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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Feb 14. 2022

좋고 싫음 보다 호호호(好好好)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축하할 거야!

《호호호》, 윤가은, 마음산책


영화감독 윤가은, <우리들>, <우리 집>을 연출한 감독, 아이들의 상처와 연대를 섬세하게 풀어낸 감독이라고 한다.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본 것은 고사하고 영화 제목도 처음이다. 윤가은이란 감독 이름도 물론 처음이다. 그래서 선입견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호불호好不好없이 그저 글로써.


책 제목 《호호호》는 그의 절친이 건넨 말에서 정한 것으로 보인다. 호감 가는 말이며 잘 지은 제목이다. “보통 사람들은 각자의 호불호(好不好)라는 게 있잖아? 그런데 너는 호호호(好好好)가 있는 것 같아.” 좋아하는 게 많다는 의미 ‘好好好’와 수줍게 웃는 ‘호호호’가 같이 느껴진다. 윤가은 감독을 그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감독, 여자배우 이런 말은 쓰고 싶지 않다. 그 말 자체로 성별을 나누고 동등한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저 한 사람, man 뿐이니.


나는 좋아하는 게 정말 많았다. 언젠가 오랜 절친 M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넨 적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각자의 호불호(好不好)라는 게 있잖아? 그런데 너는 호호호(好好好)가 있는 것 같아.” 이미 술도 잔뜩 취했고, 그래서 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던 나는 그저 호호호 웃기만 했다. M이 다시 말했다. “너는 웬만하면 다 진심으로 좋아하잖아.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어떤 건 그냥 좋아하고, 다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고…….”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감독의 소소한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책이 생각보다 짧은 것은 감독의 앞으로 할 많은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또 다른 좋아하는 마음들을 자꾸 부르는가 보다. 그리고 역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 기하는 것만큼 신나고 기쁜 일이 없나 보다.” 


가끔은 쓸데없는 짓을 하며 기분을 푼다. 나만의 이상한 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그중 하나다. 좋아하는 작품들을 특정 주제로 분류해 남다른 목록을 만들어 본다. 주제는 다양하다.


나는 감독처럼 잘 걷는 재능은 없다. 늘 꾸준히 잘 걷는 재능만큼은 끝내준다는 재능이 부럽기도 하다. 구석구석 걸으면 보지 못하던 아름다운 것과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걷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랑해야 더 잘 보인다. 그래야 더 사랑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걸어서 걸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멀리 떠났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풍경 속에 폭 파묻다 걷고 또 걷기만 했다. 남들이 보기만 여행이었지만, 실제론 표류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걸을 수 있어 좋았으니까. 걸을 때만큼은 참담한 고민들이 머릿속에 들러붙지도, 갈급함에 마음이 쪼그라들지도 않았다. 그럴 새가 없었다. 쉼 없이 발을 움직이고 눈을 돌려 길을 찾는 일에 전념해야 했다. 그래서 였을까.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편안하고 단순해졌다. 덕분에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맞이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걷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한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구석구석 걸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들이 있었고. 길을 잃었을 때 친절히 도와주는 다정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냥 걷기로 했다. 계속 헷갈리고 오락가락하면서. 쉼 없이 의심하고 흔들리면서.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면 끝내 어딘가에는 도착해 있겠지. 그러다 보면 마침내 누군가는 되어 있겠지. 사실 꼭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아도, 반드시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걷는 동안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멋진 삶일 테니까.


그러니까 그냥 걷자. 오늘도, 내일도, 그냥 걷고 또 걷자. 어쨌든 나는 오래도록 꾸준히 잘 걷는 재능만큼은 끝내 주니깐.


우리에게도 감독처럼 자신에게 선물이 필요하다. 나는 올해도 내가 직접 나서서 내 생일을 축하할 거다.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축하할 거야!” 누구보다도 자신이 먼저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진심으로 축하해야 한다. 감독이 자신의 ‘호호호’한 이야기로 자신에게 선물 같은 첫 산문집을 선물했듯이.


덧_

《호호호》, 윤가은, 마음산책, 2022년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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