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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Sep 17. 2021

개념은 그 개념에 딸린
여러 가지속성의 요약이다

개념을 알아야 개념이 선다

개념이란 무엇인가?


감각적 직관이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감각적 직관은 맹목적이다.


칸트의 말이다. 문자로 정리하면 정리된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번역 탓에 다르게 이해되거나 뉘앙스가 다르게 이해된다면 개념을 잡기 어렵다. 앞뒤를 잘라 이렇게 단편적으로 수용하면 개념을 잡을 수가 없다. 수용하는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달하는 사람이 책임감과 소신 있게 개념 있게 전달해야 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개념은 인식 과정에 개입하는 관념의 의미와 연관된다. 하지만 다른 학문에는 개념이 이론을 전개하는 주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론은 개념을 논리적으로 엮는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물리학은 힘, 운동, 미립자 등의 개념을 사용하는 이론 체계이고, 경제학은 생산, 이윤, 금리 등의 개념으로 이루어진 이론 체계이다.


개념을 올바로 구사하면 정확한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론에 따라 같은 개념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로 많다는 점이다. 먼저 개념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규정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사실 많은 개념을 올바로 정의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회과학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완전히 객관적인 개념이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개념을 객관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또 자신은 그렇게 한다고 확신한다 해도 개념의 정의에도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선입견이 개재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개념의 의미를 알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 개념이 사용된 맥락 혹은 이론 체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인문학의 개념은 자연과학의 개념처럼 뜻이 구체적이지 않으며, 단일한 의미보다는 복합적인 뜻의 그물을 가진다. 하나의 개념은 인접한 개념과 연관되고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개념은 그 개념에 딸린 여러 가지 속성의 요약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라는 개념에는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발전하고 변형되어온 과정, 경제제도로서 가지는 여러 가지 특성 등이 요약되어 있다.(그런 점에서, 이론을 한 권의 책에 비유한다면 개념은 본문이 아니라 자체다) 그러므로 개념을 이해할 때는 사전적 정의보다 그 개념에 관한 전반적 이미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똑같은 개념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개념의 연쇄는 이론을 구성한다. 이론가는 여러 가지 개념을 규정함으로써 이론을 생산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렇게 생산된 이론이 거꾸로 그 이론에 사용된 개념을 재규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개념과 이론은 유기적이고 교호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개념의 의미를 고정시키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개념을 정의가 아니라 이미지로써 포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에서 개념을 정리한 내용이다. ‘사전이라는 제목처럼 개괄적인 내용이다. 개념을 정리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개념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같은 내용을 번역 탓에 다르게 이해되거나 뉘앙스가 다르게 이해된다면 개념을 잡기 어렵다. 앞뒤를 잘라 이렇게 단편적으로 수용하면 개념을 잡을 수가 없다. 수용하는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달하는 사람이 책임감과 소신 있게 개념 있게 전달해야 한다.


문자로 정리하다 보면 사물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쉽게 말해, 개념이 잡힌다. 정리하면 정리가 되고 개념이 잡힌다. 또 정리된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개념이 잡힌다.


여러 가지 서양철학의 전통적인 개념군을 끈질기게 분석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많이 아는 유식한 사람이 되지 위해서가 아니다. 그 개념이 안고 있는 과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_나카야마 겐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_칸트, 《순수이성비판》


칸트의 이 유명한 문구는 원래 당시 인식론 철학의 두 가지 조류였던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륙을 무대로 전개된 합리론은 인식 주체를 강조했고, 영국에서 발달한 경험론은 인식 대상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합리론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주로 정신 활동의 결과라고 본 반면에 경험론은 사물에서 전해진 감각 자료에 대한 경험이 곧 인식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칸트는 합리론적 전통을 내용 없는 사유라고 일축하고, 경험론적 전통을 개념 없는 직관이라고 비판했다.


흔히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속된 말로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실제로 칸트가 말하는 철학적 의미의 개념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경험론자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인식 주체(이성)가 관여하는 측면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주체는 인식 대상에만 주목하여 경험=인식을 등치 시킨다. 칸트가 보기에 그것은 개념 없는 사유에 불과하다. 인간 이성은 수동적으로 감각 자료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인식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주어진 경험적 감각 자료를 정신의 한 기능인 오성이 개념화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온전한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처럼 철학에서 말하는 개념은 인식 과정에 개입하는 관념의 의미와 연관된다. 하지만 다른 학문에게는 개념이 이론을 전개하는 주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론은 개념을 논리적으로 엮는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물리학은 힘, 운동, 미립자 등의 개념을 사용하는 이론 체계이고, 경제학은 생산, 이윤, 금리 등의 개념으로 이루어진 이론 체계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개념을 올바로 구사하면 정확한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론에 따라 같은 개념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로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사회학에서는 중간계급(middle-class)이라는 개념을 사회 안정에 필수적인 계급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에서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동요하다가 결국 어느 한 측에 귀속되어 사라질 계급으로 본다. 국가라는 개념도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구로 긍정적인 입장이 있는가 하면, 기배 집단의 의도를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부정적인 입장도 있다.


이렇게 같은 개념을 두고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학자가 함께 세미나를 한다면 생상적인 토론은 커녕 기본적인 의사소통부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토론에 임하거나 논문을 쓸 때 먼저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기도 한다. 어떤 개념을 기존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할 경우에는 미리 그 개념 정의를 새로 내릴 수도 있다.


사용하는 개념의 의미가 다른 탓에 쓸데없는 오해와 분란이 빚어지는 경우는 학술회의만이 아니라 TV로 반영되는 정책 토론회 같은 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정치에 관한 논쟁을 할 때 한 측이 상대방의 개념에 관해 잘 알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일부러 그 의미를 왜곡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한 정당이 부채의 소지가 있는 특정한 공공 기관에 대해 감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때 반대 정당은 감독하고 관리한다’라는 감리라는 개념의 본래 의미를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간섭과 규제로 곡해하면서 맞서는 경우이다.


이쯤 되면 개념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규정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사실 많은 개념을 올바로 정의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회과학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완전히 객관적인 개념이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개념을 객관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또 자신은 그렇게 한다고 확신한다 해도 개념의 정의에도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선입견이 개재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개념의 의미를 알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 개념이 사용된 맥락 혹은 이론 체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덧_
_남경태, 《개념어 사전》, 휴머니스트, 2011년 3월 초판 22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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