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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질문이 쌓이고 연결될 때, 우리는 책을 통해 더 나아간다

by 비루장

책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책 선택에서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좋은 책이란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이 직접 고르고 열심히 읽을 때 좋은 책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책을 찾는 일이다.


책을 잘 고르는 법에 대해 말하는 이가 있다. 저자 소개를 읽어라, 머리말을 읽어라, 목차를 읽어라. 하지만 이는 어쩌면 부질없는 일일 수 있다. 책 고르기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게 꼭 좋은 책을 고른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책 고르기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건, 단지 실패를 피한 것일 뿐, 진짜 좋은 책을 만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좋은 책이란 결국 자신에게 필요하고, 자신의 시간을 통해 살아나는 책이다.


책을 읽는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그 목적에 따라 책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진다. 지금 나의 질문에 맞는 책이 무엇인지, 내가 알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지, 현재 나의 문제는 무엇인지 그런 것을 따라 책을 선택하게 된다. 때로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 경향에 맞는 책을 고르기도 하고, 온라인 서점에서 광고 문구나 표지를 보고 끌리는 대로 책을 장바구니에 담기도 한다. 신문이나 블로그의 서평을 보고 고르기도 한다. 가끔은 직감으로 고르는 책도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고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책. 그런 책은 곧잘 오래 기억에 남는다.


책은 친구, 지인, 입소문을 통해 고를 수도 있다. 누구를 만나면 요즘 읽는 책이 뭐냐고 물어보는 습관은 괜찮은 습관이다. 그가 읽는 책이 지금 나에게도 필요할 수 있다. 가끔 아주 가끔은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가판대를 훑는다. 그날의 공기와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끄는 책을 만나는 경험은 온라인에선 쉽게 얻을 수 없다. 또한 책을 고를 때, 나를 자극한 경로를 적어두면 좋다. 친구의 추천, 서평, 리뷰, 영화 등 어떤 연결고리가 나를 책으로 이끌었는지 기억하는 건, 다음 선택에도 도움이 된다.


책 목록은 꼭 손수 만들어야 한다. 목록을 만들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이 자연스럽게 쌓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책을 언젠가 읽고 말 거야’라는 다짐이 나를 독서의 흐름 속에 있게 한다. 지금 당장 읽지 않더라도, 일단 사두는 것도 괜찮다. 예전에 나를 사로잡았던 책을 다시 펼쳐보는 것도 좋다. 진정으로 훌륭한 책은 우연으로 만나지 않는다. 오래된 책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먼지 묻은 어제의 새 책이나 읽어야겠다. 새것의 단서는 늘 헌것에 있을지니.


세상에서 책만큼 기묘한 상품도 드물다. 책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 인쇄되고, 팔리고, 장정되고, 검열되고, 읽힌다. 그리고 때때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의 절반은 팔리지 않고, 팔린 책의 절반은 읽히지 않는다. 읽힌 대부분의 책조차 독자에 의해 잘못 이해되기도 한다. 써지기만 했을 뿐 읽히지 않는 책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독자에 따라 태양이 되기도 하고 암흑이 되기도 한다. 책의 가치는 독자가 만든다.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그 반은 독자가 만들어낸다. 책은 사고와 경험의 폭을 결정짓는 독자의 독서량에 따라, 혹은 그 사람의 질문의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같은 책도 어떤 사람에게는 벽이 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창이 된다.


좋은 책이란, 좋은 책을 소개하는 책이어야 한다. 한 권의 책이 그 속에서 또 다른 책을 소개하지 않는다면, 그 책은 닫힌 책이다. 닫힌 책은 나쁜 책이다. 열린 책, 곧 연결된 책은 독서를 지속시킨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 부자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야만 부자가 된다고 말하는 책은 경계해야 한다. 나쁜 책이다. 독서를 수단으로만 삼는 순간, 책은 목적을 잃고 만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서가에 꽂힌 책 중에서 고르는 것이다. 그날의 기분, 그날의 고민, 그날의 시간에 맞게 책은 손에 들려야 한다.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꽂아 넣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결국, 책은 우리를 바꾸는 도구이자, 거울이고, 동반자다. 책을 고른다는 건 나를 고르는 일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나에게 묻는 일이다. 그 질문이 쌓이고 연결될 때, 우리는 책을 통해 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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