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쓰는 고사성어 중에서 그 사례가 잘못된 것이 많다.
그중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있다.
윗사람에게 “선생님의 말씀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하찮은(자신보다 못한) 언행일지라도 자신의 학덕을 연마하는 데에 도움이 됨”을 의미한다. ‘남이 훌륭한 점을 보고 얻는 것’을 가리킬 때는 ‘귀감龜鑑’을 쓴다.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신의 학덕을 연마하는 데에 도움이 됨을 비유한다. 《시경詩經》 〈소아편(小雅篇)〉의 ‘학명鶴鳴’에 나오는 구절 “ … 타산지석 가이위착 (他山之石 可以爲錯: 다른 산의 못생긴 돌멩이라도 구슬 가는 숫돌은 됨직한 것을!)”에서 나온 말이다.
돌을 소인(小人)에, 옥을 군자(君子)에 비유한 것인데 군자도 수양과 학덕을 쌓는데 소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는 뜻
옥은 숫돌로 갈아야 … 타산지석他山之石을 보면 잘못 사용하고 있는 예를 알 수 있다. 유사한 말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있다.
반면교사反面敎師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과 실패를 거울 삼아 나의 가르침으로 삼는다.
“가장 심한 범죄를 저지른 자 이외에는, 소수의 나쁜 사람들을 (…) 제명하지 말고, 그의 모든 정치적 세력을 박탈하고 고립시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모택동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장진한, 《이젠 국어사전을 버려라》)
반면교사, 타산지석 그리고 귀감을 보면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사자성어의 겉모양으로 뜻과 쓰임새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 많다. 고사성어 강의를 보면 잘못 사용하거나 곡해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
좋을 경우는 “타산지석으로 삼자.”, 부정적일 경우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자.”라고 사용한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신조어인 ‘반면교사’가 등장하면서 ‘타산지석’을 대신해 사용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반면교사’는 중국의 마오쩌둥이 1957년 중국 공산당 간부들 앞에서 제국주의자와 반동파, 수정주의자를 가리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이후 안 좋은 사례에서 가르침을 받아 자신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귀감龜鑑
길흉을 점쳐주는 거북이의 등과 자신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보여주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귀감龜鑑으로 삼는다’는 말은 거북이 껍질에 나타난 조짐兆朕을 보아 잘 따르고 또 감鑑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귀감龜鑑’은 길흉吉凶과 미추美醜를 동시에 판단해 주는 척척박사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