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 - 책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
중고서점, 헌책방 중 어느 곳이 맘에 드는가? 헌책방이다. 책은 ‘중고’가 아니다. 다만 오래된, ‘헌’ 책일 뿐이다. “먼지 묻은 어제의 새 책”이다. 새것의 단서는 헌 것에 있을 테니.
개인적으로 ‘서점’보다 ‘책방’을 선호한다. 친근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저자의 ‘本屋’으로 ‘書店’과 구별해 사용한다는 점에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 저자의 의도도 ‘책방’이 많아지는 세상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여러 의미 있는 책방을 순례하면서 책방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책방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동아시아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닐까. 딱 거기까지만 이다.
들어가는 말에서 “‘서점’은 도서나 잡지를 파는 소매점을, ‘책방’은 그러한 도서나 잡지를 판매하는 곳 또는 그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 즉 ‘책방지기’를 일컫는 호칭으로 삼고 있다.”라고 했다. 한데, 왜 제목이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일까? 이전 책도 《서점은 죽지 않는다》라는 직관적인 제목으로 바뀌어 출판한 점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은 정보를 얻으려면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되는데, 그럼에도 사람은 책방에 갑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책방을 즐기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그저 신기하고 궁금하기만 합니다." 미국인 대학원생 수전 테일러의 의구심은 나도 신기하고 궁금하다. 아직도 사람들은 책방을 즐기는 문화가 남아있기는 한 것인지.
한 책방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이런 시대에 왜 서점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렇게 쉽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군. 왜 살아가느냐는 질문을 받는 것이나 다르지 않을 테니. 답은 아니지만 이 번역서의 제목,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를 찾고 있다.
그렇다면 서점업은 왜 없어지지 않을까? 서점을 시작하는 사람은 왜 지금도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일까? 원래 동아시아에서만 보이는 특징일까? ··· 어느새 나조차도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저자가 자신의 독백으로 이 책이 필요하며, 많은 이가 읽어 책방이 계속 있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책방에 대해 이야기를 쓰는 이상, 책방이 동네에 필요한 존재라는 전제에 설득력이 필요하다. 독자를 향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에게.
본문에서도 ‘서점’과 ‘책방’이 혼재하고 있다. 일관되게 책방이라고 말해도 한국 독자는 충분히 저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의도된 번역인지 아니면 관성에 의한 번역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아쉬움이 따른다.
이 책의 원제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오는 말에 연재 제목이 “책방이 아시아를 잇는다(本屋が アジア をつなぐ)”라고 나와 있다. 제목을 “아시아를 잇는 책방”으로 했다면 덜 팔렸을까?
몇몇 직역(?)도 거슬린다. 전봉준의 죽음을 ‘형사한 후’라고 말하지만, ‘처형당한 후’라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국보법’이라 하지만 젊은 독자가 이해하기엔 ‘국가보안법’이라고 풀어써주는 게 이해를 돕는 것으로 생각한다. 번역에 직역이냐, 의역이냐는 답이 없다. 우리말로 쓰는 단어로 번역하고 모순이 없다면 좋은 번역이라 생각한다.
나는 유유 출판사를 좋아한다. 많은, 아니 여러 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보기 1인 출판, 아니 작은 출판의 전형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책의 종수도 많아지고, 식구도 많아졌을 테니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예전 그 유유 출판사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덧_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 - 책방의 존재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시바시 다케후미, 유유
덧_둘
먼지 묻은 어제의 새 책이나 읽어야겠다. 새것의 단서는 헌것에 있을지니. _이일훈,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