향이 많이 있다. 일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심리학을 포함한 사회 과학의 개념도 이렇게 모호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고 개념의 모호성을 일단 받아들여야 복잡한 개념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개념을 사전적 정의로만 이해하려 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이냐? 포스트모더니즘은 주관적 느낌을 다루는 예술가들이 쓰는 개념이라 그런지 정말 모호한 개념이다. 사람들 마다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을 쓰는 듯하다. 먼저 포스트모더니즘과 비교되는 모더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들에 따라 상반된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모더니즘을 이성적, 과학적,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생각과 가치를 표현하는 예술이나 철학적 사조를 가리킨다는 의미로 쓰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모더니즘을 그에 반하는 사조로 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연장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어쨌거나 미술의 영역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으로 아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기분을 주는 그림을 추구하는 사조에 반발해서 저게 뭐야?’, 사기 아니야?라는 기분을 주는 그림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나의 얕은 이해 또는 가설 (working hypothesis)이다. 개념의 이해라는 것이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의 구성원을 하나씩 관찰하고 또 다른 예를 보면서 그 공통점을 발견해가며 이해하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예가 Andy Warhol의 그림이란다. 또 다른 예가 뭐가 있지?



덧_
_http://blog.hani.co.kr/newyorker/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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